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노래로 배웠네]<29> 오늘 전화하면 우리 헤어질 거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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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그는 여느 때처럼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기대에 응하고 싶지 않았다. 피곤했고 혼자 있고 싶었다. 무엇보다 해맑게 웃으며 그와 통화할 자신이 없었다. 요즘 그의 투정이 늘었다. 내가 문자 답장이 늦고 전화도 뜸해졌단다. 혼자만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투정이 늘수록 내 감정도 의심스러워졌다. '나 정말 그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결국, 그의 고집대로 난 전화를 했다. 역시나 우리는 말다툼을 했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말을 한참을 듣고 있던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헤어지고 몇 달 동안은 정말 홀가분했다. 특히 나는 말 없는 퇴근길이 너무나 좋았다. 그간 나는 퇴근길에 40여 분 간 그와 전화 통화를 했었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처음으로 올림픽 대교에서 바라보는 한강 다리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깨달았다. 한편으론 서글프기도 했다. 그 날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헤어지지 않았을까. 그는 왜 하필 그날 나에게 통화를 고집했을까.

이별의 충격은 애먼 데서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를 만나기 전 만났던 남자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미웠던 그의 얼굴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나의 말에 상처받았을 그를 생각하니 꼭 껴안아 주고 싶기도 했다. 밤만되면 아름다웠던 옛일이 떠올랐다. 그리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헤어진 모든 남자 친구들이 아련하게 그리웠다.

우리는 왜 연애를 하는 걸까? 한평생 함께 살아갈 이성을 찾기 위해서? 어차피 결혼할 인연이 따로 있다면 왜 굳이 연애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생채기 내는 걸까? 나는 한동안 인연의 무게가 버거웠다. 내가 했던 옛사랑이 모두 하찮게 느껴졌다.

어느덧 마지막 이별을 한 지도 1년이 넘었다. 이별의 감정이 어땠는지 가물가물하다. 분명한 건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져도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아예 떠오르지 않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나는 종종 옛 연인이 떠오른다. 이때 너는 이랬었지, 나는 이랬었지.

여러 이별을 겪으면서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일상에 파묻혀 하루 하루를 견뎌오면서 왜 지난 사랑에 실패를 했는지 되새김질 해온 덕분이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 지난 사랑을 억지로 붙잡을 순 없다. 이렇게 나는 너를 잊어갔다. 너는 나를 어떻게 지워갔을까. 물어볼 순 없지만 궁금하다.

P.S 얼마 전에 재밌는 설문조사가 있어서 덧붙인다. 여자 사람으로서 일부분 공감하기에.

"여러분은 헤어진 연인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남녀 4백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요, 남성은 60%가 그립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분노를 느낀다는 대답이 24%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별한 연인의 기억을 지우는데 필요한 시간은 남성은 1년에서 2년, 여성은 3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뒷북 기자 stepbehi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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