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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전운 짙은 2017년 극동 … 한국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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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크레바스
강희찬 지음, 메디치
272쪽, 1만4500원

패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부제는 ‘가상다큐 동아시아 2017.’ 상상 속 미래를 픽션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은 무수하다. 하지만 겨우 2년 후, 2017년의 동아시아 정세를 소설로 점쳐 보겠다고? 과거와 현재의 국제 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도전하기 힘든 작업이다.

 이야기는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다케시마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에 나서며 시작한다. 책 속에서 2017년 미국의 대통령은 공화당의 젭 부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헌법 개정에 지지의사를 표한다. 국민투표를 앞두고 아베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센가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전격 방문하고, 격분한 중국 정부는 군사적 대응을 준비한다. 중국과 교감한 북한이 핵미사일을 전면 배치하겠다고 발표해 동아시아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다.

7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집단적 자위권 입법 강행에 반발하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 총리 관저와 한국의 청와대 정무수석실, 중국 당서기실 등에서 이뤄지는 한국·일본·중국·미국 수뇌부들의 공식, 비공식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각국 대통령이나 총리는 물론이고, 핵심관료나 여당 지도부까지 실명 그대로 등장시켜 현실성을 높였다. 파국으로 치닫는 동아시아의 현실 속에서 국익을 지키려는 각국 지도부의 치열한 고민과 전략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소설 형식이지만 곳곳에 정치인들의 실제 발언이나 상황에 대한 부연 설명을 달았다. 덕분에 동아시아 외교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책장이 넘어갈수록 동아시아의 복잡한 외교 지형도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술술 읽힌다.

 이야기 속에서 한국의 비중은 의외로 적다. 청와대 회의의 대부분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보죠”로 마무리된다. 주변국의 치열한 국익 경쟁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한국 외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민간 싱크탱크인 국가경영전략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지금 한국이 외교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시점에 와 있고 앞으로 몇 년간 외교적으로 중요한 판단을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빙하 표면의 균열로 생긴 틈을 뜻하는 제목 ‘크레바스’는 우리 외교가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크레바스 같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다.

 그렇다면 이 실화 같은 소설에서 동아시아의 전쟁 위기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전체 줄거리 중 ‘가장 소설적’이라 생각되는 결말은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남겨둔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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