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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1년도 안 남았습니다, 공약 몇 개나 지켰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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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3구 국회의원 공약 이행도 평가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240여 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이미 선거 준비 체제에 돌입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정치권은 논쟁 중이다. 선거구 확정을 둘러싼 줄다리기도 시작됐다. 이제 19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3년 전 이들은 유세 현장에서, 거리에서, 홍보물을 통해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 약속들은 선거 공약(公約)이라는 이름으로 유권자들에게 전해졌다. 그때 그 약속들은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공약을 지켰고, 지키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뭘까. 아직 지키지 못한 공약은 남은 기간 동안 이뤄질 수 있을까. 강남 3구 현역 국회의원 7명의 공약 이행 현황을 들여다봤다. 사진은 3년 전 선거 당시 각 의원들의 선거 벽보와 공보물이다. 포스터에 적힌 공약 완료·추진중·보류·폐기 건수는 해당 의원실이 자체적으로 평가한 내용이다.

전국 공약 이행률의 절반 안돼 … “완료 가능성 따졌는지 의문”

강남은 새누리당 ‘텃밭’으로 불린다. 강남·서초·송파구의 현 19대 국회의원 7명은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다. 정치권에서는 “진짜 선거보다 새누리당의 강남 3구 공천 따내기가 더 힘들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그런 강남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어떤 공약을 내걸었으며, 얼마나 실천했을까.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미경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들과 함께 공약의 내용과 실현 가능성 등을 점검했다.

“구체성 없는 공약은 희망 모음집에 불과
공약보다 당을 따지는 지역이라 공천 더 신경
어떻게 약속 지킬지 이행서 작성 의무도 없어”

지난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강남 3구 국회의원을 포함한 전국 지역구 의원을 대상으로 ‘총선 3년차 공약이행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각 의원실이 자신들의 공약 이행도를 자체 평가한 자료를 받아 정리한 것이다. 각 공약을 완료·추진중·보류·폐기 4단계로 나눴다. 그 결과 전국 국회의원들의 공약 완료 비율은 39.53%(2649건)로 나타났다. 10개 공약 중 약 4개를 지킨 셈이다.

하지만 강남 3구 국회의원 7명의 공약 완료 비율은 전국 평균을 훨씬 밑돌았다. 가장 높은 의원이 20%대 초반이었고 완료 건수가 전혀 없는 의원도 있었다. 나머지 공약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추진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는 江南通新이 각 의원실로부터 제공 받은 ‘공약 이행 자체 평가’ 결과다. 공약 이행 평가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평가 기준을 사용했다.

“실천도 평가도 못하는 감성 공약”

강남 3구는 국회의원의 공약 이행 완료 건수가 적을 뿐 아니라 애초에 지키기 어려운 슬로건에 불과한 공약이 많았다. 예를 들어 강석훈 서초구(을) 의원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대한민국’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튼튼한 대한민국’ ‘주거가 안정된 대한민국’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대한민국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세부 공약은 ‘청년들이 쉽게 취업할 수 있고, 엄마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 구축’ 등이었다. 강 의원은 이 공약을 ‘완료’한 것으로 평가했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강 의원은 근로기준법을 공동발의했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기 때문에 완료라고 평가했다”고 답했다.

박인숙 송파구(갑) 의원은 자신의 공약으로 ‘열심히 일한 만큼 대우받는 사회 만들기’를 내세웠으며, 이 공약 이행 여부에 대해서는 ‘보류’라고 답변했다. 김종훈 강남구(을) 의원은 ‘주거·교육 시설 개선’과 ‘폭력 없는 안심학교 만들기’를 공약으로 제시했으며 모두 ‘추진중’이라고 답했다.

