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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웅 시리즈 <47> 리허쥔 중국 한넝그룹 회장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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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뉴시스]

중국의 최대 부자라고 하면 흔히 마윈(馬雲·51)을 떠올린다.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로 지난해 뉴욕증시에서 기업공개(IPO)를 하면서 엄청난 재산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고속 성장과 롤러코스터식 변화가 일상적인 중국에서 ‘부자 1위’는 미처 1년을 가지 못했다.

중국 부자 조사기관인 후룬(胡潤)연구소가 지난 2월 3일 발표한 ‘2015년 후룬 부호명단’에서 1위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마윈이 아니라 리허쥔(李河君·48) 한넝(漢能)그룹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리 회장은 1600억 위안(약 28조690억원)의 재산으로 중국 부자 1위에 올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해 1월보다 재산이 3배 가량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초고속 재산 증식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포브스의 세계 부자 순위에서도 108위에서 28위로 도약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그의 자산이 294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국 매체들은 그런 리 회장을 두고 ‘흑마(黑馬·다크호스)’라며 흥분했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리 회장은 중국에선 이미 스타 기업인이다. 그는 1994년 베이징(北京)에서 한넝그룹을 창업해 중국 최대의 청정 에너지 기업으로 키웠다. 현재 중국 내 10개 성(省)과 미국·영국·네덜란드 등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태양광·수력·풍력발전을 주력으로 한다. 그룹사 중 태양광 산업을 주도하는 한넝박막(博膜)발전은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다. 800억 위안 상당의 이 회사 주식이 리 회장 재산의 주종목이다. 상장되지 않은 수력발전과 태양에너지 분야의 여러 기업 지분도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6살 때부터 좌판 장사하는 아버지 도와

1967년생인 리 회장은 광동(廣東)성 허위안(河源) 출신이다. 주목할 점은 그가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커자(客家)족 출신이라는 점이다. 리 회장은 어려서부터 커자족 특유의 상인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자립심과 집념을 유난히 강조했다. 거리에 좌판을 깔고 노점을 하면서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낙천적인 성격에 집념이 있는 인물이었다.

리 회장은 6살 때인 1972년부터 좌판에서 장사하는 아버지를 도왔다. 경제관념이 철두철미했던 아버지는 일을 돕는 아들을 사업 파트너로 쳤다. 둘이 함께 물건을 팔았으니 그에 따른 수익금도 아들과 7대3으로 나눴을 정도로 비즈니스 철학이 확고했다. 장사에선 온정이 아니라 계산이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친 셈이다.

장사는 그의 숙명, 도전은 그의 운명이었다. 리 회장은 북방교통대학(현 베이징교통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장사에 나섰다. 당시는 중국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고속성장을 시작할 때였다.

1994년 베이징의 전자상가인 중관촌(中關村)에서 전자제품을 팔아 제법 돈을 벌었다. 이렇게 번 돈을 그는 광산에 전액 투자했다. 사업에 올인하는 성격 때문에 ‘도박사적 기질’을 가진 사업가로 통하지만 그는 ‘이왕이면 승부사로 불러주면 좋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가 광산에 올인한 이유는 중국이 경제성장을 계속하려면 원자재가 충분해야 한다고 판단해서다. 당시 중국 정부는 에너지 확보를 위해 민간기업의 발전소 투자를 장려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리 회장은 광산으로 번 돈을 모두 발전 사업에 투자했다.

리콴유(왼쪽)와 덩샤오핑.

리허쥔이 걸어온 길

1967년 중국 광동성 허위안시에서 태어남.
1994년 베이징(北京)에서 한넝그룹 창업.
2002년 전국공상(工商)연합회와 손잡고 전국적으로 광차이(光彩) 사업에 참여. 리허쥔은 재산 전부를 발전소 건설에 투자.
2011년 240만㎾급 지안차오발전소가 발전 시작
2015년 순자산 260억 달러 보유, 중국 1위, 세계 28위 부자로 등극(후룬 부호명단, 2월 기준)
현재 순자산 194억 달러(포브스, 2015년 5월 기준). 한넝박막발전 주식 80.79% 보유.

후룬 부호명단 중국 3대 거부 (지난 2월 기준)

1위 리허쥔(李河君·48) 한넝(漢能)그룹 회장(에너지 산업)
1600억 위안(약 28조690억원)

2위 완젠린(王健林·61) 완다(萬達)그룹 회장(부동산 개발)
1550억 위안(27조1839억원)

3위 마윈(馬雲·50) 알리바바 회장(전자상거래)
1500억 위안(26조3355억원)

‘중국의 유대인’이라는 커자족은

커자족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25~220) 말 중원에 살다가 전란을 피해 대거 남부와 서부로 이주한 한족의 후예다. 광둥·푸젠·장시·후난·쓰촨 등의 산간지대에 정착했다.

