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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아침 9시 … 개성선 8시30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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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5일부터 서울의 9시는 평양에선 8시30분이 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7일 광복 70주년인 오는 15일을 기해 표준시간을 30분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통신은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표준시간으로 정하고 ‘평양 시간’으로 명명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삼천리 강토를 무참히 짓밟고 우리나라 표준시간까지 빼앗았다”며 이번 조치가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은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지난 5일 이 같은 정령(政令·행정명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평양 시간이 새로 생기면 남측에선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가장 먼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출입경 절차를 마치면 시곗바늘부터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입경 절차는 정부가 발행한 방문증을 제시하고 세관·출입경·검역의 절차를 밟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때 표기 시각이 남북이 달라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정기섭 회장은 “공단 내에선 불편할 게 없지만 시간이 다르면 남측과 오가는 데 혼선이 생길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에서 의류 공장을 운영하는 제정오씨는 “(두 개 시간을 한 화면에 표시하는) 해외여행용 ‘듀얼 시계’를 구입할 예정”이라며 “남북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아 착잡하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도 후속 대책 마련을 예고했다. 개성공단 업무를 총괄하는 이상민 통일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은 “북측 총국에서도 관련 대책을 세운 후 (남측) 관리위와 함께 실무 사항을 조율할 것”이라며 “개성공단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 경우 항공 관제 등에서의 조정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들은 전했다. 현재 인터넷에서 ‘평양 시간’을 검색하면 서울 시간과 평양 시간이 동일하게 뜨지만 15일부터는 평양 시간이 30분 늦게 가는 걸로 바뀐다.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 사건 이후 중단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경우 관광객들은 30분 시차를 겪게 된다.

 한국은 원래 1908년 한반도 중앙부를 지나는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표준시를 정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조선총독부가 일본 표준시에 맞출 것을 지시함에 따라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사용해왔다. 그러던 중 54년에 동경 127.5도로 복귀했으나 61년 8월 다시 동경 135도로 표준시를 변경했다. 남한에선 그동안 여러 차례 일본 기준 대신 127.5도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주한미군의 군사작전 변경 등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해 동경 표준시를 유지해왔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표준시 변경으로 남북 교류에 지장이 초래될 것 같다”며 “장기적으로는 남북통합, 표준통합, 남북 동질성 회복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분단 70주년이기도 한 8·15에 남북의 시간마저 통일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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