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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연, 삼시세끼와 2PM 사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엘르] 2PM으로 무대에서 옷을 찢고 그르렁거리는 택연은 여기 없다. 강원도 정선에서 수수를 베는 일꾼도 잊었다. 밴쿠버에서 만난 택연의 여름은 청량했다. 그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만 남자다웠다.

택연이 거닐고 있는 그랜빌 아일랜드 부둣가에는 호화로운 개인 요트 정박장과 수상 가옥이 늘어서 있다. 드레싱 가운은 57만9천원, 쇼츠는 23만7천원, 모두 La Perla.


이국적인 패턴의 프린트 셔츠는 20만4천원, Kenzo, 태양열 쿼츠 무브먼트가 탑재됐고, 방수 기능이 있는 스위스 메이드 시계 ‘T-터치 엑스퍼트 솔라’는 1백33만원, Tissot.


짜임 디테일을 강조한 니트 풀오버는 30만원대, System Homme, 네이비 컬러 쇼츠는 가격 미정, Sieg Fahrenheit.

브라운 컬러의 니트 톱과 블루 컬러 쇼츠, 로퍼는 모두 가격 미정, Salvatore Ferragamo, 메탈 프레임이 고급스러운 선글라스 ‘Dali’는 가격 미정, Heroes.


트로피컬 패턴의 점퍼는 79만2천원, Kenzo, 베이지 컬러의 쇼츠는 32만8천원, A. P. C.


레더 질감의 블랙 컬러 셔츠는 40만원대, Hydrogen, 메탈 템플과 레오퍼드 프레임이 만나 세련되면서도 남성미가 부각되는 선글라스 ‘Patience’는 가격 미정, Heroes, 핸드 와인딩 수동 메케니컬 무브먼트가 적용됐고 시스루 케이스 백이 돋보이는 스위스 메이드 시계 ‘T-컴플리케이션 스켈레톤’은 2백23만원, Tissot.


거대한 스탠리 파크에는 산책로를 따라 울창한 침엽수림이 우거져 있다. 그레이 티셔츠는 13만8천원, 워싱이 고급스러운 데님 팬츠는 44만8천원, 모두 True Religion.

네이비 컬러 수트는 60만원대, Gucci, 블루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블랙 컬러로 입체적인 핏을 강조한 오버사이즈 선글라스 ‘KASSIA’는 가격 미정, Heroes.


스탠리 파크 내에 트레킹이 가능하도록 조성된 숲길. 그레이 컬러 데님 재킷은 23만8천원, 데님 팬츠는 19만3천원 모두 All Saints.

