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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르 앞세운 소주전쟁 4라운드] 롯데 선공에 하이트진로·무학 대반격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롯데 ‘순하리’ 출시 두 달 만에 누적 판매량 2000만병 넘어 ... 메르스 사태 종료 후 마케팅 격전 예상

주류시장이 한여름 태양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소주 업계 2위인 롯데주류가 리큐르 제품인 ‘순하리’를 내놓으면서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순하리는 품귀현상을 빚으며 ‘소주계 허니버터칩’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이에 대응해 하이트진로와 무학도 맞불을 놨다. 이른바 ‘미투제품(따라하기)’임에도 원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 소주전쟁 50년 역사에서 ‘자도주→저도주→지방주’에 이은 4번째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4라운드 대결의 관전 포인트와 전망을 짚었다. 아울러 세계로 진출하는 한국 소주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사진:김현동 기자

국내 소주 시장에 오랜만에 ‘잭팟’이 터졌다. 칵테일에 가까운, 과일 맛이 나는 소주(품목으론 ‘리큐르’로 분류) 얘기다. 롯데주류가 지난 3월20일에 내놓은 ‘순하리 처음처럼(이하 순하리)’의 누적 판매량이 두 달 만에 1000만병을 넘어섰다. 5월 말 기준으로 2200만병이 팔리면서 시장을 급격히 넓히고 있다. 지난해 1월에 나온 대선주조의 ‘시원블루’가 출시 4개월 만에 겨우 월 판매량 100만병을 돌파한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소매 식당들은 순하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롯데주류에 항의가 빗발칠 정도다. 롯데주류 지역영업점들은 ‘순하리 판매하는 집’이라는 등 홍보 판넬을 만들어 소매 식당들에 나눠주고 있다. 각종 SNS에선 순하리가 ‘소주계 허니버터칩’이라 불린다. 공급량이 달려 제대로 팔지 못한 허니버터집의 판매 양상과 비슷해서다. 소주보다 광고 모델이 인기를 끈 적은 있지만 소주 자체가 ‘스타성’을 보인 적은 드물었다.

순하리는 ‘소주계 허니버터칩’

소주 업계의 리큐르 전쟁은 저도 소주 경쟁의 후속편으로 볼 수 있다. 과일맛을 가미한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 제품의 알코올 도수는 13도 정도다. 현재 한국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평균 17도 내외다. 서울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참이슬’은 17.8도 ‘처음처럼’은 17.5도다. 충북과 전북은 서울과 비슷한 도수를 이어받고 있다. 부산과 경남에서 인기가 높은 ‘좋은데이’는 이보다 낮은 16.9도다. 전남 연고의 ‘잎새주’는 최근 도수를 17.5도로 낮춰 저도 소주 트렌드에 보조를 맞췄다. 지난해 2월 서울에서 ‘처음처럼’이 주도한 저도 소주 경쟁이 만 1년 만에 전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1965년 등장한 소주는 30도짜리였다. 그러던 소주 도수는 외환위기 이후 크게 3차례 낮아졌다. 1999년 23도에서 21도로, 2006년 21도에서 19도로 떨어져 10도대 소주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지난해 19도에서 17도로 더 순한 소주가 등장했다. 최근의 리큐르는 13도 내외다. 일반 소주와 다른 품목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크게 보면 저도 소주 경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저도 소주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는 이유가 있다. 경쟁이 치열해도 제조사로선 이익을 보는 측면이 많다. 알코올 함량이 줄다 보니 소비자들이 같은 자리에서 더 많은 소주를 마시게 된다. 이 때문에 도수를 내릴수록 소주 출하량이 늘어났다. 지난해 한국 소주 출하량은 전년과 비교해 8.2% 증가한 13억4000만 L를 기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출고 증가폭이다. 이와 달리 소주의 주재료인 주정 출하량은 5.6% 증가에 그쳤다. 소주를 더 많이 팔면서도 재료는 그보다 덜 쓴 셈이다. 이에 더해 주류 소비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저도 소주를 찾는 사람은 더욱 늘어났다. 그러나 16도 이하로 도수를 내리면 소주 본연의 맛을 유지하기 어렵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도수가 낮으면서 소주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했다. 소주에 맛을 첨가한 리큐르가 등장한 배경 중 하나다.

