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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해무’ 기대 이하, ‘국제시장’ 뜻밖 흥행 … 예금자 적중률 반타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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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3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다룬 영화 ‘암살’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8월 13일 현재 966만 명으로 10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뒀다. 이렇게 영화가 예상 외의 큰 흥행을 거두게 됐을 때 웃는 이가 또 있다. ‘영화 예금’ 가입자다. 우리은행은 ‘암살’의 개봉에 앞서 암살의 흥행 성적과 금리를 연계한 ‘시네마 정기예금 암살’을 판매했다. ‘암살’의 관객 수가 600만 명을 넘으면 기본 이자 1.5%에 0.2%포인트의 금리를 얹어주는 상품이다. 7월 13일부터 31일까지 가입자를 모집한 결과 6653명이 신청해 총 1000억원의 한도를 꽉 채웠다. 이미 ‘암살’의 흥행 성적이 600만 명을 넘어섰기 때문에 이들은 총 1.7%의 이자를 받게 된다. 고작 0.2%포인트라고 콧방귀를 뀔 수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하지만 예금 가입자의 예측이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우리·하나·기업은행이 그동안 출시한 23개의 영화 예금을 분석해보니 예금자의 흥행 예상 적중률은 52%에 불과했다. 소비자가 높은 호응을 보인 영화가 실제 흥행에 성공하거나 낮은 호응을 보인 영화가 흥행에 참패한 경우는 절반에 그쳤다. 나머지 절반은 예금자의 호응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냈다.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패한 대표적인 경우는 ‘상의원’과 ‘해무’다. ‘상의원’은 배우 한석규·고수·박신혜·유연석 등을 전면에 내세운 ‘멀티 캐스팅’ 전략으로 개봉 전부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까지 충무로의 흥행 코드였던 ‘궁중 사극’을 표방한 데다 왕실 의복을 만드는 공간인 상의원을 배경으로 해 화려한 볼거리를 예고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봉 전(지난해 12월 19일~올해 1월 9일) 모집에 들어간 우리은행의 ‘시네마 정기예금 상의원’은 1000억원의 한도를 채우며 조기 완판(완전 판매)됐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 수가 79만 명에 그치며 우리은행 측이 내건 추가 금리 조건인 100만 명을 넘지 못했다. ‘해무’ 역시 봉준호 감독이 기획·제작하고 배우 김윤석·박유천이 주연을 맡아 흥행이 기대됐다. 하나은행이 지난해 8월 100억원 한도로 모집에 나서 103억원을 모으며 조기 완판됐다. 하지만 ‘해무’는 148만 명의 초라한 성적을 거뒀고 가입자는 추가 금리를 받지 못했다. 하나은행은 이 영화의 관객 수가 500만 명을 넘을 경우 2.65%의 금리를 약속했지만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가입자는 2.55%의 기본 금리를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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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반대로 별반 흥행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박’을 터뜨린 경우도 있었다. ‘국제시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국제시장’은 개봉 당시 쟁쟁한 경쟁자가 많았다. ‘인터스텔라’가 100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었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예상 외의 선전을 거두며 박스 오피스 1위를 지키던 상황이었다. 하나은행은 이 영화의 관객이 500만 명 이상일 경우엔 2.2%, 1000만 명을 넘을 경우엔 2.25%의 금리를 약속했다. 하지만 300억원 모집 한도에 모인 돈은 고작 15억원이었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개봉한 지 12일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총 14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가입자의 흥행 예측이 제대로 들어맞은 경우는 영화 ‘써니’다. 개봉 전 큰 기대를 모은 영화가 아니었는데도 예금자에게 인기가 높았고 실제 개봉 이후 큰 성공을 거뒀다. 2011년 개봉한 이 영화는 스타 캐스팅도, 블록버스터급의 화려한 볼거리도 없었다. 하나은행은 당시 이 영화 예금에 300만 명 초과 시 0.3%포인트를 얹어주는 조건을 내걸었다. 한도 없이 진행된 이 예금에 무려 1711억원이 몰렸다. 영화는 개봉 1·2주차에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8주차에 1위 자리를 재탈환하는 저력을 보이며 국내의 대표적 ‘슬리퍼 히트(sleeper hit·흥행 이변작)’로 떠올랐다. 최종 관객 수는 736만 명. 당시 경쟁작들이 ‘캐리비안의 해적4’ ‘쿵푸팬더’였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해당 상품에 가입한 사람은 당시 기본 금리 4.15%에 0.3%포인트를 추가로 받아 4.45%의 이자를 받아갔다. 이는 당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3%)보다 1.45%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같은 예측 성공이긴 한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금자의 호응도가 낮은 영화 중 실제 흥행에 참패한 경우다. 결과적으로 예금자의 안목이 맞았던 셈이다. 하나은행은 올 초 ‘허삼관’이 300만 명을 넘을 경우 2.25%, 700만 명 이상일 경우 2.3%의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모집액이 68억원에 불과했다. 소비자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이 영화는 실제 96만 명을 동원하며 고배를 마셨다.

