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박근혜 정권의 아베 알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강렬했다. 하지만 씁쓸하다.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행사다. 두 나라 정상이 등장했다. 서울과 도쿄의 상대방 기념식에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모두 다짐했다. 화합과 미래다. 행사장은 활기찼다. 하지만 빈약했다. 그것은 싸늘한 양국 관계를 압축한다.

 그 장면은 기묘한 역설이다. 두 사람 가족사 때문이다. 양국 수교는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박정희의 말은 넘치는 고뇌다. “과거만을 따진다면 일본은 불구대천(不俱戴天)이다. 어제의 원수(怨讐)라도 우리의 오늘·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 비장함은 한·일 사이에 새 지평을 열었다. 그 속에 일본을 활용하려는 뜻이 담겼다. 용일(用日)전략이다. 딸의 시대에 그 지평은 헝클어졌다.

 역설은 짙어진다. 아베는 “(나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와 외종조부(外從祖父)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가 양국 국교 정상화에 깊이 관여했다”고 했다. 사토는 한·일 조약 체결 때 총리였다. 기시는 외교 교섭을 후원했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수교의 막후 연출자였다. 기시는 JP에게 “일본이 한국을 괴롭혔다. 사과드린다. 지난날은 안 좋았지만 이제 한·일이 손을 잡고 한국이 부흥하기를 바란다”고 했다(중앙일보 4월 27일자 김종필 증언록). 기시는 외손자 아베에게 정치적 감수성을 줬다. 기시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용의자다.

 박근혜와 아베 시대는 그 인연의 반대쪽으로 질주했다. 큰 책임은 아베에게 있다. 그의 역사 왜곡과 퇴행 때문이다. 그 바탕에 일본 침체의 위기감이 깔렸다. 잃어버린 20년 경제, 가라앉은 사회분위기, 거대 중국의 등장, 한국의 추격 상황이 이어졌다. 아베는 타개 해법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1868년)에서 찾았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 근대화의 동력이다.

 아베는 “고향 시모노세키( 야마구치 현)는 에도(江戶) 시대 조선통신사가 상륙한 곳”이라고 했다. 야마구치 현의 옛 이름은 조슈번(長州藩)이다. 조슈는 메이지 유신의 기지였다. 아베는 그 시대 두 인물에게 심취했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과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다. 아베는 2013년 8월 쇼인 신사(神社)를 찾았다. 지난해 7월 신사쿠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요즘 방영하는 NHK 대하사극은 ‘하나모유’(花燃ゆ, 꽃 타오르다)다. 그 무대가 메이지 유신의 조슈다. 쇼인과 신사쿠는 드라마 주요 인물이다. 쇼인은 유신의 이론을 생산했다. 신사쿠는 도쿠가와(德川) 막부 타도를 실천한다. 하나모유는 아베 역사관의 뿌리를 그린다. 우익 국수(國粹)주의는 아베 정치의 필연이다. 그 속에서 제국(帝國)일본의 침략 행적은 각색됐다. 그 잔인함은 생략된다.

 아베는 일본 사회를 바꿔놓았다. 그의 역사관은 다수 일본인의 심정을 표출한다. 일본 사회에도 아베 비판론이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와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가 앞장선다. 그들은 아베의 탈선을 개탄한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의 소수 비주류다.

 지금 한·일 관계는 바닥이다. 회복은 쉽지 않다. 양국 간 교류 인맥은 취약하다. 동북아 질서는 바뀌었다. 중국에 대한 한·일 시각은 다르다. 일본은 중국의 해군력 증강에 긴장한다. 베이징 정부는 19세기 말 청일전쟁 패배의 수모를 기억한다. 한·일 관계의 작동 방식은 예전과 다르다.

 아베 외교는 교묘하다. 박근혜의 원칙 외교는 그를 외면했다. 박 대통령은 중국에 밀착했다. 한·중 역사 동맹이 이뤄졌다. 친중·반일 이미지가 뚜렷해졌다. 미국은 한국을 의심 섞인 눈으로 지켜봤다. 워싱턴은 박근혜 정권이 중국에 기우는지를 따졌다. 중국의 전략은 선명하다. 한반도 전체를 중화권(中華圈)에 넣는 것이다. 한·미·일 삼각공조는 흔들렸다. 그런 혼선을 아베는 역이용했다. 그는 한국을 안다. 미국의 우선적 관심은 중국 견제다. 아베는 대(對)중국 포위망의 선봉을 자임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의기투합했다. 미·일의 신(新)밀월은 다져졌다.

 아베의 ‘8·15 종전 70주년 담화’가 예고돼 있다. 그의 사죄·반성 수위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거기에만 매달려선 곤란하다. 일본은 변했다. 아베가 사죄해도 일본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일본은 사실상 평화헌법 시대와 결별했다. 위안부 문제는 집요함을 요구한다. 과거사는 우선적인 쟁점이다. 하지만 안보·경제·문화의 실용적 이슈와 분리해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도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아베의 장기 집권이 예상된다. 그의 존재는 상수다. 한국 외교는 아베의 역사관에 익숙해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가 국익을 보장한다. 박정희 식 용일 전략으로 무장해야 한다. 외교에 완승은 없다. 외교는 타협의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다. 외교의 본질에 진정성은 없다. 외교는 국익만 있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