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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한국이 中에 맞서려면 … 산업 인터넷과 기업간 협업 필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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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호 20면

김춘식 기자

한국의 성장동력이 꺼졌다는 뉴스는 지겹도록 나온다. 중국이 쫓아온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한국경제가 역동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적인 연구는 적은 편이다.

‘일의 미래’한국편 낸 아눈지아타 GE 수석 이코노미스트

전기에서 시작해 항공·의료·에너지까지 사업을 다각화한 미국 제네럴일렉트릭(GE)의 마르코 아눈지아타(사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한국을 따라오려면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중국 내부의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며 “빅 데이터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산업 인터넷’을 활용하고, 신생기업(startup·스타트업)이 주도하는 ‘자생적 혁신’을 성공시킨다면 한국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의 미래, 한국 보고서(Future of Work in Korea)’ 발표 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일의 미래’ 보고서가 뭔가. 호주편, 터키편에 이어 한국편을 발간했다. 왜 이 나라들인가.
“기업의 일 하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고 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완전히 바꾸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일의 미래 보고서는 기술변화가 준 기회를 활용할 능력이 있는 나라, 또는 이미 활용하고 있는 나라를 대상으로 한다. 호주는 전통적으로 광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그런데 최근 광물자원 가격이 떨어지면서 기존 생산시설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터키는 창업 정신이 만개한 나라다. 개발도상국이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고차원적인 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혁신을 이루고 있다.”

-한국엔 ‘산업 인터넷’ 도입을 제시했다.
“산업 인터넷은 한 마디로 빅 데이터와 인터넷을 활용해 기존의 생산방식을 혁신하는 것이다. 각종 산업기기에 전기 센서를 결합해 거기서 얻은 데이터로 효율을 증대한다는 말이다. 또 기기 자체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불량 확률도 줄일 수 있다. 항공사를 예로 들면 어느 고도로 비행하는지, 이·착륙을 어떻게 하는지 등에 따라 엔진 수명과 퍼포먼스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은 그저 이륙하기 전에 정비를 잘해서 사고를 예방하자고 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인터넷을 활용하면 사고를 거의 없앨 수도 있다.”

-아끼고 예방한다는 것인데, 적극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한국경제의 판도를 바꿀 중요한 변수라고 생각한다. 신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생산성 향상의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2013년 한국의 에너지 수입 규모는 1700억 달러였다. 에너지 효율을 1%만 개선해도 연간 15억 달러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 조선해양 회사가 산업인터넷을 활용하면 선박의 생산·운영 효율을 증대할 뿐 아니라 친환경·스마트 선박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갖게 된다.”

-중국과 인도가 한국을 따라온다고 했다.
“우선 산업 전체적으로 중국과 인도는 한국에 비해 많이 뒤져있다. 그들 나라 내부 사정도 복잡하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이 혁신하는 게 급선무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의 생산성을 높여 중국과 격차를 벌려야 한다. 산업인터넷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의 선박회사는 ‘우리가 만든 배는 비싸다. 중국산에 비해 월등한 성능을 보이고 디지털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 전체가 다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자생적 혁신도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이미 세계 수위권의 기술력이 있다. 그런데 대기업 위주이고 신생기업이 기술력만으로 승부를 겨루기 힘든 구조다. 과거와 달리 혁신은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이뤄지고 있고, 디지털 기반으로 이뤄지는 혁신이 주를 이룬다. 이런 상황에선 대기업도 대기업 스스로 성과를 올리기가 힘들다. GE도 최근 우리 혼자 하는 것보다 중소·신생기업과 연계해서 일을 하면 더 성공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많은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신생기업이 주도하고 대기업의 자본과 규모가 지원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

-한국에선 기업이 혁신을 하려고 해도 관료와 규제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탈리아 출신인데 그런 방면에선 이탈리아가 최악일 것이다(웃음). 정치와 관료의 간섭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규제가 필요한 곳에만 규제를 만드는 것이다. 규제를 규제하는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이버 보안 분야는 규제가 필요한 영역이다. 앞서 말했지만 혁신은 세계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그 속도를 따라올 수가 없다. 기업의 혁신을 훼방놓으려 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산업인터넷·자생적 혁신·첨단기술 중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뭔가.
“사실 그 모든 게 하나라고 보면 된다. 산업인터넷으로 생산성·효율성을 높여 떠오르는 경쟁 국가와 격차를 벌리고, 적극적으로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 간 협업 체제를 구축해 기술혁신을 이뤄야 한다. 한국은 우수한 인적자원과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서 혁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대부분의 나라들을 볼 때 이런 나라에서 혁신이 이뤄질까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은 여러 가지 조건이 좋은 편인데 다만 당장 실천에 옮기는 게 급선무라고 할 수 있다.”

-GE는 최근 금융업에서 철수했다.
“그렇다. 하지만 필요한 사업영역에 돈을 대는 파이낸싱 업무는 계속 한다. 금융업에서 빠져나온 것은 우리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제조업 회사에서 디지털 제조업 회사로 변모하려고 한다. ‘GE 벤처스’는 벤처캐피털 업무를 한다. 많은 가능성이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들을 지원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파이낸싱 뿐 아니라 스타트업이 우리의 전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려고 한다.”



마르코 아눈지아타 이탈리아 볼로냐대 졸업,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1994~2000년 국제통화기금(IMF) 근무. 도이체방크, 우니크레디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2011년부터 GE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글로벌마켓 인사이트 부사장.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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