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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수학 공부 시작은 수준에 맞는 교재 선택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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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문고 3학년 이일규군

토·일요일에도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
하는 이일규군은 한번 공부를 시작하
면 점심 먹으러 갈 때와 집에 갈 때 외
에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법이 없다.

입학 전 독학으로 고교 수학과정 2번 훑어
영어는 문제집보다 수업 중 토론이 효과적
친구의 질문도 도움…“많이 물어봐줬으면”

‘以責人之心責己 以恕己之心恕人’(이책인지심책기 이서기지심서인,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疑人莫用 用人莫疑’(의인막용 용인막의,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마라).

책상 칸막이에 깨알 같은 글씨로 한자를 빼곡히 적어놓은 포스트잇이 나란히 붙어있는 이 자리는 서울 광문고의 전교 1등 이일규(3학년)군의 지정석이다.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되거나 잡념이 생길 때 이런 고사성어들을 보면 마음이 다시 차분히 정리되는 것 같다”는 이군은 학교 입학 때부터 지금껏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 이군의 단출하고 정갈한 책상 위에는 차분한 심성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군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
은 한국사다. 수업 시간에는 선
생님의 설명을 전부 옮겨 적은
뒤 흐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중학교 안 다니고 혼자 힘으로 홈스쿨링

이군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홈스쿨링을 한 뒤 검정고시를 치르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에 안 간 건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중학교 배치고사까지 치렀는데, 부모님께서 ‘학교에 다니는 것과 너 혼자 책 읽고 운동도 하는 시간을 갖는 것 중에 뭐가 더 좋을지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부모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나서 홈스쿨링을 하기로 했죠.”

검정고시는 3개월 만에 합격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 수학을 공부했다. 중학교 수학은 초등학교 때 거의 마쳤던 터라, 홈스쿨링 기간에는 고등학교 수학 3년 과정을 2번 정도 훑었다. 이 정도 선행학습을 하려면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 예상하기 쉽지만 이군은 “사교육은 전혀 받지 않았고, 혼자 문제집을 풀며 독학을 했다”고 말했다. 인터넷 강의(인강)도 들은 적이 없다. 이군은 “인강을 들어 보려고 했는데, 너무 졸음이 와서 포기했다”며 “혼자 고민하고 문제 풀고 검산하는 과정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수학 전 과정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독학으로 끝내는 게 가능할까. 이군은 “수학도 독서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며 “책을 좋아하는 초등학생이 혼자 힘으로 성인들이 보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수학도 자신이 좋아하면 저절로 앞선 내용까지 공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초등학교 입학 때였다. “매일 책만 보니까, 엄마가 ‘이런 것도 한번 해볼래’라고 하시며 수학 문제집을 주셨어요. 재미가 있어서 2~3일에 한 권씩 풀었던 거 같아요.” 이군은 초1 때 5학년 수학 문제집까지 혼자 풀었고, 초3 때는 중학교 수학을 거의 다 훑었다.

그는 자신의 수학 공부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 수준에 맞는 문제집을 고르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 문제집을 틀린 문제가 하나도 없을 때까지 반복해 풀고 나서 좀 더 수준 높은 걸 골라 또 전부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보는 거죠.” 그가 수준에 맞는 문제집을 고르는 요령은 이렇다. “한 단원의 문제가 ‘기본-심화-사고력’의 순서로 수록돼 있잖아요. 기본에서 10문제, 심화에서 10문제, 사고력에서 10문제씩 골라 풀어본 다음, 정답률이 70% 정도 되는 게 자기 수준에 맞는 문제집이에요.”

수학은 혼자 공부하는 게 효율적이었지만, 영어는 아니었다. 홈스쿨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이군은 현재 영어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 공부하고 있다.

