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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봄날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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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건용
작곡가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1980년대에 나는 트로트 가요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아직 일본 대중문화는 개방되지 않았던 때였다. 당시 문화계에서는 트로트 가요의 의미를 놓고 이른바 ‘뽕짝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나 역시 그 논쟁에 참여했었다. “민요와 전통음악이 이렇듯 위축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그랬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뿌리 내린 음악이 마치 우리의 고유한 음악으로 여겨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지였다. 이 논쟁은 꽤 오래된 것이어서 60년대에는 트로트의 최고 히트작으로 손꼽히는 ‘동백 아가씨’가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 당하는 일도 있었다.

 시조놀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시조 100수를 선정한 뒤 각각 100장씩 두 벌의 카드를 만든다. 한 벌에는 시조의 초장 중장 종장을 모두 쓰고 다른 한 벌에는 종장만 쓴다. 종장 카드에는 그림도 그린다. 예를 들어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를 위해서는 둥근 달이 거북선 위에 떠 있는 그림을 넣어 카드를 만든다. 그리고 100장의 종장 카드를 방바닥에 무작위로 늘어놓는다. 좌중의 하나가 시조를 초장부터 읽어 내려간다(그래서 또 다른 카드 한 벌이 필요하다). 그러면 둘러앉은 사람들 중에 먼저 종장을 예측한 사람이 재빨리 이 종장 카드를 찾아 가지는데 가장 많은 카드를 찾은 사람이 이긴다.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 하기 좋은 놀이였다. 나는 도맡아 종장 카드의 그림을 그릴 정도로 이 놀이를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꽤 많은 시조를 외운다.

 99년 8월부터 6개월간 일본에 체류한 적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신년을 맞았다. TV를 보다 매우 낯익은 놀이 하나가 아주 낯선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분명 시조놀이였다. 그런데 기모노 차림의 부인네들이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와카(和歌·일본의 전통 시가)를 읽으며 진지하고 치열하게 이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럴 수가!”였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놀이라고 여기며 애틋한 추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것은 일본에서 명절에 자주하던 ‘우타가루다’라는 놀이로서 일제 때 ‘가투(歌鬪)’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와카 대신 시조가 적용되면서 ‘시조놀이’가 되었다고 한다.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를 들은 것은 그 한참 후였다. 가수의 창법이 워낙 특유해 뽕짝티가 나지 않아 그랬는지 쉽게 마음에 들어왔다. 몇 번 듣고 좋아서 그 후부터는 허물없는 술집에 들르면 청해 듣곤 했다. 한번은 술집 주인 얘기가 그 노래에는 30여 명의 가수가 부른 녹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 몇 곡을 들려주는데 보니 완연한 뽕짝부터 시작해 재즈풍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색깔의 버전이 있었다. 이미 한번 마음을 주었기 때문인지 트로트 버전도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무사통과였다. 직업상 다양한 음악을 알고 좋아하는 나에게 마지막 남아 있던 음악 하나가 들어온 셈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분이 조성한 문화환경 덕분에 형제들은 세계 문학작품, 인문지리와 관련된 책, 백과사전류들을 가까이 하고 살았다. 그분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나에게 깊은 영향을 준 그 음악환경은 교회의 찬송가, 서양음악과 관련된 것이었다. 만일 시조놀이가 그러했듯 트로트 노래들이 우리 집안에 익숙한 것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내 음악마음은 어떻게 자라났고 그 마음은 80년대의 뽕짝 논쟁에서 무엇을 주장했을까?

 남에 비해 내가 약하다고 여길 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담을 쌓고 경계한다. 해방 후 우리 문화가 가졌던 왜색가요에 대한 거부감도 그런 경계심이었을 것이다. 해방 후 70년, 이제는 그 담을 넘나드는 다양한 문화들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대장금’, 이자카야와 쌀국수와 양꼬치, 유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싸이 등등…. 이러한 무심함이 그저 얻어진 것은 아닐 터이다. 70년 동안의 성숙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봄날은 간다’를 부른 30여 명의 목소리도 필요했다. 나도 ‘봄날은 간다’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목소리 하나를 더해볼까?

이 건 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