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중에서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회인 이번 주는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케이크입니다.
동그란 케이크에 초를 꼽는 순간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케이크=좋은 날’이 하나의 공식처럼 사람들 머릿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죠.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첫 장면부터 ‘케이크를 먹으면서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이 행복의 정점에서 꼭 케이크를 먹고 싶어하는 것을 자주 보셨을 겁니다’라는 대사로 케이크 예찬론을 펼칩니다. ‘사람들이 왜 행복한 순간에 케이크를 찾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도 함께 알려줍니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영화가 말하는 ‘케이크가 생각나는 순간’]
#1 행복할 때
어린 시절 유괴됐던 진혁은 자신을 괴롭혔던 유괴범을 찾기 위해 유괴범이 좋아하는 케이크 가게를 연다. 단 걸 싫어하는 그지만 조금씩 케이크에 대해 알아가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한다. 모든 일을 매듭짓고 마음이 가벼워진 그는 출근하기 전 베란다에 나와 케이크의 의미를 생각한다.
진혁: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에 왜 케이크를 찾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살아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상처와 잊고 싶은 기억의 연속일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한 순간에 어김없이 케이크를 찾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거다. 씁쓸한 게 인생이기에 행복한 순간만큼은 더 달콤하게 즐기고 싶은 것이다.
#2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앤티크의 견습 파티시에 기범은 과거 ‘전설의 복서’ ‘링의 아이돌’이라 불리던 최연소 동양챔피언이었다. 그가 복서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경기를 마치고 찾은 대기실, 코치가 기범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내놓는다.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기범에게 코치는 하기 힘든 말을 꺼낸다.
코치: 잘했다. 많이 먹어.
기범: 웬일로? 3개씩이나.
코치: 맞댄다. 망막박리.
기범: 그래.
코치: 그런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니다. 권투만 안 하면 멀쩡하단다. 남들처럼 살 수 있대.
기범: 그게 사는 거야?
#3 특별한 날
크리스마스 케이크 배달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온 진혁은 앤티크 식구인 선우·기범·수영과 함께 케이크를 앞에 두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 무뚝뚝한 진혁도 크리스마스에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기념한다.
선우: 남은 재료로 만든 거라 어째 부실하다.
기범: 예술인데요. 사부님.
진혁: 남자 넷이서 크리스마스에 이러고 있다니.
수영: 감동적이죠?
진혁: 누가 볼까 남사스럽다. 얼렁하고 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
90년대 일본서 들어와…그전엔 버터크림
최근엔 생활 디저트로 롤·조각 케이크 인기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단 것이라면 질색하면서 케이크 가게 ‘앤티크’를 연 엉뚱한 사장 진혁(주지훈)과 앤티크의 파티시에 선우(김재욱)의 고교 시절 악연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진혁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선우를 향해 생크림 케이크를 던지며 “호모 새끼”라고 말한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이 10여 년 후 사장과 파티시에로 다시 만나 함께 케이크 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그 사이 선우는 파리 유학 후 돌아와 최고의 파티시에로 성장했고, 진혁은 회사를 그만두고 케이크 가게를 준비한다.
케이크를 싫어하면서 케이크 가게를 여는 이유를 묻는 부모에게 “여자가 많이 와서”라고 말하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 진혁은 유괴된 경험이 있다. 어린 진혁이 기억하는 건 유괴범이 달콤한 케이크를 좋아했다는 것뿐이다. 어린 시절의 끔찍한 기억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를 괴롭힌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진혁은 유괴범이 자신을 찾아오게 하려고 맛있는 케이크 가게를 연다.
단것을 싫어하는 진혁은 케이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견습생으로 기범이 들어오며 “사장이 맛도 모르고 상식도 없으면 무시당할 것”이라는 선우의 조언을 듣고 케이크를 배워간다. 손님의 주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진혁은 케이크를 하나씩 직접 만들어보며 비로소 진정한 케이크 가게 사장이 된다. 영화에는 과일 생크림 케이크, 갸또 오페라, 오렌지젤리 무스케이크, 레몬크림 타르트, 크렘블레, 밀푀유, 몽블랑, 마카롱 같은 케이크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영화 배경 음악과 함께 빠르게 화면을 지나가는 형형색색의 케이크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케이크가 바로 ‘갸또 오페라’다. 오세백 롯데호텔서울 베이커리 조리장은 “갸또 오페라는 아몬드 가루를 넣어 만든 스펀지(반죽을 구워낸 직후 장식을 하기 전 빵의 형태)에 커피 크림을 바르고 다시 스펀지와 크림을 바르는 과정을 반복해 겹겹이 쌓아 올린 후 마지막에 초콜릿으로 코팅한 케이크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아몬드와 커피, 초콜릿의 맛이 조화를 이룬다. 앤티크를 찾은 유괴범이 진혁에게 주문한 케이크가 바로 이 갸또 오페라다. 커피가 어울리는 가을은 특히 갸또 오페라를 찾는 사람이 많다. 진혁도 유괴범에게 “오페라가 가장 맛있을 때다. 잘 골랐다”고 말한다.
