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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환자·보호자 … 웃음이 피어나는 ‘마지막 병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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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의 체위변경을 돕고 있는 윤수정 인턴기자. 최정동 기자

말기 암 환자 완화의료(호스피스)에 대한 건강보험이 지난달 15일부터 적용됐다. 하루에 약 1만8000~2만3000원을 내면 이용이 가능하다. 삶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하면서 차분히 정리하고 심리적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2013년 기준 한국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12.7%에 불과하다. 미국(43%)이나 대만(30%)과 비교하면 ‘죽음의 질’이 떨어진다. 삶의 마감을 앞둔 호스피스 병동은 어떤 분위기일까. 1988년 국내 최초로 호스피스센터 문을 연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의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별관 3층에 있는 호스피스 병동.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생(生)과 사(死)를 가르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계단을 오르자마자 나를 반긴 건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라 환히 웃는 환자의 얼굴과 감사편지가 걸린 커다란 사진 액자였다.

“많은 사람이 이곳을 죽음만 기다리며 체념하는 곳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환자들은 오히려 웃음과 감사를 찾아요.”

호스피스 병동의 총괄업무를 맡고 있는 완화의료팀장 라정란 수녀의 말이다.

전국 병상 1005개 … 체계적 시설 아쉬워
성모 호스피스 병동의 병상 수는 총 23개. 대형병원 중 부산대병원(27개)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규모다. 이른바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서울삼성·서울성모) 중에서는 유일하게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병상은 늘 부족하다. 대기자만 50여 명이다. 라 수녀는 “현재 전국 호스피스 병상 수는 총 1005개로 그 수 자체가 모자라는 건 아니지만 체계적인 시설을 갖춘 곳이 드물어 가동률이 80%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의 핵심은 자원봉사자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오전·오후 1팀씩 4~5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어떤 보수도 받지 않으면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보듬는다. 욕창 방지를 위한 체위변경, 목욕과 세발, 일상적인 간병을 맡는 것은 물론 보호자를 위로하는 역할까지 한다. 병동 전담 의료진은 의사 4명과 간호사 18명(3교대)으로 구성된다.

오전 9시30분. 호스피스 아침 회의로 하루가 시작됐다. 시작기도와 함께 임종한 환자들에 대한 첫 보고가 이뤄졌다. 어제도 한 환자가 임종을 맞았다. 엄숙한 침묵이 감돌았다. 임종 보고 후엔 입원 환자 하나하나의 상태를 체크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환자 개인 상태뿐 아니라 가족들의 불안 상태도 함께 체크했다. 칸칸이 환자 이름·병명·상태 등을 체크하도록 나누어준 전용 수첩이 금세 빼곡하게 채워졌다.

회의가 끝나자 본격적인 봉사가 시작됐다. 첫 번째 병실 문을 열자 86세의 할머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들어 있었다. 본인은 암에 걸린 사실을 알지 못한다. ‘호스피스’란 단어를 입 밖에 내어선 안 된다고 주의를 받았다.

침대 끝에는 똑같은 자세로 방치되거나 이중 변경을 막기 위한 ‘체위변경 카드’가 붙어 있었다. 바로 눕기, 우측위, 좌측위. 3시간 전 바로 눕기에 체크됐으니 이번엔 우측위 차례다. 함께 간 이재민(60)·박미리(58) 봉사자와 같이 조심스레 할머니의 몸을 돌렸다. 가벼운 손짓에도 ‘쿨럭’ 하고 기침을 토해내는 할머니의 눈이 고통스럽게 열렸다. 당황한 나와 달리 봉사자들은 능숙한 손길로 할머니를 안심시키며 재빨리 체위를 변경했다. 베개를 꺼내 손으로 털어 열을 식힌 뒤 다시 괴어주었다. 비로소 할머니의 표정에 시원함과 편안함이 비쳤다.

6304호 김기현(72·가명) 환자는 54번 찬송가(‘주님은 나의 목자’)를 가장 좋아한다. 암 덩어리로 목이 볼록하게 솟아났지만 그는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오히려 “여기 와서 매일 봉사자들이 찬송가를 불러준 덕에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고 말했다. 어느 틈에 찬송가 꾸러미를 챙겨온 봉사자가 성가를 선창했다. 봉사자들은 환자 종교에 따라 찬불가·찬송가·가톨릭성가 등을 항상 챙겨 다닌다. 나는 봉사자들과 함께 그가 좋아하는 ‘주님은 나의 목자’를 불렀다. 그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피어났다.

“처음엔 항암치료를 중단하면 불효인 게 아닌가라는 고민에 괴로웠어요. 하지만 아버지도, 우리도 작별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김씨의 딸(34)은 슬프지만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슬픈 일이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도 숱한 눈물을 흘린다. 그럼에도 눈물이 죽음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러기에 죽음을 터부시하기보단 의미 있고 존엄하게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다.

7년 전부터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한 김영화(34) 간호사는 “처음에는 정말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김 간호사는 “입원하신 분들께 날 위해 꽃을 들고 천국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며 “수많은 분들을 마음에 묻었으니 아마 일렬종대로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고 하면서 웃었다.

점심엔 보호자끼리 식사하며 아픔 공유
점심시간은 환자가 아닌 가족을 위한 시간이다. 간병을 하느라 바쁜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것은 물론 보호자끼리 식사를 하며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위로를 얻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박순(52) 봉사자는 “호스피스를 거쳐 간 많은 가족은 하나같이 점심 식사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고 하더라”면서 “대부분 후원회에 가입해 기부도 하고 점심 식사에 쓰일 반찬도 보내주신다”고 말했다.

오후는 목욕과 세발 봉사 시간. 목욕봉사는 4인1조 팀으로 진행된다. 각기 상반신·하반신 좌우를 맡는다. 초보 봉사자인 나는 비교적 환부가 없는 다리 부분을 맡았다. 남명희(52) 봉사자는 “수습 때는 3개월 내내 다리만 닦기도 했다. 그만큼 호스피스 봉사 중 목욕봉사가 제일 고(高)난이도”라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직접 목욕대로 옮겨야 하고, 오랜 병환으로 피부가 약해진 환자들은 물 온도나 비누칠 세기도 세심히 조절해야 한다. 환부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를 받는다.

예은주 호스피스 봉사팀장(54)은 “남성 환자들은 여자 호스피스가 목욕시켜 드리는 걸 처음에는 꺼린다. 긴장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기에 충분히 설득을 통해 안심시키고 천으로 주요 부위는 항시 가려드린다”고 설명했다.

이날 목욕 대상자는 위암 말기인 박현철(52·가명)씨였다. 삶을 정리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 3개월 전 본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최근 상태가 악화돼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왔다. 딸(21)이 간호 중인 그는 입원 후 목욕을 해본 적이 없다. 고된 항암치료로 꼬챙이처럼 바싹 마른 그는 우울감이 심했다. 목욕 중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하지만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목욕이 끝나자 그는 새사람이 됐다. “컨디션이 괜찮으세요”라고 봉사자가 묻자 환하게 웃는 얼굴로 손가락을 말아 연신 ‘오케이’ 사인을 보였다.

오후 4시30분. 목욕봉사에 쓰인 타월 빨래를 너는 것으로 모든 봉사가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전의 그 계단과 다시 마주했다. 그곳은 더 이상 어둡고 비좁은 죽음의 경계가 아니었다. 호스피스 병동은 환자와 가족이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가장 인간적인 곳인지도 모른다.

윤수정 인턴기자(연세대 정치외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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