김형준 교수는 “매우 감성적인 공약들”이라며 “구체성이 없으니 약속을 지켰는지 평가할 기준조차 세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미경 교수는 “(이 공약들이) 후보자의 정책 방향성은 보여줄 수는 있다”면서도 “구체성이 없는 이런 거대한 슬로건식 공약은 국회의원들이 어떤 사업·활동을 하든 이후에 약속을 지켰다며 꿰맞출 수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공약”이라고 평가했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공약이 아니라 희망 모음집”이라고 평했다. 이 사무총장은 “특히 강남은 ‘새누리당 깃발만 꽂으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약보다는 소속 당을 따지는 지역이기 때문에 후보들도 정책(공약) 개발보다는 공천에 힘을 기울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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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는 개발 공약은 포퓰리즘 변질 우려”

부동산·지역 개발에 관한 공약이 많은 것도 특징이었다. 김을동 송파구(병) 의원은 오금동·가락동·문정동·거여동 등 지역구 내 각 동 개발에 관련된 공약을 각각 2~5개씩 내걸었다. ‘남한산성 등산로 입구 정비’(마천1동) ‘거여 전철역 에스컬레이터 증설’(거여1·2동) ‘로데오 거리에 패션·문화예술이 접목된 제2대학로 거리 조성 및 상권 활성화’(문정동) 등이 김 의원의 공약이었다. 각 동에 해당하는 공약들만 합쳐도 20개가 넘는다. 하지만 현재까지 지켜진 공약은 2~3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공약에 대해 김 의원실 측은 ‘서울시와 송파구, 또는 관계 기관과 협의 중’이라고 답했다.

심윤조 강남구(갑) 의원은 ‘여성 평생교육 전용시설 건립 등 인프라 구축’ ‘청소년 인성교육을 위한 상담센터 운영’을 약속했지만 아직 이를 위한 시설은 세워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심 의원실 관계자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 여성능력개발센터 등 기존 시설을 운영 지원해주는 방식이 낫다고 판단해 방향을 틀었다”고 답했다.

지역 개발 공약 중에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대규모 건설 사업도 눈에 띄었다. 김회선 서초구(갑) 의원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현대화 사업으로 ‘고속버스터미널을 지하화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사업은 진척이 없는 상태다. 2010년 서초구가 고속버스터미널 지하화 ‘타당성 검토 용역’을 하긴 했지만 그 후론 잊힌 사업이 되고 말았다. 서초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지난 2년간 터미널 지하화는 논의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 측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현대화라는 큰 방향성 속에서 다른 사업과 함께 지하화도 진행해 나가고 있다”며 “워낙 큰 사업이다 보니 진척 속도가 더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석훈 의원은 ‘강남대로 지하 공간 개발’을 공약했다. 현재 강 의원실 측은 이 공약을 ‘보류’한 상태다. 강 의원실 관계자는 “인·허가 같은 행정 절차와 민간 자본 유치에서 차질이 생겨 지연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김형준 교수는 “사업에 들어갈 예산을 마련할 방법, 4년이라는 임기 내에 완료 가능성 등을 따져 봤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구청 측과 협의했고 경제 타당성을 충분히 고려했다”고 답했다. 이런 대규모 사업에 대해 이현우 교수는 “단계적인 계획 없이 개발 공약을 내놓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선거 승리만을 위한 공약, 포퓰리즘 공약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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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교육감 임무와 겹치는 공약 많아”

일부 공약은 지역 이기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유일호 송파구(을) 의원의 공약인 ‘문정법조단지·제2롯데월드 지역주민 우선 고용 추진’이 대표적이다. 이는 2017년 문정동에 들어설 예정인 법조단지와 잠실 제2롯데월드에 송파구 지역 주민을 우선으로 고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김미경 교수는 이 같은 공약에 대해 “지역 이기주의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며 “지역 주민을 위한 활동도 중요하지만 국가·국민 전반을 바라봐야 할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 의원실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 건설로 시민 대다수가 혜택을 보지만 이 때문에 주변 교통체증 문제로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게 사실”이라며 “이를 고려해 공약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구청장이나 교육감의 역할·임무와 겹치거나 배치되는 공약도 지적됐다. 서초구 김회선(갑) 의원은 ‘2014년까지 잠원동에 고등학교 신설’을 약속했다. 실제로 잠원동과 반포3동 주민들은 고등학교 신설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과 배치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010년 이후엔 이 지역에 새로 고등학교를 설립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강남·서초구 학생 수 대비 학교 수는 적정 수준이기에 신설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2012년 총선 이전에 이미 정해진 내용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 의원실 관계자는 “취임 후 이런 사정을 알게 돼 다른 동에 있는 학교를 옮겨오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이달 말에 잠원동과 반포3동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미경 교수는 “지역 개발 공약은 구청장, 교육 관련 공약은 교육감의 역할·임무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복지센터 짓겠다, 예술 특구 지정하겠다 같은 내용은 기초단체장이 내세울 만한 공약이지 국회의원의 공약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의원실에서) 공약을 지켰다고 말하는 지역구 사업의 경우도 구청(장)이 행정 업무 차원에서 수행할 수 있는 일”이라며 “굳이 의원 공약으로 정해야 하는 일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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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공약 남발해도 막을 방법 없어”