일반 소주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것도 리큐르 제품을 등장을 부추긴 요인 가운데 하나다. 현재 소주 시장은 공급 초과 상황이다. 한정된 중년 남성 시장에 다수의 소주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 더구나 저도 소주 경쟁 역시 한계에 이르렀다. 도수를 더 내리면 그나마 남은 중년 남성들까지 소주를 외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주 업체들은 새로운 고객층을 물색해야 했고,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삼았다. 특히 아직 소주를 제대로 접하지 않은 여성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으로 접근하겠단 의도다. 알코올 도수를 대폭 낮추면서 과일맛도 가미해 젊은 여성층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전략이다.

주류 업계의 격심한 경쟁도 리큐르 시장 형성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의 주류 시장은 맥주와 소주가 양분하고 있다. 매출 규모별 주종 비중을 보면 소주 35.3%, 맥주 54.3%다. 나머지 10.4%를 양주·와인·막걸리 등이 차지하고 있다.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양분하고 있다. 여기에 롯데가 ‘클라우드’를 앞세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러나 롯데 입장에선 맥주 시장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두 업체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게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젊은 여성층 겨냥한 비장의 신제품

이에 따라 롯데는 맥주보다 조금 작은 소주 시장부터 먼저 치고 들어왔다. 올 1분기 기준으로 소주 시장 점유율을 추정하면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46.1%, 롯데칠성 음료의 처음처럼이 17.1%, 무학의 좋은데이가 11.6% 정도다. 참이슬은 2013년 51.5%로 과반을 넘겼다가 최근까지 점유율이 계속 줄고 있다. 이와 달리 처음처럼은 2013년 이후 저도 소주 경쟁을 거쳐 점유율을 15.4% → 16.5% → 17.1%로 꾸준히 끌어올리고 있다. 좋은데이는 11~12% 내외에서 등락하고 있다.

롯데의 소주 점유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하이트진로의 아성이 공고해 쉽게 무너뜨리긴 어렵다. 롯데는 우회 전술을 택했다. 소주는 아니지만 소주 점유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리큐르를 내세운 것이다. 일반 소주 매출의 3분의 1 정도를 올릴 수 있는 리큐르가 시장에서 통한다면 산술적으로 전체 소주 시장에서 점유율을 5.7%가량 올리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맥주와 소주 메이저를 모두 쥐고 있는 한국 주류업 최강자 하이트진로조차도 순하리를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롯데는 그룹 계열사 유통망을 활용해 전국적으로 주류를 공급해왔다. 처음처럼이 단순에 소주 2위까지 떠오른 데는 롯데의 유통망 덕이 컸다. 롯데는 순하리 역시 롯데 유통망을 활용해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본다.

리큐르 소비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다른 주종을 잠식할 가능성도 있다. 맥주보단 진하고 소주보단 옅기 때문이다. 도수는 와인·막걸리와 비슷하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훨씬 저렴한 것도 강점이다. 맥주와 소주를 제외한 기타 주류 비중은 현재 10%대에 불과하다. 소주 3사가 경쟁적으로 리큐르를 내놓고 있어 소비자의 기호와 마케팅의 향배에 따라 ‘맥주>소주>리큐르>기타’ 순으로 주류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소주에 리큐르를 포함한다면 올 연말엔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주종이 소주일 확률도 있다.

