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호라이즌스 명왕성 관측은 기술 아닌 문화코드의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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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을 배경으로 뉴호라이즌스 호가 탐사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인간의 눈은 우주 지평선 끝까지 탐험했다. 1965년에는 우주 태초에서 보내온 신호를 관측했고, 1980년대부터는 광시야 은하탐사관측을 통해 우주 지도를 만들고 있다. 구글 유니버스를 검색하면 지구상에서 지도를 보듯이 이웃한 은하들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발길은 아직 태양계도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은 달에 발자국을 남겼고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보낼 계획이지만 태양계의 경계까지 인간이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명왕성까지 날아간 뉴호라이즌의 성공은 '우주 개척'에 대한 발상의 전환 덕분이다. 인간의 발자국을 남기지는 못해도 인간이 만든 도구를 보내서 근접 촬영하고 관측자료를 송신하는 탐사를 택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우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채울 수 있었다. 뉴호라이즌의 명왕성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각인됐다. 이는 기술의 승리가 아닌, 탐사기술을 인간의 본성에 접합시킨 문화적인 코드의 승리라고 봐야 한다.

행성 중력을 이용해 추진력 얻어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대통령이었던 1804년 메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는 탐험대를 조직해 서부를 탐험한다. 후발 개척회사들이 서부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서였다. 175년이 흐른 1979년에는 서부시대에는 없었던 새로운 개척의 개념을 도입해 우주를 탐험한다. 뉴호라이즌이나 그 전신인 보이저의 탐사 개념은 ‘플라이 바이(flyby, 근접 통과)’다. 인간이 탐사선에 승선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탐사선이 행성에 착륙을 시도하는 것도 아니다. 탐사선이 행성에 최대한 근접 비행하며 관측자료를 수집한 후에 멀어져 가는 것이다.

이렇게 뉴호라이즌은 명왕성에 접근했고, 눈 앞에서 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의 선명한 사진을 보내왔다. 그것을 본 우리는 인간이 명왕성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새로운 우주개척의 개념에 동의한 것이다. 이것이 뉴호라이즌 미션의 본질이다.
50여 년에 걸친 새로운 개념의 우주개척 역사의 시작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의 손에서 시작한다. 1964년 칼텍(캘리포니아 공대) 학생이었던 게리 플란드로는 가까운 곳에 있던 JPL(제트 추진 연구소)의 여름 인턴 연구원이 됐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행성의 운행궤도를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주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75년에 한 번씩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이 정렬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최근에 네 행성이 정렬된 것은 우연히도 서부 개척이 시작된 1804년이었다. 그리고 다음 기회는 15년 후인 1979년이었다. 만일 탐사선을 1977년에 발사할 수 있다면 각 행성까지 날아간 탐사선이 그 중력을 이용하여 다음 행성으로 비행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게 된다. 이 탐사가 실현될 수 있다면 목성부터 해왕성까지 근접 탐사가 가능하다. 플란드로는 또 2006년에 탐사선을 발사한다면 목성에서 건너뛰기를 해서 2015년 경 태양에 가장 근접하는 명왕성까지 탐사할 수 있다는 보고도 했다.

이 아이디어는 목성·토성·천왕성 그리고 해왕성을 탐험한 보이저 1호와 2호로 현실화된다. NASA(항공우주국)는 보이저를 보내기 전에 사전 탐사선인 파이오니어 10호를 먼저 보낸다. 목성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져 있는 소행성을 빠져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했고, 목성의 자기권으로부터 탐사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방사선 효과를 관측해야 했다. 목성의 자기권은 지구에 비해 1만 배 정도 강했다. 그 당시 설계되던 관측장비는 탐사선이 목성에 도착한 순간 모두 작동이 정지될 것이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모든 장비를 처음부터 다시 제작해야 했다. 탐사선 제작진의 입술이 말라갔다. 이번을 놓치면 2150년에야 기회가 오는 것이다. 그들은 어려움을 모두 극복하고 약속한 1977년 보이저 1호와 2호를 발사한다.

보이저 1호는 토성의 궤도까지만 근접 비행을 하고 여기서 얻은 추진력을 이용, 행성 궤도면을 이탈해 천구의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태양계의 끝으로 날아간다. 보이저 2호는 토성에서 출발해 천왕성과 해왕성까지 모두 탐사를 마친다. 보이저 2호의 해왕성 탐사가 끝난 이후 궤도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 해왕성 너머에 있는 명왕성을 탐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해왕성을 끝으로 보이저 1호처럼 행성 궤도면을 이탈해 이번에는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태양계의 끝으로 날아간다. 이렇게 명왕성을 남겨 두고 미션을 종료할 것인가.

