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14년 만에 이뤄진 ‘이위종의 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헤이그 특사 이위종 지사의 후손 3대가 12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왼쪽부터 고손자 스타니슬라브(23), 손녀 류드밀라(79), 증손녀 율리아(46). [강정현 기자]

제 이름은 율리아 피스쿨로바(46). 푸른 눈, 붉은 머리카락의 제게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고조부는 대한제국의 초대 주(駐)러시아 공사 이범진(1852~1911) 선생, 증조부는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린 ‘헤이그 특사’ 이위종(1887~?) 지사입니다.

 광복 70돌을 사흘 앞둔 12일은 저와 어머니 류드밀라(79)에겐 가슴 벅찬 날이었습니다. 한국 법무부에서 다른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함께 한국 국적 증서를 받은 날이기 때문이죠. 할아버지 두 분이 1901년 항일 외교를 위해 시베리아 동토를 건넌 지 114년 만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 어머니 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제 할아버지들의 삶은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러시아를 움직여 국권침탈만은 막아보려 노력했던 이범진 공사는 1910년 한일병합 다음 해 1월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별장에서 자결을 했습니다. 그 둘째 아들 이위종 지사는 러시아 장교가 되어 항일무력투쟁 중 행방불명됐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시베리아 어느 벌판에서 눈을 감으셨는지….

 제 사명은 사라진 이 지사의 마지막 행적을 밝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집안 어른들로부터 들으며 자랐던 저는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왜 그렇게 나라에 몸과 마음을 바쳤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한국사 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도 그 때문이지요. 러시아 국립도서관에 있는 한·중·일 고(古)번역서 수천 권을 완독했고요. 할아버지들의 얘기를 담은 책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 『이범진』도 썼습니다.

 지난해에는 러시아 정부가 소장 중이던 이범진 공사의 책 4권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처음 러시아 공사로 왔을 때 러시아 정부에 기증한 책이라고 합니다. 고조부의 손길이 스쳤던 책에 손을 얹고 어루만지며 한참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겐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들 하지요. 제 할아버지들과 그 동지들은 자신과 아들딸들이 해방된 조국,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이 뜨겁게 투쟁하고 피눈물을 흘렸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나라가 있다는 걸 여러분이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할아버지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믿습니다.

글=이유정 기자, 모스크바=안효성 기자 uuu@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