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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실업대책 신종 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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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 특파원

요즘 미국에서 뜨는 민간 직업교육기관들이 있다. 대략 12~24주를 가르쳐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데이터 분석가로 길러낸다. 이 과정을 마친 이들에겐 꽃가마가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정보기술(IT) 인력을 구하는 회사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취업률은 98%. 게다가 초봉은 대략 8만~10만 달러(9500만~1억2000만원). 대부분의 수료생에겐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다. 선망의 대상인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수업료는 석 달 코스에 약 1300만원으로 싸지 않다. 하지만 취업 보장에다 높은 급여 때문에 직장을 다니고 있는 대졸자까지 몰려든다. 대부분이 IT 문외한인데, 인생 항로를 과감히 바꾼 것이다. 이런 ‘IT 인력 신병 캠프’가 샌프란시스코에만 12곳, 뉴욕에 9곳, 시애틀에 8곳이 있다. 이들 기관에서 배출된 인력이 지난해 6700여 명, 올해는 그 배가 넘는 1만6000여 명에 달할 예정이다.

 소규모에 불과한 신생 교육기관들이 어떻게 취업과 처우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낸 것일까. 지난해 이런 기관 중 하나인 뉴욕의 플랫아이언 스쿨을 취재한 적이 있다. 비결은 교육과정의 거품을 뺀 ‘맞춤형 교육’이다. 30대 초반의 공동 설립자 애덤과 아비는 스쿨 시작 전에 기업 탐방부터 했다. 기업들을 직접 찾아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기 원하는지를 물었다. 그 대답을 토대로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아비는 “대학은 이론은 많이 가르쳐도 정작 시장이 요구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경쟁력을 설명했다.

 미국 기업의 실용적 자세도 돋보였다. 기업들은 학위나 스펙을 따지지 않았고, 석 달짜리 단기 코스를 밟았다고 해서 과소평가하지도 않았다. 오직 회사에 필요한 IT 역량을 채용 기준으로 삼았다.

 교육당국은 어땠을까. 애덤은 “뉴욕시의 지원에 황홀했다”고 표현했다. 두 사람은 애초 직업학교에 필요한 면허가 없어 난감한 처지였다. 그러나 뉴욕시는 발목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면허 취득을 지원해 줬고, 뉴욕시가 학비를 전액 부담하는 공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힘을 실어줬다.

 최근 애덤에게 지난 1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물어봤다. 큰 변화 한 가지는 백악관과의 협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월 ‘테크 하이어 이니셔티브(Tech Hire Initiative)’란 IT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민간이 IT 고용시장의 빈 구멍을 찾아내 메워나가자 연방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지원에 나선 것이다.

 IT 신병 캠프의 성공은 고용시장의 수요와 공급 현실을 꿰뚫은 결과다. 대학이든 직업훈련기관이든 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 그러자면 낡은 교육과정의 혁신과 규제 타파가 절실하다.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일자리를 찾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좋은 실업대책이 아니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