9년 6개월만에 명왕성에 도달

2000년대에 명왕성을 탐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다. 명왕성이 태양의 근접점에 위치할 때 목성이 명왕성과 지구 사이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앨런 스턴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탐사선 뉴호라이즌을 2006년에 발사할 계획을 세운다. 탐사선이 명왕성의 지표면을 볼 수 있으려면 명왕성 대기가 열려 시야가 확보되는 2015년 근접점 시기를 놓치면 안되는 것이다. 2006년 1월 발사된 뉴호라이즌은 9시간 만에 달까지의 거리를 주파하고, 13개월만에 목성에 도착한다. 2007년 스턴이 이끄는 관측팀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목성에서는 두 가지 미션을 완수해야 했다. 하나는 보이저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목성 중력을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일이었고, 두 번 째는 각종 관측 장비들을 검증하는 일이었다.

관측팀은 목성의 이오 위성에 뉴호라이즌의 촬영기구를 조준했다. 뉴호라이즌 고유의 초고속 상하 스캔을 마친 후에 지상으로 보내온 자료를 분석하게 된다. 필터링을 하지 않은 초벌 사진에는 초생달 같은 이미지가 선명하게 들어 왔다. 콘트라스트와 색감 조절을 거쳐 이오가 어두운 표면까지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관측팀을 전율하게 만든 이미지가 나온다. 이오 표면의 화산 분출까지 촬영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목성에서 성공적으로 성능 점검을 마친 뉴호라이즌은 9년 동안의 긴 동면에 들어갔다. 약속한 2015년 7월 14일에 깨어나면 인류의 눈 앞에 명왕성의 선명한 모습을 전달해 줄 것이었다.

명왕성의 영문 이름 플루토는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의 다른 이름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전이처럼 명왕성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선에 놓여져 있다. 생명이 숨 쉬는 태양계와 죽음과도 같은 텅 빈 공간이 펼쳐지는 인터스텔라다. 그 새로운 세계로 가는 입구에서 뉴호라이즌은 긴 동면에서 깨어났다.

뉴호라이즌이 눈을 떴을 때 태아의 상태와 같은 암석 행성을 만나게 된다. 행성 하단부에 하트처럼 보이는 얼음 평원은 인간과의 첫 만남을 명왕성이 반기는 것처럼 보였다. 태양과 근접점에 있는 명왕성은 행성의 민낯을 보여줬다. 이 만남은 채 하루도 안돼 끝났지만 방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관측자료는 행성의 형성과정, 카이퍼 벨트(Kuiper Belt)에 존재하는 얼음 소행성의 역할, 더 나아가 생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인류에게 제공할 것이다.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한 행성에 플루토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태양계의 경계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지만 태양계는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명왕성을 넘어서면 카이퍼 벨트로 진입하게 되고 여기에는 아직 인간이 근접해 보지 못한 소천체들이 있다. 명왕성을 넘어선 뉴호라이즌은 카이퍼벨트에 있는 얼음 암석으로 향해 날아갈 것이다. 이미 명왕성의 위성인 카론(저승의 강 나룻배 사공)에게 다음 세상으로 가는 뱃삯을 지불했지만, 태양계의 다음 세상인 인터스텔라로 접어들기 까지는 긴 여정이 남아 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도 관측 계속

뉴호라이즌이 명왕성에 근접한 이 순간 보이저 1호가 아직 살아 태양계의 끝을 향해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 신호를 받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2015년 현재까지도 자료를 보내오고 있다. 지금은 주로 태양에서 오는 방사선과 바깥 우주에서 오는 우주선 입자를 관측하고 있다. 2013년은 보이저 1호가 보내오던 신호가 처음으로 역전된 해였다. 태양으로 향해있는 검출기 신호는 급감하고, 우주로 향한 검출기 신호는 증가한 것이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태양계의 영향보다는 바깥 우주의 영향을 더 받는 인터스텔라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경이로운 보고였다. 드디어 인간이 만든 기구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태양풍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지역부터 인터스텔라 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부에는 오르트 구름(Oort cloud)이라고 부르는 얼음조각의 집합체가 있다. 여기서 혜성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보이저1호가 태양풍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인터스텔라로 진입을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여전히 태양의 중력권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보이저 1호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도 인간이 만든 기구가 완전히 태양의 중력권까지 벗어나는 것을 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 탐사선들을 통해서 태양계가 아닌 인터스텔라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은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50여 년에 걸친 미국의 태양계 탐험의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 태양계 탐사가 성공한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 기술력보다도 ‘태양계 탐사’라는 미션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었던 그 사회의 인문학적인 능력이었다. 행성을 ‘플라이 바이’ 란 개념으로 탐사하고, 태양계를 넘어 인간이 만든 기구를 인터스텔라에 들여 놓는다는 개념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었던 문화의 힘인 것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소양만으로는 역사적 성과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태양계 탐사’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기술력을 결합해내는 것처럼 무언가 문화적인 컨텐트를 중심으로 기술력을 결합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기초과학은 과학에서 과학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존재에 대한 가치에서부터 출발해 기술의 힘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