방과후수업으로 영어 토론이나 모의 유엔처럼 영어를 많이 사용할 수 있는 과목을 듣고 있다. 이군은 “영어는 언어이기 때문에 혼자 문제집 풀면서 공부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수업 시간에 영어로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실력이 쌓이게 된 것 같다”고 얘기했다.

종일 자습하면 중간에 단 한 번 쉬는 집중력

이군은 자신의 전교 1등 비결로 “집중력과 무던한 성격”을 꼽았다. “초등학교 때는 쉬는 시간에 책을 폈다가 수업 종이 울리는 걸 못 듣고 계속 읽다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다”며 “지금도 자습을 시작하면 중간에 일어서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오전 9시30분이면 학교 독서실에 도착해 자습을 시작하는 이군은 공부를 마치는 오후 6시30분까지 딱 두 번 자리에서 일어선다. “점심 먹으러 편의점 갈 때, 집에 갈 때”란다. 공부하다 시계를 들여다보는 일도 없다. 평일에는 막차를 타고 집에 가야 해서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알람을 맞춰놓는 게 이군이 시계를 사용하는 용도다.

한번 책을 펴면 꼼짝 않고 집중하는 그지만 책 속에만 파묻혀 사는 외골수는 아니다. 실제 성격은 정반대다.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반 친구들과 축구팀을 조직해 반 대항 대회에 나가 대상을 타오기도 했고, 고1~2학년 땐 학급 임원과 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부터는 공부 방법도 많이 바꿨다. 이군은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 친구들이 물어본 내용에 답해주는 게 훨씬 재밌다”며 “친구들이 좀 더 많이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독학을 하다 보니 안 좋은 습관이 굳어졌다”며 “그 한 가지는 수학 문제를 풀 때 풀이과정을 다 생략하고 필요한 것만 간단하게 적고 답을 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하면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수학 선생님이 내 노트를 보시고 ‘고난도 문제를 검산하기 힘들다. 풀이과정을 꼼꼼하게 적으라’고 조언해주셨다”고 했다. 오랜 습관이라 고치기 쉽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공부하며 조금씩 바꿔나갔다. “친구들이 물어본 문제의 답안을 세세하게 적고 말로 설명해주다 보니 내 풀이 습관도 저절로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차분하고 무던한 성격은 공부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군은 “부모님께 반항해 본 적도 없고, 남동생과도 소소한 말다툼 외에 싸움이란 건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부모님과 대화하는 때다.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어요. 가방에서 짐 꺼내면서 부모님과 수다를 떠는 데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대화의 주제는 공부가 아니다. “아직 여자친구는 없는데, 관심은 많거든요. 부모님께 그런 얘기도 자주 하는데, 엄마는 ‘지금 3학년이니까 졸업하고 사귀라’고 하시고 아빠는 ‘인생은 행복하려고 사는 거야. 마음 끌리는 대로 한번 해봐’라고 하세요. 두 분 반응이 달라서 그것도 재밌어요.”

 
암기 과목도 전체 흐름과 원리까지 이해

최근 고민하는 과목은 한국사다. 그는 “한국사가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심각을 표정을 지었다. 이군이 “어렵다”고 얘기하는 건 시험 점수가 낮다는 의미가 아니다. “답만 맞히는 건 아는 게 아니잖아요. 원리와 흐름을 알아야 하는데, 한국사가 워낙 범위가 방대해서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 같다”는 뜻이다.

기말고사를 마친 뒤부턴 한국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생각이다. “한국사 6종 교과서를 합쳐놓은 교재가 있다고 하니, 그 책을 꼼꼼하게 읽고 맥락을 잡은 뒤에 세세한 내용을 훑어나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군은 거의 모든 과목을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 원리를 이해하고,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꼼꼼하게 짚어나가는 방식이다.