롯데 순하리의 선전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순하리는 소주에 유자과즙 0.1%를 첨가해 만든 리큐르다. 소주병에 담지만 알코올 도수 14도로 소주와는 구별된다. 소주의 깔끔함에 유자의 새콤달콤한 맛이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당초 롯데주류는 “전남 고흥의 천연 유자를 쓰기 때문에 제조 원가가 일반 소주에 비해 다소 높다”고 밝혔다. 순하리 출고가는 962.5원으로 처음처럼(946원)보다 비싸다. 하지만 소매가격은 둘이 똑같아 롯데주류 입장에선 처음처럼보단 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제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급 부족 사태를 빚을 정도로 인기를 끌자 롯데주류 측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부터 기존 강릉공장, 군산공장에 이어 경산공장에서도 순하리를 생산하고 있다. 판매 지역도 부산·경남에서 서울 등으로 점차 확대했다. 롯데주류는 조만간 전국에 순하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이제는 순하리 공급 부족이 고민일 정도다. 애초 전남 고흥산 유자만으로 과실맛을 내려 했지만 공급이 달리면서 재료마저 동났다. 롯데주류는 6월 15일부로 순하리의 기존 재료인 증류식 소주와 아미노산을 첨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증류식 소주 대신 희석식 소주 방식으로 변경하고 신맛과 단맛이 나는 액상 과당 등을 쓰기 시작했다. 롯데 측은 “순하리에 어울리는 맛을 내려고 레시피를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주 업계에선 공급 부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천연 유자로 맛을 내려면 유자를 오랜 시간 동안 익혀 즙을 추출해야 하는데, 제조 시간이 길어져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워졌을 거란 얘기다. 공정을 바꿔야 할 정도 순하리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매출 기준으로 롯데주류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소주>위스키>청주’ 순이다. 총 매출은 8000억원 수준. ‘클라우드’를 앞세운 맥주 부문 매출은 450억원에 불과하다. 롯데주류를 먹여 살리는 ‘처음처럼’ 등 소주 매출은 2500억원에 이른다. 순하리의 5월 말 누적판매 2200만병을 출고가로 계산하면 211억7500만원이다. 지금 정도의 판매 현황만 유지해도 연간 예상 매출이 847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리큐르인 순하리가 롯데주류 전체 매출의 10%선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롯데주류 상품기획팀 조판기 팀장은 “순하리의 경쟁 제품이 늘고 있지만 순하리만의 깊고 은은한 맛과 향을 내는 노하우를 다른 업체에서 따라 하긴 힘들 것”이라며 “오히려 리큐르 시장을 키우는 데 다른 업체들의 참여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알코올 도수 13도 내외로 순해

소주 점유율 3위 ‘좋은데이(무학)’는 순하리의 판매량 1000만병 돌파 직후 리큐르 제품을 내놨다. 무학은 지난해 1월부터 일본을 비롯한 해외 수출용으로 시험 제조해오던 리큐르 제품을 내수용으로 전환했다. 수출용으로 개발된 7~8종의 과일맛 중 한국 소비자 시음평가를 거쳐 상품성이 좋은 과일을 골라 생산 라인을 돌렸다. 무학 관계자는 “하이트진로나 롯데가 리큐르 제품을 내놓을 때에 대비해 이미 사전에 준비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롯데가 순하리를 들고 부산·경남 등 무학 소주의 안방까지 침범하자 무학은 시음평가 결과가 좋았던 블루베리 등 3종의 과일맛을 5월 11일 출시했다. ‘좋은데이 블루’(블루베리맛) ‘좋은데이 레드’(석류맛) ‘좋은데이 옐로우’(유자맛)의 컬러 시리즈 3종이다. 이어 6월 8일에는 자몽맛을 내는 ‘좋은데이 스칼렛’도 선보였다. 7월 초엔 복숭아 맛을 가미한 ‘좋은데이 핑크’도 내놓을 예정이다. 알코올 도수는 모두 13.5도다. 서울 지역 소주보다 늘 조금 순하게 만들던 무학의 노선을 유지했다.

