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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일터 … 희소언어 전공 300명 1년 유학 보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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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인철 한국외국어대 총장은 “희소 언어 교육은 시장 논리 밖에 있는 영역이다. 우리 대학은 국익 차원에서 이들 언어 전공자를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27개 희소 언어 전공자 300명을 어학 연수 또는 인턴 사원 체험을 하도록 1년간 해외에 보낼 계획을 세웠다. [오종택 기자]

한국외국어대는 전 세계 45개국 언어를 가르친다. 이 가운데 하우사어(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 사용어), 우르두어(파키스탄 등 사용어) 등 27개 언어는 정부가 재정 지원하는 국립대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언어다. 사립대인 한국외대의 강점은 이 같은 희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다. 이 대학 김인철 총장은 “외교나 군사·안보 등에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지역 인재 양성이 핵심”이라며 “희소 언어 전공 학생 300명을 외국에 보내 정규 학기와 별도로 1년간 언어를 익히고 인턴도 체험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총장 집무실에서 이뤄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다.

분쟁·자원외교 현장서 뛸 전문가 키울 것

 -국내에서 청년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다고 청년들에게 외국에 나가라고 조언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외국에 나가는 게 다는 아니다. 현지에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역량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능력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 현지 적응력도 있어야 한다. 외국어 전공 학생 300명을 매년 해외에 보내 정규 학기와 별도로 1년간 현지에 머물게 하는 ‘해외 현장 연계’ 프로그램은 이런 역량을 종합적으로 키워주려는 취지다.”

 -구체적인 계획은.

 “중동·아프리카, 유라시아, 인도·아세안, 유럽·중남미 등 4개 권역 27개 언어군을 ‘국가전략지역 언어스쿨’로 묶었다. 이 스쿨 학생 1000명 중 300명을 뽑아 6개월은 현지 언어 연수, 나머지 6개월은 현지 실무 인턴을 하게 할 거다. 재학 중 해외에 체류해 봐야 졸업 후 해외로 취업할 수 있지 않겠나. 이를 위해 교육부에 예산 지원도 요청했다.”

 -사립대가 하려는 프로그램에 대해 국비 지원이 가능할까.

 “국립대를 포함해 국내 대부분 대학이 영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 등 6개 언어 중심의 학과를 두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전 세계가 국익 공간 아닌가. 희소 언어에 대한 투자는 국익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익 실현 차원에서 희귀어 구사 인력을 키우자는 주장인가.

 “그렇다. 아제르바이잔 언어를 사용하는 석유 개발 전문가, 필리핀 타갈어를 쓰는 지역 문화 전문가, 아랍어와 무슬림 문화를 이해하는 전문가와 같은 지역인재를 키우자는 얘기다. 그럴 만큼 우리의 국력도 어느새 커졌다.”

연수·인턴 6개월씩 … 정부에 예산 요청

 -희귀 언어를 배우면 취업이 가능한가.

 “27개 언어군에 속한 베트남어과의 취업률은 93%,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는 71%다. 이들 전략 지역에선 한국 인력을 높게 쳐준다. 해외 주재 기업과 기업인이 이뤄놓은 해외 진출 인프라도 구축돼 있어 향후 취업 전망이 밝다.”

 -언어능력을 키우는 것만으론 한계가 있을 텐데.

 “언어에 외교·통상을 더한 융·복합형 학부가 지난해와 올해 신설됐다. 언어(language)와 외교(diplomacy)를 합한 LD학부와 언어와 통상(trade)을 합한 LT 학부가 융·복합형 교육을 한다. 2015학년도 대입 수시 경쟁률은 43.9대 1(LD)과 35.4대 1(LT)이었다. 이들 학부 신입생의 내신 성적을 보면 1등급이다. 이곳 학부에선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 대사, 김현종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교수로 초빙돼 실무 교육을 한다. LD 졸업생들은 외교관을 양성하는 국립외교원 진입을, LT 졸업생은 금융 통상 관련 국제기구 취업을 겨냥하고 있다.”

 -한국외대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어느 규모인가.

 “현재 해마다 2500여 명이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타 대학은 외국인 학생 중 중국학생 비율이 70%를 넘기도 하지만 우린 30% 미만이다.”

 -유학생의 출신 국가가 다양한가.

 “주한 외국 대사관 추천 장학프로그램을 통해 앙골라·에콰도르 등 20개국 학생이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 대사관 추천 프로그램(IDS)은 외국의 우수 고교졸업자를 유치하는 ‘한국형 풀브라이트’ 사업이다. 현재는 30여 명 규모인데, 앞으로 800명을 목표로 확대하려 한다. 이 밖에도 6·25 참전 21개국 후손 장학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2011년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120명이 다녀갔다. 이들이 본국에 돌아가면 지한파·친한파가 된다. 세계 각국에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해외에 전파하는 송출형 교육을 해야 한다.”

 -해외 송출형 교육이란 무슨 뜻인가.

 “우리 대학 사정만 보더라도 지난 60년간 해외에 유학한 교수진이 외국 지식을 습득해 국내에 유입하는 유입형(inbound) 교육을 했다. 주한 외국대사들은 ‘이제 세계가 한국을 배우기 원한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우리의 지식과 기술, 문화 콘텐트를 해외에 송출하는 교육이 송출형(outbound) 교육이다.”

외교·통상 사관학교 역할이 목표

 -언어에 강점을 두고 있는 외대가 바이오메디컬공학부를 신설해 신입생을 뽑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명과학·의학·공학을 결합한 학부가 글로벌캠퍼스(용인)에 생긴다. 중국·동남아·아랍·유라시아·남미의 부호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특화된 의료사업에 우리 대학이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의대 유치를 위한 초석인가.

 “장기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다. 최근 한독, 분당서울대병원 의료기기센터와 양해각서를 맺는 등 의생명공학 확대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장기적으론 종합병원과 한국외대가 협업하는 형식으로 의대를 유치하고 싶다.”

 -정부의 대학 정책을 어떻게 보나.

 “사립대에 대해선 대학의 기본재산 중 일정 부분을 처분해 대학에 재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한시적으로 줄 필요가 있다. 현재는 수익용 재산 아닌 기본재산은 대학이 손을 못 대게 돼 있다. 그리고 동결된 등록금도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다.”

◆김인철 총장=마라톤 매니어다. 베를린·파리 국제마라톤대회에 나가는 등 마라톤을 열한 차례 완주했다고 한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게 그의 좌우명. 마라톤을 하듯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보다 꾸준히 묵묵하게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평소 강조한다. 1957년 경남 마산 출신. 88년 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로 부임해 기획처장·교무처장·대외부총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3월 한국외대 총장이 됐다.

만난 사람=강홍준 사회1부장
정리=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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