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저자 장석주 시인
딴생각도 독서의 일부, 생각하는 힘 키워줘
매년 1000여 권 보는 다독가이자 80권 다작
틀을 깨려면 미치도록 읽어, 그래야 변한다
지난 13일 비 내리는 오후였다. 그의 사무실은 종로구 운니동 한 오피스텔에 있었다. ‘장롱 출판사’. 출입문 옆 벽에 손바닥 크기의 나무 현판이 붙어있었다. 사무실 주인 장석주(60)는 “후배 시인들 책이나 내주려 걸어놓은 거”라며 “별거 아니다”라고 했다. 장석주는 한때 책을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에 올려놓는 출판사 대표였다. 문 닫고 글쟁이로 살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다. 시인, 비평가, 수필가, 인문학자…. 여기에 다독가이자 다작가로도 알려졌다. 그는 80권 넘게 썼다(인터뷰 한 날을 기준으로 곧 신작 2권이 나온다 했다). 책 읽기는 열 살 때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이다. 지금까지 모은 책이 4만여 권이다. 그에게 읽는다는 것, 쓴다는 것에 대해 물었다.
-평소 책을 얼마나 보나.
“일주일에 7~12권 사들인다. 1년 700~1000권 정도다. 여기에 저자와 출판사들이 보내주는 책이 1년에 500여 권이다. 보내준 도서 중에는 읽지 않는 책이 있지만 사들인 책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다 보려 한다. 내가 책 읽는 방식은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 선생이 하셨던 방식인데 ‘맥락의 책 읽기’다. 같은 주제의 책을 모아서 한번에 읽는다. 같은 분야 책들은 지식의 교집합이 있다. 책에서 그런 교집합 부분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니 독서 시간이 단축된다. 책을 문장·문단으로 읽지 않는다. 지면이 한눈에 이미지로 들어온다. 수십 년 동안 책 읽는 훈련을 해 얻어진 거다.”
-수많은 신간에서 책을 고르는 기준은 뭔가.
“주로 인문·자연과학·문학 서적을 읽는다. 자기계발서·추리·SF물은 안 읽는다. 거의 날마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신간을 살핀다. 마음속에는 저자 등급이 있다. AAA는 무조건 사고 A까지도 거의 산다. 거기에 없는 새로운 저자라도 제목이나 목차를 보고 흥미로우면 산다. 그 저자의 책을 한 권, 두 권 읽었을 때 ‘이건 진짜다’하는 느낌이 오면 다음부터 그 저자의 책은 무조건 사들인다.”
-다독가이자 다작가다. 왜 그렇게 쓰나.
“아마도 읽기 때문에 그럴 거다. 읽으니깐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을 글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쓴다. 매일 일기 쓰듯이 한다.”
-규칙적으로 쓰나 보다.
“새벽 4시쯤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30분 정도 차 한 잔을 마시고 신문도 읽는다. 그 후부터 앉아서 쓰기 시작해 점심 먹기 전에 끝낸다. 점심 먹고 한두 시간 산책한다. 소크라테스나 장자가 그랬듯 철학자들이 산책을 좋아한다. 사실 걸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읽은 것들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난 읽으면서 메모하거나 중요 부분을 줄 긋지 않는다. 읽은 내용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억에 대한 강박증을 안 가지는 거다. 예전에는 강박증이 굉장했다. 읽은 책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게 무슨 헛수고냐 생각했다. 어느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책 읽기가 자유롭고 즐거워지더라. 망각은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 하지 않나. 한번 기억했던 것을 망각으로 보냈다가 다시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억과 지식의 총량이 커진다. 자기 상상력과 체험이 보태져 본래 있던 지식보다 그 양이 커지는 거다.”
-책은 언제 읽나.
“오후 느슨한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 요즘 같이 더울 때는 냉방 장치 잘된 동네 카페에 간다. 집중하려 하지 않는다. 읽다가 딴생각을 한다. 그럼 그 딴생각을 따라간다. 그것도 독서의 일부다. 사실 그게 중요한 거다. 딴생각한다는 것은 저자에게 매이지 않았다는 소리다. 저자의 어떤 부분이 나를 자극할 수 있다. 이때의 자극으로 내 생각을 펼쳐나가야 한다. 그 책을 꼭 다 읽을 이유도, 저자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도 없다. 독서는 자기 주체적 생각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독서는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그 자극이 영감이 돼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뭘 우선시해야 하나.
