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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 당정협의 조속히 재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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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2일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 5개국 간 협의체인 ‘믹타(MIKTA)’ 국회의장단 회의에 참가한 각국 국회의장들을 청와대에 초청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이번 회의 주최자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없었다. 청와대가 오찬으로 계획됐던 행사 수준을 ‘예방’으로 축소하면서 정 의장이 빠지게 됐다는 후문이다. 청와대가 당초 계획대로 행사를 오찬으로 치렀다면 정 의장도 함께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연출됐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국회법 개정안을 원칙대로 재의에 부치기로 한 정 의장에 대해 청와대가 불만을 표출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어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는 ‘유승민 사태’를 둘러싼 여당의 내홍이 갈 데까지 갔음을 보여준 막장 드라마였다. “무슨 이런 회의가 다 있어”(김태호 최고위원), “그만해!”(김무성 대표), “개XX”(김학용 대표 비서실장)…. 글로 옮기기도 민망한 고성과 막말이 난무한 끝에 비공개 본회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회의가 중단되고 말았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놓고 일주일 넘게 계파 갈등을 거듭하며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온 공룡여당이 일상적인 당무까지 마비된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나라를 함께 끌고 가는 2인3각의 관계다. 아무리 원내대표 거취를 놓고 싸울지라도 국가 현안에는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게 대통령과 여당의 의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뿐 아니라 국회의장과도 상종(相從) 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이니 걱정스러울 뿐이다. 대통령이 이럴진대 최경환 부총리나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같은 대통령 측근들도 여당 지도부와 대면을 꺼릴 수밖에 없다.

 추경예산을 다루는 당정협의가 유 원내대표의 불참 속에 반쪽으로 진행된 것이나 정부의 메르스 대책을 보고받기로 한 국회 운영위가 갑자기 연기된 것도 다 같은 이유로 짐작된다. 7월 임시국회와 추가경정예산 심사 등 향후 국회 일정에서도 이런 파행이 이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내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여당이 벌이는 골육상쟁이 남길 깊은 후유증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지금 여권의 내부 갈등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 어떤 막장 드라마까지 지켜봐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대통령은 국정의 무한책임자다. 국정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하는 것이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과 별개로 국정 현안에 대해서만큼은 아무리 밉더라도 여당 지도부와 소통을 재개하는 것이 순리다. 한 달 반 넘게 공석 중인 정무수석에 정치권의 신뢰를 받는 경륜 있는 인사를 임명하고,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새로운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정무장관 신설이나 새누리당 의원으로 입각한 부총리·장관 6명을 청와대와 당 사이의 가교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통령도 정치인이니 공천권과 당 장악력도 중요하겠지만 민생과 국익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