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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목포의 눈물’ 지역 문화유산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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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전남 목포 출신 가수 고(故) 이난영이 부른 대중가요 ‘목포의 눈물’은 그 어떤 가요보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노래다. 1935년 당시 대표적인 레코드사였던 오케 회사가 실시한 전국 6대 도시 ‘향토 찬가’ 공모에서 1등으로 뽑힌 작품이다.

 오케 회사는 목포 출신 시인 문일석의 가사에 손목인의 곡을 입혀 당시 19세였던 이난영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노래는 목포를 넘어 전국을 강타했다. 이난영 특유의 콧소리에 흐느끼는 듯한 창법은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슬픔에 빠진 한민족의 정서를 흔들었다.

 한국 가요사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목포의 눈물’이 발표 80주년을 맞아 목포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목포시는 12일 전문가 자문과 자료 조사 등 관련 절차를 거쳐 이 노래를 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중가요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노래는 가수 이난영이 지난 7일 작고한 목포 출신 한국무용가 이매방 선생과 6촌지간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난영은 남편인 작곡가 김해송과의 사이에서 애자·숙자 자매를 낳았는데, 이들은 1950~60년대 미국에서 인기를 모은 원조 한류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멤버이기도 했다.

 ‘목포의 눈물’은 발표 당시 조선총독부의 사전 검열을 피하기 위해 가사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이란 구절이 문제였다. 노적봉은 목포 유달산에 있는 봉우리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노적봉을 짚으로 둘러 군량미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처럼 위장해 왜군을 물리쳤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결국 레코드사는 ‘삼백년 원한 품은’을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으로 살짝 바꿔 발표해야 했다. 『한국 대중음악사 개론』 공동 저자인 장유정 단국대 교수는 “목포의 눈물이 크게 유행하자 일본 고등계 형사가 오케 회사 관계자를 소환해 문초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목포시는 이와 함께 유달산 중턱에 세워진 ‘목포의 눈물 노래비’(사진)의 문화유산 지정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이 노래비는 이난영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뒤인 69년 당시 목포에서 음반가게를 운영하던 박오주씨가 낸 성금으로 세워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요 노래비다.

목포시 삼학도에는 이난영을 기념하는 난영공원도 있다. 이곳에는 2006년 3월 경기도 파주 공원묘지에서 옮겨 온 이난영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기념사업회는 오는 10월 ‘목포의 눈물’ 발표 8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 예정이다.

목포=김호 기자, 한은화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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