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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문의 스포츠 이야기

리퍼트 미국 대사를 야구장에서 만난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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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문
김종문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종문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콘텐트본부장

5월 27일 수요일 오후 6시 창원 마산야구장. 그가 탄 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가 전달됐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몇 주 전부터 줄다리기하던 그의 방문 일정이 하루 전 확정됐다. 우리 팀 경기를 대사가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방문 일정은 구장 도착 전까지 대외비로 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경찰 경호가 있다는 전달을 받았다. 대사 피습사건의 여파 때문이겠으나 대사 옆에 밀착 경호하는 요원들의 삼엄한 경계가 팬들이나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혹시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약속시간에 맞춰 그가 도착했다. 주요 인사의 일정은 고무줄 같다고 알고 있었는데 일단 합격이다. 리퍼트 대사는 모교인 스탠퍼드대 마크가 가슴에 선명하게 찍힌 붉은색 바람막이 점퍼, 갈색 반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경남 지역에서 열린 공식 행사에 참석했다고 들었는데 이동 중에 옷을 갈아입은 듯했다. 얼굴에 난 상처를 테이핑으로 덮었으나 저녁 무렵 웃자란 턱수염 때문인지 약간 도드라지게 보였다. 방문 현장의 성격과 의미에 맞춰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경호요원에 둘러싸여 번잡할 것이란 예상도 빗나갔다. 한국 경찰요원이 동선에 맞춰 조용히 배치됐을 뿐이었다. 경기 전 이태일 NC 구단 대표와의 자리에선 대사와 대표, 대사관과 구단의 수행직원만이 모여 앉았다. 여기서도 의례적인 인사말 대신 창단 3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오른 다이노스의 성장 비결, 창원이라는 지역의 야구 열기, 미국 메이저리그 시스템과 한국 프로야구의 차이 등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리퍼트 대사는 이날 만남 이후 김택진 NC 구단주도 서울에서 따로 만났다.

 그가 준비한 선물이 인상적이었다. 구단은 올 초 한국에서 태어난 대사의 아들 선물로 마스코트인 공룡 인형 등을 전달하자 그는 야구공을 꺼냈다. 공에는 미국 국기와 ‘미 대사 마크 리퍼트’라고 영어로 찍혀 있었다. 그는 또렷한 한국말로 “대사 일은 재미없는 미팅이 많아 힘들어요. 오늘 정말 즐거워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관중석으로 옮겨선 주위의 국내 야구팬과 스스럼없이 ‘치맥’을 하는 사진을 찍으며 경기를 끝까지 보고 갔다. 그와 대사관 직원들이 이용한 좌석은 모두 구입했다. 며칠 뒤 그가 서울 시내에서 NC 야구 모자를 쓴 사진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페이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야구사랑 이상으로 주재국에 스며들려는 외교관의 자세에 감탄했다. 또한 시간을 지키지 않고 사람과 민심과 동떨어진 의전과 접대에 길들여진 분들에게 그날의 풍경을 들려주고 싶다.

김종문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콘텐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