“읽기다. 읽는 뇌는 필연적으로 쓰는 뇌로 진화한다. 읽기가 생략된 채 쓰기로 갈 수 없다. 모든 독서광들이 작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작가들은 한결같이 독서광이었다. 다음으로 독창적 사고를 해야 한다. 사물을 볼 때 인습적 사고의 틀을 깨야 한다.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봐야 한다. 그게 창조 정신이다. 그럼 다시 책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창조 정신을 키우는 것도 책 읽기다. 읽어야 한다. 미치도록 읽어야 한다. 그래야 뭔가 변한다.”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책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 더 일찍이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또 노자의 『도덕경』과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 이 책들은 나도 보고 있는 건데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한다. 내 껍질을 벗겨주고 그걸 보게 해준 책들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간에 나왔다. 대신 서울의 국·시립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만 스무 살에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았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4년 뒤 조선일보·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한 출판사에 입사한다. 이 전까지 2년여를 오퍼상으로, 또 다른 1년을 학원 대타 강사로 일했다. 20대 후반 자신이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한때 청담동에 건물을 사 직원 30여 명을 둘 정도로 성공 가도였다. 하지만 문 연 지 10여 년 만에 닫았다.
-왜 출판사를 그만뒀나.
“행복하지 않았으니깐. 내 인생의 초안은 그것(출판사 운영)이 아니었다. 물론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1992년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를 내서 마 교수와 내가 서울 구치소에 두 달 수감됐다. 미칠 듯 화가 났다. 93년 출판사를 접었다. 많은 돈 벌었다며 질시와 험담을 듣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놔 버린 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업 작가로 살아왔다.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에게 쓴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다. 쓰지 않는 삶이란 나에게 아무 의미 없다. 만약 아무 책도 읽지 못하게 하고 쓰지 못하게 하면 아마 나는 죽을 것이다. 살아도 아무 의미가 없으니깐.”
▶장석주 시인이 추천하는 글쓰기 관련 도서 4권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김진준 옮김), 김영사
독특한 창작 지침서다. ‘이력서’라는 소제목의 장은 어린 시절에서 시작해 삶 전반의 회고로 이어진다. 장강처럼 흘러가는 이 회고는 인상적이다. 작가가 어떻게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되고 이야기꾼으로 진화했는가를 알 수 있다. ‘연장통’이란 장은 문법과 문체에 대해 새기고 배울 만한 스킬을 제시한다. 작가가 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쓴 것이라 생물처럼 생생하고 공감이 간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권진욱 옮김), 한문화
글쓰기와 동양의 선(禪)을 접목한 점이 색다르다. 글쓰기 강사로 활약한 저자의 경험이 돋보이는 지침서다. 의식에 짓눌려 있는 무의식의 기억을 끌어내는 유력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때 글쓰기는 자기 치유의 한 형식이자 무엇으로도 분식되지 않은 자아를 맨 얼굴로 만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장 1·2 』
고종석, 알마
고종석만큼 문법적으로 명료하며 교양과 기품이 배어 있는 한국어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는 드물다. 한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라는 면에서 그는 으뜸이다. 그가 쓴 문장들은 읽을 때마다 황홀경에 빠질 정도로 매혹적이다. 해박한 언어학 이론과 함께 문장 쓰기의 ‘실전 감각’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는 보석 같은 책이다.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작가라는 ‘면류관’을 쓰기 위해 젊은 날 겪은 고통스러운 편력을 엿볼 수 있다. 작가로 가는 길은 온갖 악조건과 장애물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피의 여로’다.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가 없다면 작가의 길에 들어서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듯하다. 많은 작가들이 피와 땀방울을 흘린 끝에 작가로 우뚝 섰다. 창작 지침서는 아니지만 글에 제 인생을 걸고자 한다면 필독해야 할 책이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