택연과 보낸 나흘간, 그에게서 어떤 ‘짐승’ 같은 면도 찾아내기 어려웠다. 밴쿠버 공항에 내렸을 때 하필이면 택연의 짐을 두고 모두 주차장으로 향해버린 사건은 그 스타가 누구냐에 따라 ‘재앙’이었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스스로 공항으로 돌아가 짐을 찾아온 건 친절의 서막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재앙은 따로 있었는데, 촬영이 예정된 이틀간 꼬박 내린 비였다. 비가 오건 말건 일정상 정해진 촬영을 강행해야 했을 때 택연은 흔쾌했다. 추적거리는 빗속에서 스탠리 파크는 춥고 습했지만 택연은 티셔츠 한 장만 입고도 해맑게 웃었다. 요트가 정박된 섬에선 바닷바람이 칼처럼 뒷목을 스쳤지만 여기서도 택연은 얇디 얇은 나이트 가운만 벗듯이 걸친 채 허허거리기만 했다. 종일 비 맞고 떨었으면서도 촬영 사이사이 스태프들이 그의 눈치를 살피게 하는 대신, 택연은 누가 묻지도 않은 &lt삼시세끼> 메뉴를 고민하거나 다니는 대학원 얘기를 풀어놨다. 정선에 냉장고가 없다느니, 고연전에서 몰려다니며 술을 얻어 마셨다느니, 허물없이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옥빙구’로 불리는 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우박이 내려 촬영이 아예 불가능해지자, 그냥 인터뷰나 하기로 했다. 그는 밴쿠버 거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활보했고, 늦은 시간까지 문 열린 카페를 찾아 관광객처럼 어슬렁거렸다. 카페에서도 목소리를 낮추고 주위를 의식하는 대신 긴 팔을 크게 벌리거나 어금니까지 드러나게 웃으면서 얘기를 이어나갔다. “2PM 정규 음반이 곧 나올 거라 이제부턴 다시 바빠질 거예요. 3, 4월엔 여유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냥 부모님 모시고 여행 다녀왔어요. 그리스하고 터키. 그리스 같은 경우는…. 다 무너져 있어서 남아 있는 건 ‘터’ 밖에 없더라고요. 산토리니도 갔는데, 날씨도 춥고 여기저기 보수공사 중이라 볼 게 없었어요. 그래도 아버지가 가족 카톡 방에 ‘택연아 고맙다’라고 말해주셨죠. 28년 인생에서 처음 들어봤을 거예요. 그건 좀 많이 좋았어요. 아, 그런데 제 첫 여행지는 로마였어요.” 알고 있었다. 택연의 연관 검색어로 뜨는, 바로 그 패키지 여행. 그는 매니저를 대동하지 않고 한 여행사의 로마 패키지 여행 상품을 직접 신청해 ‘일반인’들과 함께 1주일을 보냈다. “7~8년쯤 활동하다 보니 중간에 한 번 그런 때가 오더라고요. 힘든 기간. 한 3~4년쯤 했을 때였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처음엔 이름을 알렸으면 됐지, 그 다음엔 돈 많이 벌면 좋지, 자 그럼 이름도 알렸고 돈도 많이 벌었어. 그럼 난 왜 계속 하고 있지? 그때 로마에 갔죠.” 그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재미있게 하는 법과 삶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사람들은 그에게 “넌 아이돌이고, 누가 그 나이에 돈을 벌어 혼자 여행을 다닐 수 있겠느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얘길 해 줬다. 잊고 있었지만 그는 무대에서 티셔츠쯤은 우습게 찢어버리는, 찌푸린 미간을 좀처럼 펼 일이 없는 ‘짐승돌’이다. 그 사실이 더 잊히기 전, 좀 있으면 2PM의 정규 음반이 나온다. “사람들이 좋아할지에 대해선 늘 확신이 없어요. 요샌 좋은 곡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알죠.” 택연의 설명에 의하면 2PM은 공화국이다. 앨범에 들어가는 곡도 다수결로 정한다. “저희끼리 채점표를 만들어요. 곡을 다 들어보고 ‘아주 좋음’부터 ‘아주 나쁨’까지 점수를 매겨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은 곡이 타이틀곡이 되는 거예요.” 사실 대중 역시 이제 중견에 접어든 2PM이란 그룹에게도, 택연이란 아이돌에게도 무조건 그르렁거리기만을 기대하는 시기는 지나갔다. 그래서 택연은 무대에서 진한 아이라인을 그리고 파워풀한 랩을 하며 춤추는 모습과 &lt삼시세끼&gt에서 트랙터를 운전하는 모습이 같은 시기에 TV에 나와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가 건장한 자신의 어깨와 두꺼운 팔뚝을 섹스어필로 사용할지, 노동에 사용할지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가수로서 정점을 찍었다는 말과는 또 다른 의미다. 그것은 택연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제가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솔로를 한다? 그렇다면 2PM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솔직히 말하면 솔로에 대한 욕심이 그리 많지도 않고요. 활동하면서 느낀 건데 굳이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될 일은 돼요. 점점 더 흔들리지 않게 됐어요.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어요.” 그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lt신데렐라 언니&gt도 굳이 욕심부리지 않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배역이다. 사실 욕심은 작가가 더 많이 냈다. 자신 없다고 몇 번이나 고사했는데, 작가는 그를 원했다. “그때는 연기하는 아이돌이 지금보다 적었고, 잘 못하면 정말 가루가 될 때까지 욕을 먹던 시기였어요. 무서웠죠. 전 뭐든지 일단 떨어지면 열심히 하지만 그렇게 서투르게 시작한 연기로 주말극 &lt참 좋은 시절&gt까지 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요.” 그러나 그는 묵묵히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목석을, 식어가는 사랑을 붙잡는 나약한 남자를, 엄마에 대한 일그러진 애정을 품은 망나니 아들을 연기하면서 조금씩 흔들리는 눈빛을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그가 특별히 광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메소드 연기의 신은 아닐지라도 조용히 덤덤히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천천히 집중하고 있음은 알아챌 수 있었다. 예능에서조차 투덜거리는 이서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묵묵히 파를 다듬거나 불을 피우곤 하니까.
착하고 열심이기만 한 남자는 매력 없다. 택연의 한 방이 뭔지 찾아내고 싶었다. “어디서도 안 한 얘기 좀 해주세요.” “그런 건 없어요.”(하긴 했지만 지면에 실을 수 없었다) 그는 수더분해 보이는 태도에 비해 연예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온 것 같다. 요즘은 하기 싫은 일이 오면 솔직하게 거절한다. 거만하게 보였냐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에서 괜한 기운을 빼지 않는 것뿐이었다. “제가 데뷔할 때 스물한 살이었어요. 그때 슈퍼주니어 형들은 스물대여섯 살이었죠. 당시엔 ‘저 나이에도 아이돌 할 수 있구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신화나 g.o.d 형들이 있었기 때문에 엔터테인먼트계의 지형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몇 살까지 뭘 해야 한다는 데 부담을 덜고 나서는 연예인은 직업이지 제 신분이 아니라고 되새기곤 해요. 제 신분은 오히려 학생이죠. 대학원생.” 애어른 같은 그에게도 조급한 게 있을까? “글쎄, 결혼? 부모님을 보면서 빨리 결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저희 부모님은 여전히 젊지만 제가 다 커서 재밌게 놀러 다니시거든요. 저도 아버지께서 결혼한 스물여덟 살쯤에 결혼하고 싶었는데, 이미 지났죠.” “올해 가기 전에 결혼하면 되죠.” “아니요. 그럴 일 없어요.”

글 이경은 엘르 기자, 사진 신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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