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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배터리로 간다, 하이브리드 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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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LG화학의 선박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하게 될 노르웨이의 해양작업지원선 ‘바이킹 퀸’의 모습. 바이킹 퀸은 평소 LNG로 운행하다가 저속 운항시와 항구 내 대기중일 때 배터리를 동력으로 움직이게 된다.

LG화학은 최근 노르웨이 조선사인 아이데스빅(Eidesvik)의 친환경 해양작업지원선(OVS)인 ‘바이킹 퀸(Viking Queen)호’의 배터리 공급 업체로 선정됐다. 국내 배터리 업체 중 선박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납품하는 것은 이 회사가 처음이다. 바이킹 퀸 호는 6000t급의 대형 선박으로 평소에는 LNG로 운항하다가 저속 운항과 항구 내 대기시에 배터리를 동력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배터리로 움직이는 배가 등장하는 것이다. 저속구간에선 배터리와 모터로 구동하는 하이브리드 차와 비슷한 ‘하이브리드 선박’이다. LG화학이 아이데스빅에 납품하는 배터리는 650KWh급으로 약 100여 가구가 하루 동안 사용 가능한 전력량이다.

전기차 배터리 한 번 충전에 320㎞ 운행

미국 자동차 브랜드 쉐보레의 전기자동차 볼트. 동력원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다.

 LG화학 측은 “이르면 이달 중으로 배터리를 공급한다. 배터리를 사용함으로써 바이킹호는 연료비를 18%, 환경오염 물질 배출량을 25%가량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진화와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휴대폰·노트북 같은 모바일 IT 기기용 소형전지 시장, 전기차에서 중심에서 이제는 대형 선박으로까지 영토를 넓힌 것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충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2차 전지’의 대표주자다. 가장 큰 장점은 에너지 밀도가 높고 가공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리튬이온 배터리는 현재 전 세계 2차 전지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LG화학의 사례에서처럼 선박은 리튬이온 배터리 업체들에는 떠오르는 신시장이다. 연비가 석유같은 화석연료보다 뛰어난 데다, 전기를 동력원으로 해 공해물질 배출도 적어서다. UN 산하인 국제해사기구(IMO)는 올해 모든 선박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10%를 감축토록한데 이어 앞으로 매 5년 마다 10% 이상씩 탄소배출 등을 줄이도록 할 계획이다. 그만큼 배터리 시장이 커진다는 얘기다.

한국야쿠르트의 신형 전동카트 코코. 8시간 정도 충전하면 하루 활동에 충분한 전력을 갖출 수 있다. [사진 각 회사]

 무인 항공기, 일명 ‘드론(Drone)’도 배터리 업체들이 눈독 들이는 분야다. 2013년까지만 해도 세계 드론 시장의 90%가 군사용이었지만 최근 드론의 활용범위가 물류 등 민간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 방위산업 컨설팅업체인 틸그룹은 2014년 5조원 대인 전 세계 드론 시장 규모가 2020년에는 12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드론 전용 배터리 셀 개발을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하늘을 나는 드론의 특성상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높은 셀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쉬쉬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배터리 업체들이 드론 전담팀을 꾸려놓고 있다고 보면 무방하다”고 전했다.

 지상에선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 경쟁이 한창이다. 자동차용 배터리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것은 국내업체인 LG화학과 삼성SDI다. 업계 1위인 LG화학의 경우 최근 한 번 충전에 320㎞를 갈 수 있는 자동차용 배터리를 이미 개발했으며, 몇 년 안에 이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678만 대 규모인 전 세계 전기자동차 시장은 2020년에는 1045만 대로 커질 것이란 게 시장조사회사들의 전망이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장은 역시 중국이다. LG화학과 삼성SDI같은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들은 일찌감치 중국에 배터리 공장을 세워놓고 현지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미 일반인들의 삶에도 빠르게 스며들어와 있다. 일명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사용하는 탑승형 전동카트 역시 리튬이온 배터리를 주 동력으로 사용한다. ‘코코(COCO·Cold & Cool)’라고 불리는 신형 전동카트는 전기자동차의 배터리셀과 똑같은 LG화학의 중대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채택했다. 하루에 한 번 8시간 정도 충전하면 하루 활동에 충분한 전력을 갖추도록 했다. 야쿠르트는 대당 800만원 수준인 코코를 올해 말까지 3000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소형 가전제품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 업체인 B3 등은 지난해 2000만 대 가량이었던 리튬이온 배터리 장착 무선청소기가 2018년에는 1억 대로 5배 가량 늘어날 것으로 봤다. 원자력 발전소 등에 대한 불안감과 상시적인 전력난도 리튬이온 배터리 업체들에는 기회다. 전력 공급이 충분할 때 미리 전기를 모아놓았다가 부족할 때 쓸 수 있도록 한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대표적이다. ESS도 리튬이온 배터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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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국 정부는 에너지 저장장치 확산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2010년 9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ESS 설치 의무화 법안을 통과시켜 놓고 ESS 설치 가정에 전기요금 할인 혜택 등을 주고 있다. 독일도 202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35%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일본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을 중단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예비율 확보와 비상 정전에 대비하기 위한 용도로 ESS설치를 장려하고 있다.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네비건트리서치는 최근 미주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 ESS 시장이 올해 340MWh에서 2020년에는 4300MWh로 1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들도 ESS 시장 선점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성과도 내고 있다. LG화학은 2010년 캘리포니아 최대 전력회사인 SCE와 가정용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북미 시장에 처음 진출한데 이어 2014년에는 북미 최대 전력회사인 AES에 배터리 우선 공급 자격을 따냈다. 이 회사는 최근에도 북미 1위 발전사인 듀크 에너지에도 ESS를 공급하고, 미국 최대 전력제품 유통업체인 젝스프로 및 주요 부품업체 등과도 ESS 사업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북미시장 진출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SDI도 북미 ESS 시장에서 발빠르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삼성SDI는 1일 듀크 에너지의 36MW ESS 프로젝트에 리튬이온배터리와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에너지 저장장치 ‘ESS’ 시장 놓고도 경쟁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물론 독일 등 주요국들이 신재생 에너지 발전 활성화 전략을 추진함에 따라 과거 발전용 중심이던 ESS 수요가 최근에는 일반 가정용으로도 빠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값어치가 올라가다보니 해외 업체들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에 가장 공세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일본업체들이다. 일본 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최강자였다가 최근 LG화학과 삼성SDI, 코캄 같은 한국업체들에 밀리고 있어 이를 만회하겠다는 각오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전자부품업체인 TDK는 300억엔(한화 2740억원)을 기존 푸단성 공장에 투자해 새로운 생산라인을 더하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상반기까지 기존 공장의 생산능력은 40% 이상 늘어난다. 히타치 계열의 리튬이온전지 업체인 히타치막셀도 일본 교토 공장의 생산량을 30% 가량 늘린다는 계획이다. 리튬이온전지 업계에서 9위권으로 밀려난 일본 소니도 증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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