무학은 다양한 맛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현재까지 개발 완료된 맛은 총 4가지다. 순하리가 1가지 맛 리큐르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소비자에게 ‘골라 마시는 재미’를 주기 위해서다. 무학은 오래 전부터 리큐르 제품을 개발해왔다. 리큐르 분야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다. 1998년 프랑스 마리브리자드사와 기술 제휴해 칵테일용 주류인 ‘선라이즈’를 출시했고, 그 전인 1995년엔 리큐르 제품 ‘체리스타’ ‘레몬스타’ 등을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다.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는 현재 순항 중이다. 출시 1주일 만에 200만병이 팔린 데 이어 1달 만에 1000만병 판매를 넘어섰다. 6월 22일부턴 전국 편의점 매장에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무학의 마케팅 관계자는 “첫 3종 컬러 시리즈가 출시와 동시에 완판돼 생산계획을 수정하고 시설을 보완했다”면서 “울산공장과 창원1·2공장이 최근 연이어 완공돼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3개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소주량은 한국 소주 시장의 35%를 감당할 수 있다.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는 처음엔 순하리에 대한 방어적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현재 무학은 이를 기반으로 수도권 공략에 나서고 있다. 무학 관계자는 “좋은데이가 전국 판매량이 적었던 것은 수도권 소비자들이 ‘무학’이나 ‘좋은데이’란 이름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며 “리큐르 경쟁은 미투제품이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수도권과 전국 소비자들에게 ‘좋은데이’란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기대했다.

주류 업계에선 무학이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를 판매하면서 일반 소주를 끼워 판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특히 소비자 반응이 좋은 ‘좋은데이 블루’에 주력 소주 ‘좋은데이’를 추가해 파는 전략을 쓴다는 것이다. 서울지방종합주류도매업협회(도매협회)가 “끼워팔기 제보가 속출한다”며 “사실일 경우 이를 불공정행위로 제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다. 어쨌든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가 좋은데이를 수도권 소비자에 알리고, 주류 업계가 긴장할 정도로 시장에 충격을 준 건 사실이다.

하이트진로는 두 회사보다 한발 늦은 6월 19일 리큐르 제품을 내놨다. 이로써 리큐르 전쟁은 3파전 양상이 됐다. 본래 리큐르 전쟁은 일반 소주 마케팅에 비하면 ‘2군’이나 ‘곁가지’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주 업계 최강자 하이트진로까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반 소주 유통망을 가장 많이 확보한 업체라서 리큐르 경쟁이 전국전·정규전 양상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롯데주류도 이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순하리와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가 격전을 벌이던 6월 11일부터 참이슬을 기본으로 만든 ‘자몽에이슬’을 만들었다. 자몽에이슬은 참이슬의 깨끗함에 자몽의 맛을 곁들인 13도 리큐르다. 리큐르 제품 중 가장 순하다. 출고가는 순하리와 같은 962.5원.

무학의 부울경 아성 무너뜨릴 수 있을까?

사실 하이트진로도 오래 전부터 리큐르 제품을 준비해왔다. 2002년 매화수에 이어 2012년에 한정판 ‘참이슬 애플’을 출시했다. 참이슬 애플은 완판되며 리큐르 시장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 2012년 중순 하이트진로 일본 법인인 진로재팬은 도쿄에서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당시 진로재팬 마케팅 담당자는 일본 주류 시장을 설명하면서 “일본 리큐르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잃어버린 10년 이후 일본 정부는 내수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저도주에 대한 세율을 깎아주는 정책을 취했다. 이에 따라 맥아 비율이 50% 이하인 발포주(한국에서 흔히 만드는 맥주류)와 일본 소주(25도)보다 알콜 비중이 낮은 리큐르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이란 설명이었다. 진로재팬 양인집 사장은 “이런 시장 상황에 맞춰 진로재팬도 소주 ‘진로(일본에서 판매하는 소주이름)’를 기반으로 한 리큐르 제품을 최대한 빨리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리큐르 출시는 일본 소비 시장 현황에 따라 지난해 8월에야 이뤄졌다. ‘진로그레이프푸르트’란 이름의 리큐르로 25도 진로 소주를 기본으로 자몽을 첨가했다. 이 제품은 자몽에이슬과 달리 16도짜리다. 일본인 입맛에 맞게 단맛이 강하다. 마산공장에서 생산해 전량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한국의 대일본 리큐르 수출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제품이 한국 리큐르의 원조라는 말도 나온다. 롯데가 일본에서 진로재팬의 상품 가능성을 본 뒤 한국에서 순하리를 출시했을 거란 추정도 이 때문에 나왔다. 한국에 출시된 자몽에이슬은 참이슬을 기반으로 청원공장에서 생산한다. ‘매화수’ 생산라인의 일부를 리큐르 생산으로 돌린 것이다.