공약 이행이 미비한 이유에 대해 대부분 국회의원은 현실적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A의원실 관계자는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국가의 주요 현안이 계속 바뀌는데 여기에 대처하면서 공약까지 챙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B의원실 관계자는 “공약 완료 건수가 적다고 해서 의정 활동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120여 건이 넘는 민생·안전 법안을 발의했다”고 말했다.

당선 가능성만을 염두에 둔 전략 공천이 횡행하면서 선거 직전에야 지역구가 결정되는 정치 현실도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된 공약을 세우기 어렵게 하는 이유다. C의원실 관계자는 “선거 유세 4~5일 전에야 공천장을 받았다”며 “실현 가능성과 지역구의 발전 방향 등을 충분히 고려해 공약 세우기엔 짧은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김형준 교수는 이에 대해 “각 당에서 유세 3~6개월 전에 후보자를 선정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약을 만들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약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법 규정이 없다는 것도 국회의원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이유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공직선거법 66조에 따라 대통령과 기초단체장은 공약의 목표, 이행 절차, 재원 조달 방법 등을 명기한 선거공약서를 작성한다”며 “국회의원은 그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선심성 공약이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공약을 남발해도 이를 견제하거나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들이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공약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미경 교수는 “공약은 유권자와의 약속”이라며 “국회의원은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고, 유권자들은 국회의원들이 공약을 이행하는지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우 교수는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대표이자 국민의 대표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며 “표심을 의식한 선심성 공약만 나열할 게 아니라 국가 발전과 지역민의 미래를 동시에 고려한 공약을 만들어 실천함으로써 국민의 정치 혐오와 불신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19대 의원들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완료하지 못한 약속을 돌아보고 여기서 우선 순위를 정해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대표 공약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공약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당에 대한 신뢰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공약의 내용과 실천 여부가 지역 구민들의 선택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공약, 교육감이나 구청장이 하지 못하는 공약을 유권자에게 제시해야 한다”며 “참여 민주주의가 강화됨에 따라 공약에 대한 평가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4~18대 주요 공약 살펴보니

2000년 총선 땐 “DJ 정권 심판” 2008년엔 “종부세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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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를 제외하고 15~18대 강남 3구 국회의원의 소속 당적은 보수 정당인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이었다. 단 송파구(병)에서는 진보 정당 후보가 당선돼 오다가 2012년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되면서 보수 정당 지지로 돌아섰다. 최근 20여 년간 강남 3구 지역구 모두가 보수 정당 의원이 된 건 19대가 처음이다. 현 강남 3구 의원 대부분은 초선이다. 과거엔 강남에서도 다선 의원을 배출했다. 김덕룡 전 서초구(을) 의원은 13대부터 17대까지 내리 당선된 5선 의원이다.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4~18대 당선자 공보물에 실린 공약을 살펴보니 17, 18대 강남 3구 의원의 공약을 관통하는 주제는 ‘경제 살리기’였다. 18대 선거에선 종합부동산세 개정이 이슈였다. 당시 강남구(갑) 지역의 이종구 의원은 ‘종부세는 지방세인 재산세로 통합시켜 좌파적이고 징벌적인 요소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16대는 당시 ‘DJ 정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최병렬 전 의원은 ‘불법 도·감청과 계좌추적으로 불안한 국민, 알짜기업까지 외국에 매각하고도 불어난 외채’를 근거로 내세우며 ‘이번 선거는 이런 정권에 대한 엄중한 중간 평가’라고 주장했다. 15대는 당선자의 과거 경력을 홍보하는 내용이 많았다. 홍준표 전 의원은 ‘범죄예방과 학원폭력 근절! 시민법률 상담소를 개설할 모래시계 검사가 대안입니다’고 했다. 14대 박찬종 전 의원은 ‘이제는 도덕 정치의 시대, 정직, 용기, 결단의 시대’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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