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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ERS)와 머클(Merkel)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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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지난주 미국 하원의 에드 로이스 외교위원장을 인터뷰했을 때의 일이다. 첫 질문은 국내의 메르스 사태를 감안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 대해 조언과 위로를 부탁한다는 내용으로 해서 짧은 영어로 요청했다. 로이스 위원장 등 미국 하원의원들이 한국 국민들을 위로하는 내용의 연명 서한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낸 사실을 한국 언론들이 이미 보도했다고도 알렸다. 이때 로이스 위원장이 순간적으로 의아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게 느껴졌다. 만약 그가 의아해했다면 그건 분명히 ‘메르스’라는 발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메르스’라고 얘기하면 알아듣지 못한다. ‘머스(MERS)’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로이스 위원장은 속으로 ‘메르스라니 이게 뭔가’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쨌든 로이스 위원장은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고 “미국에도 전염병이 퍼질 때가 있다” “한국은 역경을 이겨낸 국가”라고 답했다.

 그러다 일본의 과거사 대응 문제로 주제가 옮겨졌다. 이번엔 기자가 답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로이스 위원장이 “미국도 노예와 같은 과거사를 교과서에 담았다”며 “머클도 …라고 밝혔다”고 얘기할 때였다. 기자는 속으로 ‘머클? 머컬?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다. 알아듣지 못한 기자의 표정이 로이스 위원장에게도 드러났을 법했다. 후속 설명을 듣고서야 감이 왔다.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라고 조언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거론하며 아베 총리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야 ‘메르켈’이라고 말하지만 미국 방송에서 ‘메르켈’이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전혀 익숙하지 않은 대표적인 단어가 또 있는데 그게 ‘사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를 우리는 사드라고 발음하고 표기하지만 미국에선 ‘때드’에 더 가깝게 말한다. 사드 예찬론자인 프랭크 로즈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달 한 세미나장에서 사드는 중국 견제용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한국식 발음을 흉내 내며 “내가 아는 바로는 한국에서 실제론 ‘새드’라고 말한다”고 말해 폭소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사실 발음의 차이는 쉽게 해소할 수 있다. 제대로 발음하면 그만이고 말이 서툴러도 서로 알아들으면 그만이다. 비록 발음은 달라도 우리와 생각은 같은 이들이 곳곳에 있는 게 한국 외교에 힘이 된다. 동맹 관계에선 메르스 때문이건 머스 때문이건 한국이 위기를 맞아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불가피하게 연기된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거들어 주는 미국 정치인들이 있는 게 중요하다. 메르켈이건 머클이건 독일 총리의 조언을 받아들여 일본이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의회 인사가 많아야 한국이 외롭지 않다. 좀 비약을 한다면 콩글리시까지 알아들을 정도로 한국을 아는 친한파들이 포진해 있는 워싱턴을 만드는 게 우리 대미외교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