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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고백도 못 해본 16세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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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신이 꽃이란 걸 잊어버린 소녀가 있었다. 피기도 전에 짓밟혔으므로 소녀는 제 안의 꽃망울을 몰랐다. 그때가 열여섯 살쯤 됐을까. 짝사랑도 고백해 보지 못한 소녀였다.

 소녀의 조국인 조선은 1910년 이후 일본의 식민지였다. 1932년 일본은 중국 상하이에 ‘위안소’를 설치했다. 일본군의 성노예 역할을 하는 ‘위안부’가 그곳에 있었다. 일본은 식민지의 소녀들을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다. 소녀도 “배불리 먹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갔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학자들은 소녀처럼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들이 최소 8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조선인이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위안소도 폐쇄됐다. 위안소에 끌려갔던 조선의 소녀는 대한민국의 여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위안부로 끌려갔던 고통의 기억은 숨겨야 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간 대한민국에서 ‘위안부’라는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소녀가 할머니로 늙어 가는 동안 위안부 문제도 조금씩 잊혀졌다.

 1991년 8월 14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오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였음을 공개 증언했다.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줄지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는 모두 238명. 2015년 8월 현재 생존 위안부 할머니는 47명이다.

 본지 취재팀은 이 중 13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만난 강일출(87) 할머니는 열 손가락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다.

 “한창 멋 부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간 게 한이 맺혀 매일 손톱을 곱게 칠한다우. 꽃다운 시절 내내 몹쓸 고초를 겪었으니….”

 내일(15일)은 광복(光復) 70주년이다. 광복이란 빛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는 해방 이후 70년을 어둠 속에서만 지내다 할머니로 늙었다. 평균 나이 89.1세. 자신이 꽃임을 잊어버린 47명의 위안부 여성이 아직 살아 있다. 저들에게 빛을 되돌려줘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깊은 주름 아래로 고통의 강이 흐르고 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팀장)·유성운·채윤경·한영익·윤정민·김선미·김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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