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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잘나가는 김양건 … 김정은, 김양건 처를 ‘이모’라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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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정은 체제의 평양에서 요즘 제일 잘나가는 최측근 인사는 누구일까요.

 북한·통일 이슈를 쫓는 취재현장에선 북한 내 파워게임은 늘 주요 관심사인데요. 빨치산 후예인 최용해 노동당 비서(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나 김정은 시대 군부 최고 실세로 뜬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를 선뜻 지목하기가 쉽지 않죠. 고모부 장성택에 이어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까지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공포정치의 예측불가성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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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정보를 다루는 정부 당국의 판단은 어떨까요. 한 고위당국자는 휴민트(humint·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대북첩보)를 근거로 “김양건을 주목하라”고 귀띔합니다. 노동당 통일전선 담당 겸 비서로 ‘대남총책’으로 불리는 김양건(73)이라니 다소 뜻밖인데요. 그가 맡은 대남사업이 꼬일대로 꼬여있기 때문입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김양건에 대한 신임은 뿌리가 깊다”고 말합니다. 정부 당국의 첩보에 따르면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를 잘 보좌한 김양건의 부인을 김 제1위원장이 ‘이모’라고 부를 정도였다는데요. 막내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려고 ‘아글타글(북한어 ‘몹시 애를 쓴’)’했던 고영희를 도운 김양건 부부에 대해 김정은이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얘깁니다.

 과연 이런 관측이 맞는지 김양건 비서의 최근 행보를 짚어봤는데요. 지난달 말 리모델링을 마무리한 평양국제공항을 찾은 김정은을 따르는 김양건의 모습엔 자신감이 드러납니다. 김 제1위원장에 밀착해서 설명을 듣고,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와 눈을 마주한 채 대화하는 장면도 나타나는데요. 짝다리를 짚거나 몸을 한 쪽으로 기울인듯한 자세도 포착됩니다. 쭈뼛거리거나 긴장한 표정인 박봉주 총리 등 다른 간부들과 차이가 나죠.

 그러고보니 노동당 통일전선담당 비서(남측 표현으론 대남비서)가 김정은의 공항 방문에 수행하는 건 어색한 그림인데요. 북한업무를 담당하는 당국자는 “대남문제를 넘어서 김정은의 통치활동 전반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성택 처형 직전인 2013년 11월 김정은과 백두산을 방문해 대책을 논의한 이른 바 ‘삼지연 8인방’ 가운데 김양건이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란 얘기인데요. 집권 4년차인 김정은 체제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복없이 탄탄대로를 달린 인물이란 말도 나옵니다. 국가수반 격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뒤를 이을 것이란 전망도 있죠.

 사실 김양건은 김일성대 불문과를 나와 당 국제부에서 잔뼈가 굵은 외교통입니다. 김정일 정권 초기인 1997년 4월 당 국제부장을 맡았고, 10년 뒤엔 통일전선부장으로 발탁됐죠. 그렇지만 2010년 5월과 8월 김정일 방중 때 잇달아 수행하고, 이듬해 8월 러시아·중국 방문 때 동행하는등 대남사업을 넘어 측근 실세로 자리잡았습니다. 김정은이 챙기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는데, 담당 종목이 축구라는군요. 경평축구에 관심있는 대북사업가들이 김양건의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합니다.

 악재 투성이인 남북관계 때문일까요. 김양건 비서의 대남사업 성적표는 초라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한 달만인 2013년 4월 개성공단 폐쇄조치는 자충수에 가까웠죠. 대남 도발의 수위를 올려 개성공단 카드로 압박했지만 정부가 전원철수를 결정하면서 스텝이 꼬였죠. 최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평양 방문 날짜(8월5~8일)까지 합의하고도 며칠만에 “허사가 될 수 있다”고 위협하는 무리수를 뒀는데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초청해 이뤄지는 방북까지 대남 위협의 수단으로 삼는 건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김양건 비서가 책임자(위원장)를 맡은 아태평화위가 저지른 일이죠.

 아태평화위를 포함해 통전부에는 몇몇 산하기구가 있는데요. ‘서기국 담화’ 등으로 ‘박근혜 정부 때리기’를 전담하는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이 대표적입니다. 중국에 서버를 둔 대남비방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도 통전부가 직접 운영하죠. 이 때문에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인권 비판 등을 북한이 문제삼는 건 난센스란 지적이 나옵니다.

 통전부엔 베테랑 대남전략가들이 적잖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김양건 비서의 오른팔격인 원동연(68) 부부장은 남북대화 수행원에서 책임자급으로 오른 40년 경력을 자랑합니다. 차세대 주자 맹경일(52)은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모자를 쓰고 이희호 여사 방북과 금강산 관광 문제 등을 맡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숙청·문책설이 나왔지만 대남부문은 무풍지대라는데요. 김양건이 바람막이를 한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달 6·15 공동선언 남북 공동행사가 무산되자 북한은 “남북 신뢰·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 당국 간 대화와 협상을 못할 이유가 없다”며 유화적 입장을 비쳤습니다. 문제는 5·24조치 해제 등 전제조건이 수두룩하다는 건데요. 산전수전을 다 겪은 통전부의 고수들은 알고 있을 겁니다. 회담테이블에 마주 앉으려면 자신들이 먼저 무엇을 해야하는지 말입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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