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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타에 모든 걸 건다 돌격 앞으로 허일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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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으로 나온 골프영화 틴컵(Tin Cup·1996년)은 뜨내기 레슨프로가 프로골프 대회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주인공 로이 매커보이는 US오픈 마지막날 공동 선두에 나섰지만 파5의 마지막 18번홀에서 잇따라 공을 워터 해저드에 빠뜨리고 만다. 캐디는 안전한 3온을 권했지만 매커보이는 무모하게 2온을 시도한다. 결국 맞바람 속에 5개의 공을 물에 빠뜨린다. 매커보이는 그래도 물러나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공으로 샷을 해 그대로 홀인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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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영화처럼 골프를 하는 선수가 있다. 올해 초 군에 입대한 일병 허인회(28·상무)다. 그는 “지난해 일본 투어에 나갔다가 한 홀에서 16타를 친 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최종라운드 4위로 출발해 우승 경쟁 중이었다. 파 5홀에서 티샷이 물에 빠졌다. 벌타를 받고 7번 아이언으로 친 세 번째 샷은 허인회의 표현대로 하면 ‘한 뼘이 모자라’ 그린 앞 워터 해저드에 빠졌다. 허인회는 매커보이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클럽을 바꾸지 않았다. 7번 아이언으로 여섯 차례 공을 물 속에 빠뜨렸다. 캐디가 “공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또 빠지면 실격이었다. 허인회는 그 때서야 물러섰다. 6번 아이언으로 바꿔서 그린에 공을 올렸고, 1퍼트로 마감했다.

 영화 틴컵의 매커보이는 12타를 쳤는데 허인회는 16타를 쳤다. 허인회는 “한순간에 순위가 50계단 이상 내려가더라”고 했다. 더 놀라운 건 그가 16타를 친 게 어떤 대회인지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 허천욱(55)씨는 “매경오픈 등 한국에서도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허인회의 플레이스타일은 ‘닥치고 공격’ ‘무조건 거리’ 다. 드라이버 거리에 대한 욕심이 많다. 그는 “드라이브샷 거리를 재는 홀을 앞두고는 그 전 홀부터 어떻게 하면 더 멀리 칠 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선수 중에는 드물게 10cm 짜리 롱 티를 쓴다. 그는 “공을 높이 올려놓은 뒤 드로샷으로 올려치면 멀리 날아간다. 높은 티를 쓰는 건 1m라도 더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인회의 드라이브샷 거리는 약 330야드(약 301m) 정도다. 그는 “군대에 입대한 뒤 안 하던 체력훈련을 하면서 20야드 정도 늘었다”고 자랑했다. 그는 또 “수십년 골프 할 건데 대회 하나하나에 연연하지 않는다. 공격하다 우승을 못 해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공격적인 플레이는 지난해부터 빛을 발하고 있다. 올 시즌 개막전인 4월 동부화재 프로미 대회에선 7타나 뒤졌다가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7일 끝난 넵스 헤리티지에서도 10타 앞선 선두를 2타 차까지 쫓아갔다. 한 번 맞기 시작하면 8~9언더파가 나온다. 지난해 10월 도신 토너먼트에선 합계 28언더파로 일본 투어 최저타 기록을 세우며 우승하기도 했다.

 허인회는 25일 개막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투어 군산CC 오픈 1라운드에선 1언더파를 쳤다. 버디를 5개 잡았지만 보기 2개와 더블보기 1개가 나왔다. 허인회는 “나이 마흔이 되면 공을 멀리 칠 수 없을 것이다. 멀리 칠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다. 지금을 즐기겠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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