영화에는 알코올이 들어간 케이크도 나온다. 알코올이 들어가는 케이크가 있다는 걸 몰랐던 진혁은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에게 알코올이 들어있는 케이크를 팔고 아이 엄마가 항의하기 위해 가게를 찾아오는 통에 곤욕을 치른다. 실제 알코올은 케이크에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다. 오 조리장은 “케이크 만들 때 넣는 술은 재료 중 하나로 향을 배가시키고 잡냄새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아르바이트하겠다고 찾아온 절대 미각의 소유자 기범이 선우의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나 술 끊은 지 오래됐는데 케이크에 넣으니 별미네”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렌지만 넣은 것보다 오렌지 술을 함께 넣으면 풍미가 훨씬 깊어진다. 알코올을 사용할 땐 냄비에 넣고 한 번 끓인 후 사용하는 게 좋다. 알코올 도수가 날아가 아이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도수가 높은 술은 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도수가 낮은 술을 주로 사용한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어떤 케이크일까. 예상대로 생크림 케이크다. 오 조리장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생크림 케이크를 제일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이유는 누구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 조리장은 “치즈나 초콜릿 케이크는 호불호가 나뉘지만 생크림은 달콤한 맛이 강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먹을 수 있어 가장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생크림 케이크가 한국에 소개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모양과 색상의 버터크림 케이크가 시장을 주도했지만 일본에서 생크림이 들어오면서 대세로 자리했다. 『작은 빵집이 맛있다』 작가 김혜준씨는 “생크림 케이크의 인기는 일본과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유럽 등에서는 여전히 고소한 맛이 강한 버터크림 케이크나 무스 케이크(크림을 차게 해 만든 케이크로 아이스크림과 젤리의 중간 형태. 스펀지의 양이 적다)가 인기다”고 설명했다.
최근 인기 있는 건 롤 케이크다. 김 작가는 “롤 케이크는 크림이나 넣는 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는 데다 한 조각씩 잘라 먹기에도 편하다. 누구나 좋아하기 때문에 선물용으로도 알맞다. 무엇보다 과거 롤케이크에 대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찾고 있다”고 롤케이크의 인기를 설명했다. 실제 2년 전 한국에 들어온 몽슈슈의 롤 케이크 ‘도지마롤’은 사람들을 줄 세우는 인기 아이템으로 화제가 됐다. 조각 케이크의 인기는 빵집에만 머물지 않는다. 편의점·마트 등 생활과 밀접한 장소까지 파고들었다. CJ제일제당이 내놓은 ‘쁘띠첼 스윗롤’은 출시 100일 만에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삼립식품의 ‘카페스노우 롤 케이크’도 4개월 만에 총 60만 개의 매출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케이크는 특별한 날만 먹는 귀한 음식이 아니다. 특히 작은 조각 케이크나 미니 케이크는 커피·차와 함께 먹기 좋은 디저트가 됐다. 사람들의 높아진 미각도 디저트의 인기 요인이다. 김 작가는 “식문화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디저트가 발전하는데 한국에서 케이크 인기가 높아지는 건 그만큼 식문화가 발전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독자의 이야기
생일 케이크 바랐는데
백설기 떡 받고 엉엉엉
케이크는 여자들이 많이 먹는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론 케이크를 좋아하는 남자도 많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고요. 제 케이크 사랑은 어린 시절 시작됐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이었습니다. 당시 또래 아이들은 생일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케이크에 촛불을 끄고 나눠 먹었습니다.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닌 데다 한 조각씩 나눠 먹기 때문에 늘 먹고 나면 더 먹고 싶은 아쉬움이 남았죠. 그래서 겨울인 제 생일이 되기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친구들을 부르지 않고 큰 케이크를 혼자 다 먹으려는 생각에 말이죠.
