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메르스 환자·가족 낙인 찍는 건 야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주부 A씨는 지난달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 방문했다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 감염됐으나 최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에 자신의 얼굴 사진과 이름이 프린트된 게시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게시물엔 ‘이 사람이 메르스 환자’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메르스를 앓을 땐 너무 아파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는데 퇴원 후 받는 정신적 고통이 더욱 크다”고 털어놨다. 감염을 원한 것도 아닌데 왜 자신이 지명수배범처럼 다뤄져야 하는지 참담하기까지 했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22일 현재 172명이고, 한때 격리대상자만 7000명 가까이 늘어났다. 메르스 확산이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확진환자와 가족은 좀처럼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지금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공개하라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계속되고 있어 언제 아이들까지 노출될지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메르스 환자 B씨는 확진 뒤 사는 아파트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까지 공개됐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선 “우리 아파트에 메르스 환자가 살고 있다. 주민들은 각별히 주의해 달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B씨 집만 찍어 방역 소독을 하기도 했다.

 두 사례 모두 확진자는 병원에, 가족들은 집에 각각 격리돼 있었다. 상식을 바탕으로 판단해 봐도 지명수배범처럼 얼굴 사진을 게시판에 붙이고, 아파트 안내방송까지 하며, 콕 찍어 소독까지 할 일은 아니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란 곧 불확실하고 낯선 것”이라고 말했다. 확진자나 가족들에게 의심의 돌을 던지는 이들의 심리도 정체 모를 신종 감염병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원초적인 보호 본능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 혹자는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쌓인 불신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런 모든 이유와 변명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 확진환자와 가족들이 겪고 있는 수모는 합리화될 수 없다. 메르스란 낙인을 찍어 돌팔매질하는 야만적 행위다. 이일학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공동체 의식이 죽어버린 사회”라고 진단했다.

 대구 협성중 학생들이 메르스로 격리된 친구에게 보낸 손편지는 공동체 의식이 죽어버린 사회에 사는 비이성적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우리 반 애들은 메르스 얘기보다 네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있다”는 중3 아이들. 극도의 이기심을 공포로 위장한 채 돌팔매질을 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