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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ech NEW trend] 이들 손에 걸리면 살 수가 없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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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요리하는 남자들’이 먹거리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복날 온라인몰 상품 순위 1위를 간편 삼계탕 대신 생닭이 차지하고, 제주도 호텔에서 냄비 쿠킹 파티가 열린다. 오후 9~12시에 모바일 식품 판매가 급증하고, 궁중팬과 굴소스가 쇼핑 목록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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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13일 온라인몰 G마켓에서는 갑자기 꽁치·고등어 통조림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3배로 늘었다. 라면·과자·아이스크림 일색이던 가공식품 검색 순위에서도 13위가 꽁치통조림이었다. 7일 밤 tvN의 요리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에 통조림을 활용한 꽁치조림 등이 소개됐기 때문이었다.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대형마트 꽁치·고등어 통조림 판매대가 텅텅 비어있는 사진이 잇따라 올라왔다. 통조림 1위 업체인 동원F&B는 “예상치 못했던 주문이 몰려들어 생산량을 급히 두 배로 늘렸다”며 “주로 찌개용으로 쓰던 통조림을 소비자들이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매출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롯데마트에서는 지난달 17~20일 고체 형태의 카레 매출이 그달 평균보다 3.6배로 늘었다. 역시 16일 요리 방송에서 고형 카레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브라운관을 장악한 ‘쿡방’(요리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식품 시장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쿡방의 영향력은 올 초부터 본격화했다. 지난해 11월에 방영을 시작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국내 정상급 셰프가 연예인이 집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냉장고 속 재료를 이용해 15분 만에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쇼다. 기존의 요리 프로그램이 최적화한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낸 것에 반해, 한쪽 구석에 처박힌 냉동만두 몇개나 유효기간이 아슬아슬한 치즈처럼 ‘우리집 냉장고’ 음식을 최고의 솜씨를 가진 셰프가 제대로 된 음식으로 살려내준다. 15분 만에 만드는 음식이니 준비 과정이 복잡하지도 않다. 간편식을 데워먹거나 간단하게 사먹던 맞벌이 부부, 혼자 사는 이도 ‘나도 한번 만들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여기에 백종원(49) 더본코리아 대표가 집밥 백선생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쉬운 집밥’ 열풍에 불을 붙였다. 20개 브랜드를 갖춘 연매출 약 1000억원의 외식 사업체를 이끌고 있는 백 대표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기 때문에 더 쉽고 편안한 요리를 선보인다. 된장찌개·김치볶음밥처럼 당장이라도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이다.

 회사원 정아름(28)씨는 “돼지고기를 넣어 만드는 ‘만능간장’ 레시피를 TV에서 보고 따라했더니 메추리알 장조림, 감자조림을 쉽게 만들 수 있었다”며 “같은 자취생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이라고 말했다. 음식을 해먹을 엄두를 못내던 20~30대가 요리에 관심을 갖자 온라인몰 매출부터 뛰어올랐다. 쿠팡에 따르면 올 상반기 주방용품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3.6배로 늘었고, 식품 판매 역시 2.7배로 증가했다. G마켓의 경우 각종 요리에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소스 판매는 2.5배, 칼·도마 판매는 1.5배로 늘었다. CJ몰의 경우 올 상반기 모바일 식품 구매율이 쿡방이 주로 방송되는 오후 9~12시 사이에 증가했다. 전체 판매율이 29% 늘었는데 이 시간대는 37% 증가했다.

 복날 히트상품도 바뀌었다. 올 초복(7월 13일)을 앞두고 옥션에서는 생닭이 관련 상품 매출 1, 2위를 차지했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인삼·대추·감초 판매도 20% 늘었다. 지난해에는 데워서 바로 먹을 수 있는 반마리 삼계탕이 독보적인 1위였다. 옥션 관계자는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요리 방송이 늘어나면서 평소 요리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도전해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도 쿡방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만능 간장’ 과 중화요리가 방송에서 소개되자 롯데마트에서 올 상반기 간장 판매가 5.2배, 궁중팬이 1.6배로 늘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때문에 외식을 꺼리게 되면서 쿡방을 보고 요리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남성들이 쿡방을 보고 요리를 시작하면서 식품·주방용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1번가의 경우 올해 1월~7월 13일까지 남성의 식품 소비는 89%, 주방용품 구입은 78% 증가했다(전년 동기 대비). 현대H몰의 경우 지난달부터 이달 12일까지 주방용품을 구입한 남성 고객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늘었다. 특히 30~40대 남성 고객 비중이 55% 증가했다.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TV에 나오는 남성 셰프들이 매력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여성 요리전문가가 주부를 대상으로 하던 기존의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얼마나 맛있고 보기좋은 요리를 하느냐에 초점을 뒀다. 최근 쿡방에서는 개개인의 셰프가 각자의 특징적인 캐릭터로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냉장고를 부탁해는 개성이 뚜렷한 스타 셰프를 많이 부각시켰다. 최현석(43) 엘본더테이블 총괄셰프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공중에서 소금을 뿌리는 등의 쇼맨십으로 ‘허세 셰프’로 사랑받고 있다.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56) 목란 오너셰프는 43년 내공을 가진 강호의 고수라는 이미지를 정립했다. 샘킴(38) 보나세라 총괄셰프는 부드러운 미소와 상냥한 태도로 ‘셰프계의 성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웹툰을 그리는 김풍(38) 작가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지만 인스턴트 재료도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셰프 못지 않은 자취생 요리를 선보여 ‘야매 셰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쿡방에 가세한 백종원 대표는 ‘백주부’라는 별명이 본명보다 더 익숙할 정도다. “고급지쥬~(고급스럽지요)?” 식의 구수하고 친근한 말투와 설탕과 조미료를 쓴다고 밝히는 솔직한 태도가 그가 만드는 쉬운 요리와 잘 어우러진다. 30대~50대의 남성이 ‘나도 저 셰프처럼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만큼 ‘예능형 캐릭터 셰프’가 단단히 자리잡은 것이다.

 방송 캐릭터와 음식이 그대로 제품 판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연복 셰프는 최근 NS홈쇼핑에서 ‘이연복의 대가 탕수육’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달 3일 첫 방송 시작 19분 만에 2861세트가 매진됐다. 지금까지 4번 방송에 3만4707세트가 팔린 ‘대박 상품’이다. 현대백화점 킨텍스점은 여름 세일 기간 동안 최현석 셰프가 ‘치튀치튀뱅뱅’’수플레가머랭’ 등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선보인 요리들로 구성한 코스 메뉴(6만5000원)를 선보여 300세트를 판매했다.

 친근하고 쉬운 요리를 부각했지만, 고급 시장도 탄력을 받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에 힘입어 고급 식품매장인 SSG푸드마켓을 지난 9일 목동에 열었다. 임훈 식품담당 상무는 “신선식품 매출 비중이 55%이고, 하루 평균 1억원씩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26일까지 롯데시티호텔제주에서 고급 주방용품브랜드 휘슬러와 손잡고 셰프와 함께하는 요리 파티를 10회 열 예정이다. 콘래드서울의 경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쿠킹클래스(6만원) 예약률이 이달 들어 지난해보다 200% 넘게 늘었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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