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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뉴스] 노량진수산시장 하수로, 21년 청소 베테랑도 두 손 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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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지면·디지털 융합 콘텐트 ‘액션뉴스’를 시작합니다. 취재기자가 현장을 ‘액션캠’으로 촬영해 지면 기사와 함께 온라인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에 게재합니다. 액션캠은 몸에 부착해 촬영하는 카메라로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합니다. 영상은 아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액션뉴스는 거대한 하수로의 세계, ‘언더시티(under city)’ 이야기입니다.

위잉위잉- 철컥-.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우면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대형 맨홀의 뚜껑을 열자 고약한 하수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포클레인 삽에 몸을 싣고 10여 초쯤 지하로 내려갔다. 눈앞에 폭 2.5m, 높이 2m가량의 거대한 수로가 펼쳐졌다.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검은 펄이 정강이 부분을 덮었다. 빗물을 타고 쓸려 내려온 담배꽁초 등 쓰레기도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 거대한 수로는 우면동 일대 하수가 모이는 본류(本流)다. 도로 가장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배수로의 물이 크고 작은 관을 거쳐 이곳에 모인다. 도시의 오·폐수도 강물처럼 지류(支流)에서 본류를 거쳐 하수처리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서울 지하에만 1만392㎞의 수로가 엉켜 있다. 도시 아래 숨은 또 다른 도시, ‘언더시티(Under City)’다.

 언더시티의 진짜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이곳에 들어가 오물을 퍼내는 이는 전국적으로 20여 명에 불과해서다.

 이 준설업자들이 수십만㎞에 달하는 전국 하수로 전체의 준설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하수로 준설은 주로 여름철 장마·홍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대부분의 작업이 3~7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그르르릉-.

 준설업자 이현상(35)씨가 준설장비 ‘로더(loader)’를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로더는 쌓인 퇴적물을 바닥에서부터 긁어 퍼담을 수 있는 삽과 비슷한 장비다. 좁은 수로에서도 작업할 수 있게 폭 1m 정도 되는 작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방수코팅 덕에 수심 1m 물속에서도 작업할 수 있어 ‘도시 잠수함’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이씨는 “장비를 이용해 하루 8시간 기준, 15t 덤프트럭 10대 분량을 뽑아낸다”고 했다. 일당은 장비대여료를 포함해 55만원이다.

 “우면동 하수로는 빗물 전용이라 정말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전국 하수로의 절반가량은 방독면에 우의, 장갑까지 완전 무장을 해도 작업하기 힘든 음지 중의 음지라고 할 수 있어요. 작업환경이 워낙 열악하니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죠.”

 이씨의 말처럼 서울의 ‘언더시티’에서 빗물과 하수가 따로 분류된 수로는 전체의 6.5%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93.5%의 수로에서는 빗물과 오·폐수가 마구 섞인다.

 업자들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는 곳은 화학공단 주변이다. 유독가스가 수로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다. 각종 산성 물질 때문에 한두 시간 작업에 옷이 갈색으로 변색되는 건 예사다.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은 작업이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고층 빌딩에서 수시로 오수를 내보내 유난히 수심이 깊기 때문이다.

 하수로 준설 경력 21년인 박재수(58)씨는 ‘언더시티 박사’로 통한다. 박씨는 20여 년 전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하고 하수로 준설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서울 시내에 가보지 않은 하수로가 없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울에서 업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곳이요? 단연 영등포구 양평동 롯데제과 주변 지하 수로죠. 거기 하수로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벽에 따닥따닥 붙어서 천장까지 가득 채우고 있거든요. 가끔 토끼만 한 쥐가 보이기도 하고…. 공장에서 나오는 기름과 과자 부스러기, 미지근한 물 등이 뒤섞여 바퀴벌레나 쥐가 서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 같아요.”

 박씨는 하수로에서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물론 경차 ‘티코’까지 건져본 적도 있다고 한다. 올해 초 경기도 동두천에서는 작업 도중 시신 한 구를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작업을 포기한 곳이 딱 한 곳 있다. 노량진수산시장 인근 하수로다.

 “수십 년 동안 썩은 생선이 굳어 상상도 못할 냄새가 나더라고요. 두 시간 만에 두 손 들고 나와버렸죠.”

 언더시티를 누비는 준설업자들은 서울 시내 하수로 가운데 30% 정도는 기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준설업자는 “오래돼 바닥에 구멍이 난 수로가 상당히 많다”며 “땅이 꺼질 위험이 큰 곳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준설업자는 “지하철 공사를 한 뒤 철제 H빔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아 수로가 막혀 있는 경우도 있다”며 “로더가 지나갈 수가 없어 작업을 포기해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서울 시내 하수로에서 2014년 한 해 동안 준설한 퇴적물은 9만8930㎥다. 양천구(9157㎥)가 가장 많고, 종로구(426㎥)가 가장 적었다. 같은 서울에서도 20배 넘게 차이 나는 셈이다. 지대가 낮으면서 한강을 낀 강서구(7305㎥), 강남구(7282㎥), 영등포구(7304㎥) 등이 준설량이 많았다. 반면 비교적 지대가 높고 언덕 지형이 많은 동작구(627㎥)와 관악구(686㎥)는 준설량이 적었다.

취재·액션캠 촬영=한영익·윤정민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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