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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일본 L투자회사 9곳 대표직서 신격호 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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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L투자회사에서 아버지를 해임하고 비서실장을 교체하는 등 신격호(94) 총괄회장을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퇴장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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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가 12일 일본 법무성에서 12개 L투자회사에 대한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분석한 결과 신 총괄회장이 L4·L5·L6를 제외한 9곳의 대표이사에서 해임됐다. 해임일자는 지난달 31일이고 등재일자는 지난 10일이다. 신 총괄회장이 해임된 L투자사에서는 신동빈 회장만 대표이사로 등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 회장은 6월 30일 대표이사에 오른 이후 한 달간 아버지와 공동대표로 있다가 단독 대표로 홀로서기를 굳힌 것이다.

 신 회장은 한국롯데에서도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아버지의 비서실장을 전격 교체했다. 이날 롯데그룹 내부 통신망 ‘모인(MOIN)’에 따르면 총괄회장 비서실장인 김성회(72) 전무가 11일자로 사의를 표명했다. 김 전무는 24년 동안 신 총괄회장을 보필해 온 인물로 지난달 27일 신동주(61)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과 함께 신 총괄회장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을 때도 동행했다. 롯데 관계자들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이 예고 없이 경영 현장을 방문할 때도 김 전무만은 빠짐없이 수행했다.

이일민

 공식적인 사의 이유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김 전무가 최근 심신 쇠약과 건강 이상을 호소해오다 며칠 전 직접 신 총괄회장에게 ‘더 이상 건강 때문에 업무가 어려울 것 같다’고 간청했고 이 점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 회장이 김 전무를 해임하고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인 이일민(56) 전무를 총괄회장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이 전무는 롯데백화점 해외사업부문장을 맡아 중국과 러시아 진출을 진두지휘한 그룹 내 해외통으로 꼽힌다. 이어 2008년 초 신동빈 당시 부회장의 비서로 발탁됐으며 올해 초 신 총괄회장실로 자리를 옮겼다가 최근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이 같은 인사는 ‘신동빈 체제 다지기’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자신의 사람을 앉혀 불필요한 분쟁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하는 등의 효과를 노렸다는 얘기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이번 롯데 사태 과정에서 아버지 곁에 신동주만 있고 신동빈은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대로 둘 수만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 회장은 형 신동주 전 부회장과의 대립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와 다른 가족 간 접촉을 막아선 안 된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아버지의 권위를 가급적 침범하지 않는 대신 ‘롯데호텔 34층=반(反)신동빈 세력 집결지’ 구도를 깰 해법으로 이번 비서실장 인사를 단행했다는 얘기다.

 동생에 비해 신동주 전 부회장은 활로를 못 찾고 있다. 지난 11일 밤 신 전 부회장이 급거 귀국한 것도 L투자회사 대부분의 대표이사직에서 아버지가 해임된 사실을 보고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신 전 부회장은 귀국 후 잠시 서울 성북동 자택에 들른 뒤 12일 새벽 신 총괄회장의 집무실 겸 숙소인 롯데호텔 34층으로 들어가 머물고 있다.

 그간 신 전 부회장의 언행으로 봤을 때 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의 안건을 무력화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반신동빈 세력’ 결집과 ‘소송’이라는 대응카드가 그것이다. 특히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 주총의 성격을 경영권 분쟁에 대한 표 대결이 아니라 그룹 개혁안 승인 절차로 규정한 상황에서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킬 방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호텔롯데의 기업공개 안건을 막아야만 그 다음 카드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앞서 신격호 부자와 일본행에 동행했던 신동인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이 사의를 표하며 ‘중립선언’을 했고 신 총괄회장 곁을 지키던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도 롯데호텔을 떠나 있는 상태다.

 결국 신 전 부회장의 마지막 카드는 아버지 신 총괄회장뿐이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해 달라고 설득하거나 신동빈 회장과의 타협안을 조율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은 이미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 그는 최근 일본 법무성에 신동빈 회장이 L투자회사 12곳의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법적으로 부당하다며 등기 변경 신청을 낸 상태다. 이와 관련, 롯데 관계자는 “이번 사태 전후로 이뤄진 신동빈 회장의 행보는 모두 이사회 의결 등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들”이라며 “신 전 부회장 측이 소송을 한다 해도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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