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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의 교육카페] 학원도 쉰 ‘메르스 휴업’에 엄마도 아이도 사교육 없이 행복했는데 …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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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때문에 서울·경기 등 일부 지역의 유치원, 초·중학교가 최근 1~2주가량 휴업했습니다. 전염병 감염을 예방하려고 불가피하게 학교를 가지 않은 것뿐 아니라 사교육까지 뚝 끊긴 ‘특이한’ 기간이었습니다. 학교가 자율휴업을 하더라도 엄마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냈고, 방학 동안 학원이 쉬는 때면 가족이 휴가라도 떠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메르스 휴업’ 동안에는 우리 아이만 아니라 옆집 아이까지 모두 학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외부 노출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이 종일 집에 머물면서 이번 휴업은 엄마와 아이들이 반강제적으로 ‘밀접 접촉’을 한 기회였습니다. 세끼 식사 메뉴를 짜느라 초반 골머리를 앓던 엄마들 사이에선 이 기간에 뜻밖의 경험을 했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아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던 자신의 모습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친절해졌다고 전한 엄마들은 학원 숙제가 사라지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입을 모읍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한 엄마는 “학원 숙제가 없어지니 아이가 너무 행복해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 숙제가 내 숙제가 됐던 것 같다”고 씁쓸해했습니다. 이 엄마는 아이가 주스를 쏟고 닦자마자 곧바로 엄마가 마시던 커피를 쏟았는데도 상냥하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엄마는 “평소 내 욕심에 아이를 너무 학원들로 끌고 다닌 것 같다. 아이들에게도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엄마와 뒹구는 시간을 줄 필요가 있겠다”고 말합니다.

 엄마들은 평소 주말이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짓눌려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귀띔합니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엄마는 “주말에도 학원 숙제를 하라고 재촉하기 바빴고 안 그러면 박물관 등 체험활동이 될 만한 곳으로 어떻게든 데려가려 했다. 메르스 때문에 아이들과 지내보니 앞으론 가끔 ‘자체 휴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자녀 사교육을 줄이면 좋겠다고 마음먹은 엄마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만 그렇게 하긴 불안하다는 이가 많습니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엄마는 “휴업 기간 동안 다 같이 사교육을 중단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여유로운 생활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고 되뇌었습니다.

 휴업이 끝나고 아파트 단지에는 다시 노란 학원 버스들이 돌고 있습니다. 아이들 역시 그렇게 많은 숙제가 필요한지 알 길이 없는 학원 숙제를 하느라 뛰어놀 시간을 잃었을 겁니다. 일상으로 돌아간 엄마들도 자녀를 태우고 다시 사교육 기관을 돌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아이들이 게으름을 피운다고, 엄마의 계획표에 맞춰 착착 해야 할 일을 끝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고 있진 않길 바랍니다. 감염 공포를 안긴 메르스의 불길은 언젠간 꺼질 겁니다. 하지만 불청객 메르스가 한국 엄마와 아이들에게 한 번쯤 쉬어 가라는 신호를 보냈을지도 모르니까요.

김성탁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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