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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유인한 뒤 주가 오르자 매도…불공정거래 급증

중앙일보

입력

A씨는 한 인터넷 증권카페에서 솔깃한 글을 봤다. 한 화장품 업체에 대단한 호재가 있기 때문에 곧 주가가 폭등할 거라는 전문가 B씨의 글이었다. 그럴 듯하다고 판단한 A씨는 여윳돈 1000만원을 털어 이 주식을 샀다. 그런데 A씨의 생각과 달리 며칠 뒤부터 팔자 주문이 쇄도하더니 해당 종목은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A씨는 결국 200만원의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처분했다.

알고 보니 주식 매입을 권했던 B씨는 사기꾼이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A씨는 인터넷 증권카페와 종목게시판에 특정 주식 종목에 대해 허위와 과장이 담긴 글을 유포했다. 거래되는 주식 물량이 적은 것으로 골라 미리 사놓은 종목이었다. 여러 아이디를 사용하며 반복해서 글을 올리자 투자자들이 몰려와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주가는 상승했다. 이렇게 주가를 올린 후 보유주식을 처분해 A씨가 얻은 부정차익은 2억원에 이른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불공정거래로 적발된 사건은 64건으로 작년에 비해 10.3% 증가했다. 코스피 지수가 2100포인트를 돌파하는 등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A씨의 사례처럼 시장의 가격과 거래량에 의도적으로 관여해 부정이득을 얻는 ‘시세조종’ 유인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현물시장에서 적발 사례가 전년 51건에서 61건으로 19.6%가량 증가했다. 반면 파생상품시장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57.1%로 감소했다.
유형별로는 시세조종 건수가 25건으로 가장 많았고, 미공개정보이용(22건)과 부정거래 등이 뒤를 이었다. 시세조종 건수는 작년 동기(19건)에 비해 31.6% 증가하며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혐의 규모도 크게 늘었다. 거래소에 의하면 불공정거래 사건당 평균 부당이득금액 추정치는 76억원으로 전년 평균(15억원)에 비해 61억원 증가했다. 100억원 이상 규모의 사건이 7건이나 됐고 1000억원 이상 규모의 사건도 있었다. 한국거래소 강지호 팀장은 “심리분석기법의 발달과 함께 기관투자자가 관여한 불공정거래, 장기 시세조종 등 대규모 불공정거래 사건이 집중적으로 적발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씨 뿐이 아니었다. 한 주식투자모임이 5년간 시세조종성 주문으로 1169억원의 이익을 챙긴 사건도 있었다. 이 모임에는 지역 종교모임과 동창회까지 개입하고 있었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와 비상장법인이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업 임직원이 합병정보를 이용해 부정차익을 얻기도 했다.

강 팀장은 “1일부 정보 비대칭을 이용한 범죄행위에 대해 과징금이 부과된다”며 “투자자는 시장에 떠도는 루머나 인터넷 사이트의 정보를 맹신하지 말고, 투자대상 회사를 분석하고 위험요소를 고려하는 합리적인 투자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유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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