그런데 정작 제 생일날 어머니는 케이크가 아닌 백설기 떡을 사오셨습니다. “너무 달고 빵이라 몸에 안 좋다”는 말과 함께 떡을 내미는데 어찌나 서럽던지 펑펑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 생일날 케이크를 먹었느냐”며 혼을 내셨고요. 이후에도 중학교 때까지 제 생일엔 늘 떡이 생일상에 올라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후에도 맛있는 빵집에 가면 늘 조각케이크라도 사와야 직성이 풀립니다. 절 닮아서 생후 18개월인 딸도 케이크를 무척 좋아합니다.
“케이크가 몸에 안 좋다”던 엄마도 요즘은 케이크를 좋아하십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냐”며 감탄의 말도 잊지 않으시고요. 그래서인지 맛있는 케이크를 발견하면 어머니가 제일 먼저 생각납니다. 그래서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본가에 갈 땐 한 번씩 케이크를 사가 삼대가 함께 나눠 먹습니다. 가끔 “어릴 때 엄마가 케이크 안 사줘서 서운했다”고 투덜거리면서 말이죠. 김태형(38·용인시 죽전동)
▶서울의 케이크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케이크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허성구 더 플라자 총주방장, 롯데호텔서울 델리카한스의 오세백 조리장, 『작은 빵집이 맛있다』 김혜준 작가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리틀앤머치]
“한국에서 맛보기 힘든 무스 케이크가 있다
먹기 아까울 만큼 예쁘다”
○ 특징: 캐나다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한 부부가 한국에 돌아와 지난해 9월 차린 작은 디저트 가게다. 삼성동의 주택가 골목에 있는 데다 간판조차 없어 모르는 사람은 지나치기 쉽지만 디저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미 유명하다. 가게 이름 리틀앤머치(LITTLE&MUCH)는 작은 케이크 안에 많은 맛을 담겠다는 뜻이다. 이름처럼 작은 무스 케이크 5~6가지 종류만 판매한다.
○ 가격: 스트로베리치즈케이크 6500원, 블랑(화이트돔) 9000원, 썸머브리즈 80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 전화번호: 02-545-1023
○ 주소: 강남구 학동로 56길 49(삼성동 10-8) 성림빌딩 1층
○ 주차: 2대 가능(매장 옆)
[레이디엠]
“한 겹씩 벗겨 먹는 크레이프 케이크
미국 뉴욕의 맛을 즐길 수 있다”
○ 특징: ‘뉴욕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레이디엠(LADY M)이 2014년 한국에 연 매장이다. 위부터 한 겹씩 벗겨 먹는 크레이프 케이크(얇게 구운 팬케이크의 일종으로 빵과 크림을 겹겹이 쌓아 올림)가 대표 메뉴다. 밀크·초콜릿·녹차 맛 크레이프 케이크와 치즈 케이크 등을 판다. 학동 본점 외에 이태원·신사동에도 매장이 있다.
○ 가격: 밀크 크레이프(조각 7000원, 전체 6만5000원), 초코 크레이프(조각 8000원, 전체 8만5000원), 치즈 케이크(조각 6000원, 전체 5만5000원)
○ 영업시간: 오전 10시30분~오후 10시
○ 전화번호: 02-3444-0080
○ 주소: 강남구 논현로 707 용덕빌딩 지하 1층
○ 주차: 가능
[C4케이크부티크]
“보기 드물게 클래식한 인테리어
촉촉하고 녹아내리는 맛이 일품”
○ 특징: 동부이촌동에서 맛있는 케이크 집으로 소문났던 C4케이크 팩토리가 신사동 가로수길에 낸 지점이다. 부티크라는 이름처럼 요즘 보기 드문 클래식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디저트 매니어 사이에 유명하다. 얇게 구운 팬케이크 사이에 생크림을 발라 만든 밀크·망고·블루베리 3종의 크레이프 케이크가 대표 메뉴다. 지금은 신사동과 목동에만 가게가 있다.
○ 가격: 밀크 크레이프(조각 6000원, 전체 6만5000원), 망고·블루베리 크레이프(조각 6500원, 전체 7만원)
○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1시
○ 전화번호: 02-549-9946
○ 주소: 강남구 압구정로 118(신사동 529-4) 향원빌딩 1층
○ 주차: 발레파킹(2000원)
글=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