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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블랙홀 서울대, 칭찬 받을 자격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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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서울대의 세계 대학 순위는 겨우 50위를 넘나든다. 독자적인 학문 생태계와 국제화 등이 세계 유력 대학들에 크게 뒤진다. 이들과 경쟁할 시간도 부족한 서울대가 유독 진을 빼는 데가 있다. 바로 입시다. 미국 하버드·예일·스탠퍼드대처럼 각국의 우수 학생 유치 경쟁이 아닌 ‘토종 입시’에서다. 그런데 갈팡질팡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통합논술에 열을 올려 다른 대학들이 뒤쫓게 만들더니 현 정부 들어서는 이를 폐지하고 수시 전형을 75%까지 늘렸다. 교육부가 사교육을 유발한다며 논술 폐지를 주문하자 이를 따르면서 수시 중심(학교생활부 종합전형)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그 비중이 과도해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왜 그럴까. 서울대는 대한민국 입시의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 학교·학생·학부모·사교육의 모든 관심을 빨아들인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교육부는 교묘하게 서울대를 앞세워 대학들을 통제한다. 교육부가 최근 서울대를 입시 운영 베스트 대학(고교 교육 정상화 기여 대학)으로 뽑은 것이 단적인 예다. 선정된 60개 대학 중 가장 많은 25억원을 선물했다. 세계 유력 대학들이 입시로 정부 칭찬을 받고 포상금까지 챙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도 하지 않지만, 설령 그런들 자존감이 강한 대학들이 따르겠는가. 그런데 서울대는 정부 미끼를 덥석 물었다.

 교육부는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다양한 사업을 내걸고 대학을 옥죈다. 대학특성화사업과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 등 전체 액수가 수조원에 이른다. 나름 성과도 있고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입시까지 점수를 매겨 연간 500억원을 나눠 준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입시 자율화를 외치던 대학들이 덜컥 ‘예스’를 한 것도 우스꽝스럽다.

 더 심각한 것은 제도의 공정성과 실효성이다. 서울대가 1위에 뽑힌 것이 특히 그렇다. 교육부는 이렇게 칭찬했다. “전체 입학정원의 75%를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뽑고, 논술을 폐지했으며, 수능 위주의 정시 선발 인원을 계속 줄이고 있다.”

 전국 60만 수험생 중 최상위권 3100여 명을 뽑는 서울대가 과연 이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서울대의 수시·정시 비중은 5년 전(2010학년도)에 60대 40이었다. 올해(2015학년도)는 그 비중이 75대 25로 벌어졌다. 결과가 어땠을까. 특목고(예·체능 제외)·자사고 출신 합격자는 같은 기간 794명(전체 정원의 23%)에서 1334명(40%)으로 증가했다. 반면 일반고는 2441명(71%)에서 1799명(53%)으로 줄었다. 여기에 지역균형선발 인원 560명을 빼면 실제로 특목·자사고생과 순수 경쟁을 통해 입학하는 일반고생은 38%에 불과하다. 그 사이 신생 자사고가 늘어난 점을 감안해도 일반고 약세가 두드러진다.

 이런 추세는 수시·정시로 나눠 보면 더 확연해진다. 수시는 특목·자사고 합격자 수가 5년 사이 587→897명, 정시는 207→437명으로 급증했다. 당연히 일반고는 그만큼 숫자가 줄었다. 서울대는 전체 정원의 23%를 뽑는 지역균형선발만 수능 최저등급을 본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내신·비교과·면접으로 뽑는다. 그런데 수시를 늘리자 일반고가 힘을 못 쓰는 것이다. 서울대가 수시에서 커리큘럼과 특기활동 등이 우수한 특목·자사고생 중심으로 뽑는다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서울대가 수시로 치고 나가자 상위권 대학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특목·자사고 중심 선발 의도를 눈치챈 것이다. 이런 입시는 고교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고 대다수 학생의 열패감만 부채질 한다. 입시 통계가 이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특히 초등생에게까지 ‘사교육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단초가 된다. 현실이 이런 데도 교육부는 서울대를 고교 정상화 일등공신으로 치켜세웠다.

 결론적으로 교육부가 서울대를 ‘입시 베스트’로 뽑은 것은 문제다. 언제까지 그런 제도로 대학을 길들일 셈인가. 당장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 서울대도 자성해야 한다. 수시·정시 비율의 적절한 균형과 안배를 통해 특목·자사고를 편애한다는 의혹을 씻어야 한다. 그리고 대입 자율화를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세계의 대학들은 뛰는데 우물 안에 앉아 교육부 장단이나 맞출 때인가. 매년 4000억원의 세금을 쓰는데 25억원을 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최고 대학의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