그는 ‘원리 중심의 공부법’에 대해 “독학할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고 설명했다. “답만 맞힌다고 넘어가는 건 공부가 아닌 것 같다”며 “조금 시간을 들여 천천히 하더라도 원리와 맥락부터 이해하는 게 진짜 노력이고, 나머지 세세한 사항을 암기하는 건 단순히 시험공부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공부는 노력한 사람 절대 배신 안 해”

그들이 효과를 본 공부법은 이외에도 많다. 정씨는 내신과 수능 모두 기출문제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전교 100등에서 전교 1등으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기출문제 분석이란다. 지난 시험 문제를 통해 난이도를 분석한 후 출제경향을 파악했다. 지난해 문제가 어떻게 나왔고, 교사가 왜 그 문제를 시험에 출제했는지를 파악해두면 뭐가 중요하고, 어떻게 시험에 대비해야 하는지가 눈에 보였다.

서씨는 “중학교 때 영어학원에서 했던 ‘섀도잉 학습법’이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물론, 수능에서도 큰 힘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영어 듣기평가에서는 틀린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섀도잉 학습법은 귀로 영어 지문을 들으면서 영어 발음이 들리는 대로 입으로 따라 말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지문이 보통 200개 단어로 이뤄져 있다면 196개를 똑같이 따라 할 정도로 듣고 말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년을 하니 중학교에 입학할 때 ‘사과(Apple)’ ‘소개하다(Introduce)’조차 몰랐던 그가 웬만한 영어 문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또 자신만의 단어암기 노트를 만들었다.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네 칸으로 나눈 공책에 정리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칸에 ‘Apple’이라고 쓴 후 두 번째 칸에는 ‘사과’라는 뜻을 적는다. 그리고 첫 번째 칸에 쓴 Apple을 가리고 세 번째 칸에 다시 영어 단어를 써본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칸을 가린 후 세 번째 칸의 Apple만을 보고 네 번째 칸에 뜻을 쓰는 식이었다. 서씨는 매일 이런 식으로 새로운 단어 40개, 복습단어 200개씩 암기했다. 중학교 입학 당시 영어 성적 최하위에서 수능 영어 성적 2등급으로 뛰어오른 비결이다.

이씨는 흥미를 느낄 수 없던 국어·영어 과목을 매일 조금씩 공부했다. 감각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국어는 30분씩, 영어는 40분씩 공부했다. 국어는 문학·비문학 한 지문을 각각 5분 안에 푼 뒤 10분간 지문 분석을 했다. 자신이 답으로 고른 보기가 왜 답이고, 나머지는 왜 답이 아닌지에 대한 논리를 찾았다. 고2 겨울방학부터 3개월 그렇게 공부하니 고3에 올라가 처음 치른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았다.

이과였던 이씨는 과학탐구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기출문제·모의고사 등에 나오는 문제의 선택지 중에서 자신이 모르는 내용은 몽땅 정리했다. 공책 오른쪽 면에 학교나 학원에서 수업 들은 내용을 정리하고, 왼쪽 면에서는 그와 관련해 시험에서 자주 등장하는 선택지를 적었다. 시험을 치르는 횟수가 늘수록 선택지도 많이 쌓였고, 시험 전에는 정리한 내용만 보면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런 덕분에 이씨는 물리에서는 쭉 1등급을 받았다. 이씨는 “‘고3 때는 공부해도 성적이 안 오른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공부는 절대로 노력한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상 위 교재

◆ 국어: 수능특강(EBS), 인터넷수능(EBS), 마더텅 기출문제집(마더텅), 자이프리미엄(수경출판)
◆ 수학: 수능특강(EBS), 블랙라벨(진학사), 일품수학(좋은책신사고)
◆ 영어: 수능특강(EBS), 인터넷수능(EBS), 자이프리미엄(수경출판), 씨뮬 사설 상반기 문제집(골드교육)
◆ 한국사: 수능특강(EBS), 미래로수능기출문제집(이룸이앤비)
◆ 사회문화: 수능특강(EBS), 미래로수능기출문제집(이룸이앤비), 누드교과서(이투스)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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