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막기 … 초등생 복잡한 계산 교과서에서 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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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부터는 원주율(π)을 ‘3.14’로 암기하는 대신에 원주율을 구하는 원리를 배우게 된다. 원주율을 넣어 계산하는 복잡한 문제 풀이 때문에 학생들이 수학적 사고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수학에 흥미를 잃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초등학생들은 또 소수와 분수가 섞인 복잡한 계산을 배우지 않게 된다.

 31일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발표하는 ‘2015 개정 수학 교육과정 시안’에선 초·중·고교에서 배우는 수학 학습 내용 감축 외에도 ▶창의·융합, 정보처리 등 수학을 통한 역량 향상 ▶수학에 대한 재미와 자신감 제고 ▶실생활 중심의 내용 재구성 ▶계산기 등 공학적 도구의 활용 권장 등이 핵심 내용으로 담겼다.

 새 교육과정에선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어렵거나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는 내용을 빼거나 그 내용을 상급 학교 수업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르(a), 헥타르(ha) 등 한국 사회에서 잘 쓰지 않는 넓이 단위를 초등 수학에서 가르치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중학 수학에선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의 활용, 도수분포표로 자료의 평균 구하기 등이 빠진다. 연립일차부등식, 이차함수의 최대·최소는 중학교 수준에선 지나치게 어렵다고 판단해 고교 과정으로 옮긴다. 고교에선 모든 고교생이 필수적으로 배우는 공통과목인 ‘수학’에서 미지수가 3개인 연립일차방정식을 배우지 않게 된다. 선택과목인 ‘확률과 선택’에서 분할·모비율이 빠지고, ‘기하’에선 ‘공간벡터’ 수업이 사라진다. 시안 마련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현재보다 20% 정도 학습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안은 학생들이 이른바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되는 것을 막고 수학에 재미를 느끼게 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실시한 평가에선 한국 학생들의 수학성취도는 늘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관심(27위), 필요성 인식(29위), 자신감(33위) 등에서 34개 회원국 중 최하위에 머무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왔다. 박근혜 정부는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행복 교육의 실현’을 추구하고 있다.

 초·중·고교 수학에서 영역 혹은 핵심 개념별로 ‘평가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는 ‘평가 유의사항’ 신설을 도입한 것이 시안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간 교육부와 교육청은 출제 문항이 교과서 범위 안에만 있으면 아무리 문제가 까다로워도 학교를 규제할 근거가 없었다. 이에 따라 이번 시안엔 ‘최대공약수와 최소공배수를 활용하는 복잡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중학교 ‘수와 연산’) 등의 가이드라인이 학년별·영역별로 제시됐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학습 부담의 주원인이 학습 내용 못지않게 평가 문항의 난이도에서 기인하는 만큼 평가 유의사항이 신설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박문환 인천 인제고 수학교사는 “평가 지침 때문에 교사의 재량권이 크게 축소된다는 우려가 교사들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현장의 교사들이 다양한 평가 방법을 활용하고 교육부도 이를 권장한다면 교사 재량권을 오히려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쉬워지는 수학 수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한수학회장을 맡고 있는 부산대 수학과 이용훈 교수는 “어느 나라에나 수포자는 있다. 이들에게 수학 교육의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 미래 산업은 수학에 대한 지식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 학습량을 줄이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걱정했다. 강완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사교육 과열 현상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학습 부담 경감이라는 수단이 동원되는데, 입시 경쟁은 변함없기 때문에 교과 내용을 쉽게 하는 게 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성시윤·노진호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