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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돈을 좇는 중국, 그 어둠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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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왼쪽부터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시각장애인 변호사 천광청, 경제학자 린이푸, 시인 청소부 치샹푸. [사진 열린책들]

야망의 시대
에번 오스노스 지음
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568쪽, 1만9800원

기자는 오늘도 적는다. 새로운 것을 듣거나, 특이한 것을 보면 반사적으로 취재 수첩을 꺼내 일단 적고 본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한다지만 ‘적어야 산다’는 기자의 속성은 변한 게 없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취재 수첩 중 실제 기사화 되는 건 20~30%에 불과하다. 숱한 얘기가 그냥 수첩 속에서 묻힌다. 『야망의 시대』 는 그 수첩 속 얘기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여 동안 중국을 뛰어다니며 보고, 들은 특파원의 취재 뒷얘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수첩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대만 군 복무 중 3시간 여 바다를 헤엄쳐 대륙으로 탈출한 경제학자 린이푸(林毅夫), 자유언론의 기수라는 후수리(胡舒立), 행동하는 반체제 예술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 저자는 이들을 통해 중국의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를 분석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중국인을 관찰했다. 그러나 더 관심이 가는 건 우리가 모르고 있는 의외의 인물들이다.

 저자가 베이징 뒷골목에서 만난 인물 수이(舒乙·70)는 작가다. 베이징현대문학관 관장을 지냈다. 그는 중국의 유명 현대 소설인 『뤄퉈샹즈(駱駝祥子)』의 저자 라오서(老舍·1899~1966)의 아들로 더 잘 알려져있다. 수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렇게 회고한다.

 “13~16세 여학생 홍위병들은 아버지를 공자 사당에 밀어 넣고 무릎을 꿇렸다. 호위병들은 서양과의 연계를 불라고 추궁했다. 놋쇠 버클이 달린 가죽 허리띠로 채찍질을 해댔다. 구타는 3시간 계속됐다. 이튿날 아버지는 집 근처 타이핑이라는 호수를 찾았고, 주머니를 돌로 채운 채 호수를 향해 걸었다.”

 중국 문화대혁명은 그렇게 사회를 광기로 몰아갔다. 수많은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을 당해야 했다. 광기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죽는 1976년까지 10년동안 계속됐다.

에번 오스노스

 1978년 말 개혁개방에 나선 덩샤오핑(鄧小平)의 메시지는 간결했지만, 강렬했다. "먼저 부자가 되어도 좋다(先富起來)!”고 했다. 그 한마디는 또 다른 등장 인물인 공하이옌(?海燕·39)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공하이옌은 결혼정보 사이트인 스지자엔(世紀佳緣)의 설립자다.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거부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이웃이라곤 세 집밖에 없는 산골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농촌 처녀 총각이 도시로 몰려드는 시대, 그 역시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의 파나소닉 공장에 취직했다.

 “공장에 희망은 없었습니다. 스무 살 때 다시 학교로 갔지요.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결국 베이징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90년대,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선택’ 때문이라고 말한다. 덩 시대에 들어서면서 중국 사회는 서서히 다양화 시대로 접어든다. 개인의 선택 여지가 넓어졌다. 결혼도 자신의 의지가 중요했다. 그의 결혼 중개 인터넷사이트는 ‘선택의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급성장했다. ‘먼저 부자가 되어도 좋다’는 덩의 외침은 그렇게 젊은이들을 자극했고, 중국 경제를 바꿨다.

 경제적 부가 사회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2011년 10월 광둥성 포산(佛山)에서 벌어진 어린이 자동차 사고는 괴물처럼 변한 중국 사회를 폭로하게 된다. 비 오는 시장통, 3살짜리 어린아이가 봉고차에 치었다. 앞뒤 바퀴에 두 번이나 깔렸다. 길에 쓰러진 아이, 그러나 CCTV 속 행인들은 힐끗 쳐다보고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소형 자동차가 길에 널브러져있는 아이의 발을 깔고 지나가기도 했다. 바로 앞 가게 주인은 봐도 못 본 척 자기 일만 했다.

 그 소녀에게 도움의 손길이 뻗친 것은 사고 6분이 지난 후였다. 시장에서 폐품을 팔아 하루하루를 살 던 천셴메이(陳賢妹·62) 할머니가 다가와 아이를 수습했다. 그는 저자와의 만찬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포상금으로 약 1만3000달러 정도를 받았습니다. 주변에서는 내가 부자가 된 줄 알고 돈을 빌려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아들은 동료의 질시를 이기지 못해 결국 직장을 그만뒀지요. 내 삶은 더 비참해졌어요.”

 천셴메이 할머니의 증언은 오로지 돈만 보고 달려가는 중국 사회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은 ‘2015년 중국 사회 현장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취재수첩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있다.

 “13억 개의 차가운 심장으로 이뤄진 나라가 어찌 세상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세계 지도자라고 자처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그렇게 사람을 통해 사회를 관찰하고, 다시 사회 속 개인을 봤다. 그래서 더욱 조밀한 분석이 가능했다. 다만 서방 기자의 시각이라는 점은 감안하고 읽어야겠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S BOX] 캐릭터로 보는 21세기 중국

『야망의 시대』는 변화하는 중국을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엮어낸 21세기 중국의 초상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현대 중국 사회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린이푸(林毅夫·63)=학자, 베이징대 중국경제연구센터 주임(전 세계은행 부총재). 1979년 대만에서 군 복무 중 대륙으로 탈출. 중국의 성공적 경제 정책을 상징.

●공하이옌(?海燕·39)=사업가, 스지자엔(世紀佳緣) 설립자. 나스닥 상장으로 거부 반열에 오름. 중국 기업의 부(富) 상징.

●후스리(胡舒立·62)=언론인, 차이신(財新) 편집장. 차이징(財經) 잡지 편집국장 시절 외압에 반발. 중국 언론 자유의 상징.

●아이웨이웨이(艾未未·58)=행위 예술가. 2009년 자신의 블로그 폐쇄되면서 정부와 대립각. 반체제 예술가의 상징.

●수이(舒乙·70)=소설가 라오서(老舍)의 아들, 작가, 전 베이징현대문학관 관장. 문화대혁명 시기 라오서의 죽음에 대한 증언. 문화대혁명 시기의 폐해 상징.

●천셴메이(陳賢妹·62)=무직, 시장에서 폐지 줍기로 연명. 자동차에 치인 세 살 배기 아이를 구해줘 유명해짐. 중국 인명경시 풍조의 고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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