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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북한의 두더지전, 고속도로전, 날다람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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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채인택
논설위원

고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군주 다리우스 1세(기원전 550~기원전 486)는 복수의 화신이다. 기원전 490년 고대 그리스를 침공했다가 마라톤 전투에서 치욕적으로 패배하자 여생을 보복만 생각했다. 노예들에게 식사 때마다 “그리스를 잊지 말라”고 외치게 했다. 끝내 설욕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자 야욕을 대물림했다. 아들 크세르크세스1세(기원전 519~기원전 465)는 부친의 유훈대로 국력을 총동원해 기원전 480년 그리스를 재차 침공했다. 그 결과 영화 ‘300’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겪으며 패퇴했다. 복수의 화신은 만년에 아들과 신하에 의해 살해됐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은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전 448년까지 무려 52년 동안 진행됐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끈질긴 침략 욕망이 놀랍다.

 그런데 북한의 김씨 왕조는 더하다. 6·25 전쟁 발발 65주년인 오늘까지 대한민국 정복 야욕이 그보다 더 긴 65년째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따져 보면 북한은 1953년 정전 이후 지금까지 62년 동안 한시도 재남침과 남한 전역 장악이란 욕심을 거둔 적이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남침 전술을 개발하고 훈련해 왔다. 핵과 미사일은 물론 다양한 재래식 전쟁 전술도 연마해 왔다.

 심지어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남침 야욕만은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 시기에 최전방의 통신선을 땅 속에 묻는 지중화 작업을 했다. 군사 정보 관계자는 “인민을 먹일 옥수수를 살 수 있는 자금을 남침 조짐이 한국 측에 발각되는 시간을 늘리는 데 투자했다”고 평가했다.

 이뿐만 아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남침 전술을 고안하고 이를 실제 연습과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이 탈북자 증언과 우리 측의 관측을 통해 파악되고 있다. 정보 관계자는 “특히 전쟁의 개념을 육·해·공을 넘어 지하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증언과 첩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이 살아 있을 때 군단별로 5개씩 모두 50개의 남침용 땅굴을 평양 근처에서 남한까지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이 대표적이다.

 통상 전쟁을 시작하려면 병력을 전방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런 땅굴이 있다면 병력을 그 반대로 출입구가 있는 후방으로 옮겨야 한다. 적의 동향을 관측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적이 후방으로 이동하면 남침 동향이 없다고 안심하게 되는데, 이를 노린 적이 기습 공격을 하면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상식을 넘어서는 북한식 두더지 전술이다.

 지난해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축선을 중심으로 한국의 발달한 고속도로망을 이용해 남진하는 ‘2015 통일대전’ 계획이 포착되기도 했다. 연료는 고속도로 주유소를, 식량은 고속도로 식당·휴게소를 각각 이용한다는 기상천외한 기습 전술이다. 상대의 장점(발달한 고속도로망과 서비스망)을 나의 이점(기동로와 군수물자 확보)으로 만드는 북한식 고속도로 전술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최근 알려진 북한식 날다람쥐 전술이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패러글라이딩이나 여기에 모터를 단 패러모터 등 초경량 항공기를 이용한 기습 침투다. 한·미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북한의 일부 부대가 이를 활용한 전술 훈련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를 실전에서 사용하면 방어가 쉽지 않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의 설명이다. 첫째, 기존 레이더로 잡아내기가 힘들다. AN-2기보다 더욱 어렵다. 둘째, 수도권 곳곳의 산에서 동일한 도구로 레저를 즐기는 일반인과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북한군이 새벽에 기지에서 출발하면 3시간~3시간30분 정도면 수도권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해 뜨기 전에 관측되지 않고 침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2008년 레바논군이 도입하기도 했다. ‘실현 가능한’ 전술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기상천외한 빨치산식 기습을 선호하는 북한군의 입맛에 딱 맞았을 수 있다.

 이처럼 잠들지 않는 북한의 남침 야욕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를 꺾을 안보 의지를 끊임없이 강화하는 일일 것이다. 메르스에 대응하듯 민·관·군이 손잡고 총력전을 벌이면 무슨 공격이든 막을 수 있다는 우리 공동체의 의지 말이다.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