리큐르 준비 기간이 길었던 하이트진로가 롯데에 비해 한국 시장에 한 발 늦게 진입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한국 과일 리큐르 시장 규모는 전체 주류 시장의 1~2% 정도이고 아직 초기 수준이라 안정적으로 수요가 형성됐다고 보기 이르다”면서 “리큐르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변화가 많아 자칫 생산량을 늘려놨다가 시장이 식어버리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마케팅 조사 결과, 한국인의 과일 리큐르에 대한 수요와 반응이 매우 소극적이었다. 불안한 리큐르 시장에 먼저 뛰어들 필요가 없었단 얘기다. 특히 소주 1위 ‘참이슬’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점도 제품 출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주류 업계는 현재 한국 소주 시장을 1강 2중 군소로 나눈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이 1강, 롯데주류(처음처럼)·무학(좋은데이)이 2중, 나머지는 각 지역 기반 업체들이 조금씩 시장을 나누고 있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은 ‘전국구’로 활동한다. 하지만 유독 무학의 근거지인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에선 좋은데이가 75%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무학이 전국구에 가까운 2중까지 판매량을 늘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소주 시장 과반에 가까운 점유율을 가진 하이트진로 입장에선 무학이 특정 지역에서 강세를 보여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점유율 과반을 넘기면 독과점 규제에 걸릴 위험까지 있으니 3사3분 형태가 이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롯데 입장은 다르다. 부산·경남을 그룹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가운데 이 지역에서 무학에 밀리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롯데는 처음처럼을 앞세워 이 지역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해왔다. 한 때 수도권 지역에 버금갈 만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지역사랑이 유별난 탓에 판매량을 늘리는 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소주 업계에 따르면, 순하리는 애초 부울경 지역 공략을 목적으로 기획됐다. 견고한 부산 소주 시장에 균열을 내기 위해 고안한 신무기란 의미다. 이 때문에 순하리는 부울경의 대학가에 가장 먼저 등장했다. ‘소주계 허니버터칩’이란 말도 순하리를 구하려다 지친 부울경 대학생들로부터 나왔다. 롯데는 순하리를 통해 부울경 점유율을 확대해 전국 소주 시장을 1강2중에서 2강 체제로 재편하겠단 욕심이다. 하지만 업계 시각은 좀 다르다. 처음처럼이 부울경에서 시장을 잠식하는 효과보다 좋은데이가 수도권에 알려지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본다.

강력한 미투제품들이 나왔지만 아직까진 순하리가 선방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판세가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순하리가 허니버터칩이라면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나 자몽에이슬은 뒤이어 나온 ‘수미칩 허니머스타드’로 빗댈 수 있다. 수미칩은 과거 전통적인 감자칩의 명성을 이어오다 허니버터칩 이후 꿀감자칩 버전을 따라 내놨다. 허니버터칩의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피로감을 느끼자 수미칩은 이 틈을 비집고 꿀감자칩 시장에서 강자로 떠올랐다. 이젠 미투제품인 수미칩이 원조인 허니머스타드와 비슷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소주 업계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리큐르 시장에서 제대로 된 성적표는 올 연말에나 나올 전망이다. 출시일이 일렀던 순하리는 메르스 사태의 영향을 덜 받았다. 이와 달리 하이트진로와 무학은 메르스 사태 탓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가 진정세로 접어들고 있어 마케팅 여부에 따라 리큐르 강자가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리큐르로 대표되는 소주전쟁 4라운드 종료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글=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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