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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64만 명, 학업 마치고도 취직 한번 못해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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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모(25·여)씨는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했다. 지금 신분은 취업준비생이다. 경기 소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이씨는 졸업 후 10곳이 넘는 회사에 원서를 넣었다. 모두 떨어졌다. 졸업한 지 1년이 다돼 가지만 구직에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씨는 “언론에 나오는 ‘오포 세대(인간관계,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5가지를 포기한 세대)’란 말을 체감한다. 몇 년 후에는 결혼과 육아를 생각해야 하는 나이인데 당장 직업이 없고 학자금도 갚지 못해 막막하다”고 말했다.

 64만 명. 이씨처럼 학업을 마치고도 취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청년층(15~29세) 수다. 통계청은 올해 5월 진행한 ‘청년층과 고령층 경제활동인구 부가 조사’ 결과를 23일 공개했다. 조사에서 최종 학교를 졸업했거나 중퇴하고도 취업 경험이 한 번도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졸업·중퇴 청년층 463만9000명 가운데 13.8%(63만9000명)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달(12.8%)보다 증가했다. 2004년 통계청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인원수나 비중 모두 최고치다. 이호승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3배에 가까운데 그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매우 큰 편”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층 고용률은 5월 41.7%로 지난해보다 1.2%포인트 오르긴 했다. 첫 직장을 잡는 데 걸리는 시간도 같은 기간 11.6개월에서 11개월로 줄었다. 일자리 시장이 좋아졌다기보다는 구직자가 눈높이를 낮춘 영향이 컸다. 실제 첫 직장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평균 1년6.4개월로 0.4개월 줄었다.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보수와 처우, 비정규직이란 현실에 회사를 그만두는 청년층이 많다는 얘기다. 직장을 그만둔 청년의 상당수는 ‘공시족(공무원시험준비생)’이 된다. 취업시험 준비 인구 가운데 일반직 공무원에 응시하는 비중은 지난해 5월 28%에서 올해 같은 달 34.9%로 증가했다. 교원과 공공기업, 고시(전문직) 응시자를 더하면 공시족의 비중은 더 커진다.

 그렇다고 미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은 자신이 희망하는 기업에 입사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취업준비생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다. 취업 희망 기업이 있다고 밝힌 391명 중 ‘현실적으로 입사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힌 사람은 46.8%인 183명이나 됐다. 그 뒤를 ‘스펙을 좀 더 쌓으면 입사할 수 있을 것 같다’(129명·33%), ‘잘 모르겠다’(43명·11%) 등의 답변이 이었다. ‘현실적으로 입사가 어려울 것 같다’고 답한 183명은 그 이유로 ▶영어 점수 등의 스펙이 부족해서(54명·29.5%) ▶경쟁률이 높아서(42명·23%) ▶해당 기업의 채용 규모가 적어서(42명·23%) ▶학벌이 좋지 않아서(27명·14.8%) 등의 이유를 들었다. 또 취업준비생(전체 439명)은 가장 힘든 점으로 ▶줄어든 채용 규모(97명·22.1%) ▶스펙 쌓기(78명·17.8%) ▶정확한 기업 정보 찾기(73명·16.6%) 등을 꼽았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노동정책분석실장은 “현 고용시장 문제는 단순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과 중년 일자리 격차를 가지고 논할 수준이 아니다. 중소사업장의 임금·처우 문제 해결과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는 현재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서 이 문제를 풀겠다고 하는데 틀린 얘긴 아니다. 하지만 청년 고용을 명분으로 기존 고용자의 처우만 하향 조정해선 안 된다”고 짚었다.

세종=조현숙 기자, 이현택 기자, 노유정 인턴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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