 이런 영화 예금상품은 어떻게 설계됐을까. 은행이 애초에 금리 우대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만하다. 하지만 그동안 은행이 내놓은 영화 예금상품이 흥행에 성공해 고객에게 우대 금리를 지급한 경우는 74%다. 눈감고 가입해도 셋 중 둘은 금리 우대를 받는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김은영 하나은행 e금융사업부 차장은 “기업의 이미지 제고와 간접 광고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 고안된 상품으로 판매 수익보다는 흥행성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고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미정 우리은행 스마트금융부 과장도 “문화사업에 간접 투자하는 공공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가입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흥행 가능성이 큰 영화를 선정한다”며 “이를 위해 배급사와 사전 조율을 거치고 배우·감독 등 다양한 흥행 요소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공익적인 목적을 고려하다 보니 은행이 고른 영화 목록은 보수적인 편이다. 김은영 차장은 “은행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선정적인 영화나 잔인한 영화는 선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미정 과장도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휴먼 드라마나 감동 영화 등을 주로 고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영화 예금상품에 가입할 때 추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흥행한 영화의 공통분모를 파악해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흥행할지를 판단하는 기본적인 기준은 ‘감독·배우·장르’”라고 조언했다. 영화에서 블루칩으로 꼽히는 감독과 믿고 보는 배우를 고르는 것이다. 장르로 봤을 때 요즘 대세는 역사물이다. 강 영화평론가는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는 대부분 12세 관람가로 가족 전체가 관람할 수 있는 영화”라며 “여기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이 출시한 ‘영화 연평해전 통장’은 1500억원을 한도로 모집에 나섰지만 한도를 훌쩍 넘기며 1934억원의 예금을 유치했다. 우대 금리 적용 조건을 100만 명으로 내세웠던 이 영화의 실제 관객 수는 604만 명이었다.

김경진 기자, 노유정 인턴 기자 kjink@joongang.co.kr

[S BOX] 은행, 기준금리에 자체 금리 더 얹어 예금상품 판매

지난해 7월 하나은행이 출시한 ‘무비정기예금 명량’은 영화 ‘명량’의 관람객 수가 500만 명을 넘으면 연 2.65%, 700만 명을 넘으면 연 2.7%의 금리를 주는 상품이었다. 당시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연 2.5%. 이 영화는 176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예금 가입자는 연 2.7%의 이자를 받았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에 은행이 가산(加算)금리 0.2%포인트를 더 얹어준 것이다.

 이처럼 은행은 한은이 정한 기준금리에 자체 금리를 더 얹어 예금·대출상품을 판매하는데, 이를 가산금리라 부른다. 기준금리는 한은의 금융통화위원회가 매달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금통위는 13일 본회의를 열고 이달 기준금리를 지난달과 같은 연 1.5%로 정했다.

 한은은 2008년 3월부터 기존의 콜금리(은행 간 단기대출 금리) 대신 환매조건부채권(RP)을 통해 기준금리를 정하고 있다. 당시 기준금리는 연 5%였는데 이게 2008년 8월에는 5.25%까지 치솟았다. 이후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2009년 1월부터 연 2%대로 추락했다가 경기 회복과 함께 2011년 3월 3%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2012년 10월 다시 2%대로 떨어졌다. 몇 년간 연 2%대를 유지했던 기준금리는 한은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올해 3월 1.75%로 인하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1%대에 진입했다.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은행에서 예금이나 대출 등에 적용되는 시중금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은에 따르면 6월 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저축성 수신 금리는 연 1.67%, 대출 금리는 연 3.49%였다. 순수저축성 금리는 연 1.65%,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3.01%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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