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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격리돼 간호 13일째 … "바깥 그립다, 카페 갔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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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송희(24)씨는 새내기 간호사다. 지난 2월 중부대(충남 금산군)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전 을지대병원에 취업했다. 초짜 간호사 시절을 독하게 보내고 싶어 이 병원 중환자실 근무를 자원했다.

 “잘 웃어 선배들이 귀여워하는 막내예요. 마르고 호리호리한데 환자를 볼 때는 누구보다 똘똘하고 야무져요.” 홍민정(40) 수간호사의 말이다. 송씨는 중환자실에서 선배 간호사들의 활력소 역할을 해왔다.

  송씨가 정신 없는 중환자실 생활에 적응할 무렵 병원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6일 간암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60대 남성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다. 이 환자(90번 확진자)는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 환자(35)와 접촉했다. 9일부터 을지대병원 응급실·중환자실이 코호트 격리(환자와 의료진이 함께 병원에 격리되는 것)됐다. 그중 간호사가 38명이다. 송씨는 15층 병동에서 잠을 자고 4층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생활을 13일째 이어가고 있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통해 15층과 4층만 오갈 수 있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송씨와 동료 간호사의 24시간을 들여다봤다.

  06:00 근무는 3교대(낮·저녁·밤)다. 낮(오전 7시~오후 3시) 근무를 할 경우 송씨가 눈을 뜨는 시간은 오전 6시. 15층 병실 내의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격리 전에 속옷·화장품을 챙길 틈이 없었다. 속옷은 병원이 제공해준 것을 매일 빨아 입는다. 색조화장은 꿈도 못 꾼다. 보호복을 입고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땀 범벅이 되기 때문에 화장은 어차피 필요 없다. 긴 머리는 끈으로 단단히 묶는다. “보호복 모자를 쓰기 때문에 헤어스타일은 의미가 없어요.”

 07:00 ‘단장’을 마치면 4층 중환자실로 내려가 밤 근무자로부터 업무를 인계받는다. 하루 사이 메르스 환자가 전국에서 몇 명 늘었는지, 대책본부에서 어떤 지침이 내려왔는지 등을 전달받는다. 보호복을 챙겨 입고 중환자실로 들어가면 환자 인계가 진행된다.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심박동 수가 불안한 환자, 약물 종류와 용량을 바꾼 환자 등 변동사항을 챙긴다.

 08:30 보호복을 처음으로 벗는다. 아침식사 시간이다. 식사랄 게 따로 없다. 병원 식당에서 보내준 도시락이다. 1회용 용기에 담겨 있다. 탁자와 2층 침대가 갖춰진 20㎡ 정도의 휴게실에서 서너 명씩 돌아가면서 밥을 먹는다. 남은 음식은 그냥 버려서는 안 된다. 의료용 폐기물처럼 안전하게 처리한다. 외부 감염 우려 때문이다. 한가하게 커피나 차를 마실 여유가 없다.

 09:00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송씨가 있는 내과계 중환자실의 환자들은 대부분 당뇨·신장병 등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주기적으로 투석을 하거나 피·가래를 뽑아야 한다. 가래를 뺄 때 송씨는 환자의 등을 천천히 문지르고 툭툭 두들겨 준다. 스스로 못 움직이는 환자는 두 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준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시트·베갯잇을 교체하는 것은 대개 막내 간호사들의 몫이다. 식사 시간엔 누워 있는 환자들을 일으켜 밥을 떠먹인다.

 11:00 잠깐의 휴식시간이다. 그새 보호복 때문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대개 땀을 말리지만 어떨 때는 너무 많이 젖어서 간호복을 갈아입기도 한다. 2년차 남성 간호사 채광민(29)씨는 보호복을 벗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군대에서 비 맞으면서 행군한 다음 생활관에 들어갈 때 같아요. 덥고 힘들다가 갑자기 추워져요.” 송씨는 이때 휴게실에서 500mL짜리 이온음료를 두 병 마신다. 탁자에는 시민단체가 보내 준 수박·포도 등이 놓여 있다. 모두 말없이 과일을 먹는다. 그는 “힘들어서 수다 떨 기력이 없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수분을 보충한다”고 설명했다.

13:00 점심도 도시락이다. 외부에서 음식이 반입될 수 없다. 오후 1시 근무가 시작된다. 중환자실인 만큼 응급상황이 수시로 생긴다. 심정지가 오는 경우도 있다. 산소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 환자들의 얼굴과 팔은 금세 새파래진다. 심박동 수와 호흡 수를 나타내는 모니터에선 큰소리로 알람이 울린다. 막내 간호사들이 서둘러 의사를 부르면 경력이 많은 간호사들이 몰려와 조치를 취한다. 송씨는 “중환자실은 예기치 않은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워낙 흔치 않은 일 투성이라 코호트 격리가 됐을 때도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놀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15:00 데이 근무가 끝나면 송씨는 곧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한다. “안심시켜 드리려고요. 부모님은 제 건강부터 걱정해요.” 그리고 동기와 TV를 보거나 수다를 떤다. 주제는 여느 20대와 다름없다. 남자 친구 얘기, 새로 나온 드라마 얘기로 피로를 푼다. 책이나 신문을 읽기도 한다.

  송씨는 23일 0시 격리에서 해방된다. 벌써부터 ‘나가면 뭐 할지’ 설렌다. “밖에 못 나가고 창문도 못 여니 햇볕과 바람이 그립다”는 남성 간호사 채씨는 “친구들과 자전거 타고 놀러 갈 것”이라고 했다. 송씨가 계획한 첫날은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다. “삼시 세끼 도시락만 먹다 보니 다른 음식이 그리워요. 새로 나온 영화 ‘쥬라기 월드’를 보러 갈 거예요.” 그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 메르스 발병 없이 무사히 격리 상태에서 풀려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신진 기자 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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