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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민족 정체성 높이는 독립유공자 후손 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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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무부 이민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법무부에서는 특별한 예식을 거행한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특별귀화에 따른 국적증서 수여식이다. 지난해 이맘때에는 양기탁 선생, 선교사 윌리엄 린턴 선생의 후손 등 16인이 국적증서를 수여받았다. 올해에는 김경천 장군, 이위종 선생, 이인 대한민국 초대 법무부 장관의 후손과 린턴 선교사의 또 다른 후손 등 30인이 수여식에 참석한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특별귀화는 이국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일제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거나 귀환하지 못한 분들의 뜻을 기리고 조국과 분리되어 살아온 후손과의 유대를 이어 나가려는 국가의 의지를 담고 있다. ‘백마 탄 김장군’으로 알려진 김경천 장군은 일본 육사를 졸업했으나 망명했다. 그 뒤 필자의 증조부인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이 세운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역임하고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다. 만년에 소련 정부의 탄압으로 고초를 겪다 작고했으며, 사후에 재심을 받고서야 복권되었다. 이위종 선생은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헤이그 특사 3인의 한 분으로 러시아에 남아 독립운동을 계속한 애국적 외교관의 표상이다. 항일 변호사 이인 선생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적법을 기초했으니, 그 후손이 그 법에 따라 국적을 회복하게 된 것은 특히 뜻깊은 일이다. 이인 선생은 대한민국이 1948년에 비로소 수립된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주권을 빼앗긴 적이 없는 나라라는 전제 위에서 국적법을 기초했다.

 지난 10년간 932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이 특별귀화 또는 특별공로자 국적회복에 의해 국적을 취득했다. 이 제도의 의의는 단지 공로가 많은 개인들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해외거주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처우는 우리나라 디아스포라(재외동포) 정책, 특히 옛 공산권 동포에 대한 정책이 진화해온 과정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옛 공산권 동포들이 대한민국과 재회하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처음에는 모국방문 동포에 대해 별도의 여행증명서를 발급해 입국하도록 했으나 88년 7·7 선언으로 북방정책이 본격화되면서 거주국 여권의 사용을 허용하고 입국사증을 발급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옛 공산권 동포를 외국인으로 취급한 것은 아니었다.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의 귀국 및 정착을 위해 시행한 영주귀국 제도를 보면 정부가 동포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하지 않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영주귀국 제도는 89년 1월 순국선열 일송 김동삼 선생의 유족이 귀국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부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귀국시키면서 국적판정이라는 절차를 도입해 곧바로 그들이 국민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러한 국적판정 제도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영주귀국이 소수에게만 열려 있어 동포사회에 불만을 초래한 것 외에도 거주국의 공민을 우리 국민으로 취급하는 것이 거주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일으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정부는 97년부터 옛 공산권 동포를 외국인으로 간주해 귀화 또는 국적회복을 통해서만 대한민국 국민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그렇지만 정부가 옛 공산권 동포와의 재회 10년 동안 그들이 외국인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 배경에는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예우가 있었다.

 대한민국은 이스라엘과 달리 재외동포에게 모국으로 돌아올 권리, 즉 귀환권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국내외적 여건상 귀환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국적회복과 간이귀화, 외국국적 동포자격을 통해 어느 정도 귀환이 가능해졌다. 귀환을 허용치 않은 과거에도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게는 귀환의 길을 열어놓았다. 2010년 국적법 개정에 의해 복수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번에 국적을 취득한 후손들은 살아온 나라와 생활환경 면에서 다양함을 보인다. 의사·역사학 박사 등 해당 국가에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위해온 분들도 있다. 그러나 몇 년 전 노은 김규식 선생의 후손으로서 특별귀화했지만 일용직 노동자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분도 있다. 그는 경기도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로 아들마저 잃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세대가 내려가다 보면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지원을 받지 못하는 후손들이 생겨나게 된다.

 한편 독립유공자 후손임을 주장하지만 입증을 할 수 없거나 허위로 판명되는 사례도 있다. 정부는 전문적인 조사방법을 동원해 특별귀화허가신청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진력한다. 유전자검사가 이 목적을 위해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의 국적취득은 이처럼 여러 차원의 정책과 행정의 결과다. 오늘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귀환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에 대한 온 국민들의 관심과 따뜻한 마음이 필요한 때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무부 이민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