산간지대에 정착했기 때문에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해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류다. 학문과 교육에도 힘써 교직에도 많이 진출했다. 중국 각지는 물론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흩어져 살고 있다. 해외 진출이 활발해 전 세계 화교의 3분의 1이 커자족으로 알려졌다.

커자족 중에는 혁명이나 초기 중국 공산당에 참가한 사람이 많았다. 태평천국의 지도자인 홍수전이나, 중국 국민당의 쑨원, 공산당의 덩샤오핑, 대만의 리덩후이, 마잉주와 싱가포르의 리콴유 등이 커자족으로 분류된다.

광차이 사업에 참여, 발전소 건설에 전 재산 투자

도약의 기회는 2002년 찾아왔다. 중국 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가 전국공상(工商)연합회와 손잡고 전국적으로 광차이(光彩)사업을 실시하면서다. 광차이 사업은 빈민 농가 지원사업이다. 농업용수와 전기의 원활한 공급이 사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당시 중국은 경제 고성장기로 전력 생산량이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전국 19개 성에서 제한 송전을 실시했을 정도였다.

광차이 사업에는 수력 발전용 댐이 포함됐다. 그중 가장 큰 구상이 물살이 빠른 진사강(金沙江) 유역에 8개의 100만㎾급 수력발전소를 만들어 발전용량 2000만㎾ 이상의 발전벨트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2000만㎾라면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산샤댐의 발전용량을 넘어서는 규모다.

2002년 중앙의 승인을 받은 윈난성 정부는 민간 자본을 유치해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나섰다. 리허쥔은 모은 재산 전부를 이 건설사업에 올인했다. 그에게 리스크 관리나 투자 포트폴리오는 없었다. 리허쥔이 이끄는 당시 화루이(華叡)그룹도 발전소 건설을 맡았다. 750억 위안을 들이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대규모 투자는 정부 투자를 받아야 하는 중국 상황에서 민간기업이 공공적 성격의 댐 공사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건설자금을 융통해야 했다. 농업은행에서 100억 위안을 대출받아 급한 불은 껐다.

당국 및 당사자와 협의해 3개 군에 걸쳐 수천 호의 주민도 이주시켜야 했다. 게다가 회귀 어류의 산란지인 진사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환경단체도 설득해야 했다. 화루이(華叡)그룹은 승인에 앞서 공사를 시작했다. 배짱에 자신감을 더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국영기업인 산샤수력발전유한공사에서 건설 중인 발전소를 팔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수락하면 300억 위안은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리 회장은 돈보다 민영기업이 계속 발전소에 투자하는 선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거절했다. 리 회장은 "기업은 90%의 가능성에 투자하면 10%의 성과를 얻지만, 10%에 확률에 도전하면 90%의 성과를 올린다는 ‘19법칙’이 중요하다”며 "나는 쉬운 90%보다 어려운 10%에 속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 판단은 그를 중국 제1의 부자 자리로 이끌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3월 27일 그가 건설한 240만㎾급 지안차오발전소가 발전을 시작했다. 개혁·개방 이전인 1971년 5월 착공, 1988년 12월 완공된 거저우(葛洲)댐은 5만5000명의 군인이 동원돼 17년 동안 공사를 했는데, 민간이 댐을 건설하니 더욱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완성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 서부에서 생산한 전기를 산업이 발달한 동부 해안으로 보내는 서기동수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민간 첫 사례가 되기도 했다. 거대한 이윤과 앞으로의 사업이 보장된 순간이었다. 리 회장은 이제 태양광 등 첨단 청정에너지로 사업의 무게 중심을 서서히 옮기고 있다.

리 회장은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 즉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를 전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직 CCTV앵커가 제작한 스모그 관련 다큐멘터리가 양회를 앞두고 공개되면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전국 지하수의 60%와 경작지의 19.4%가 오염되고 대기오염이 심각한 중국의 환경 상황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 전인대와 정협의 화두 역시 환경이었다. 친환경 에너지 그룹을 이끄는 리 회장이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는 바로 주식시장에 반영됐다. 그가 이끄는 중국 태양광업체 한넝박막발전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창립자인 리 회장이 중국 최대 부호로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한넝의 주가는 이날 하루 14%가 올랐으며 한때 40% 이상 치솟기도 했다.

이 회사의 주가는 3일 만에 75% 급등했고, 작년 대비로는 550%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홍콩증시의 항셍지수가 7.2% 오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게다가 환경산업 중심 기업이라 중국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록 더욱 사업하기가 용이해진다

. 중국에서 거대 태양광 산업이 성공하면 그 자체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중국의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면 그는 태양광 산업을 통해 전 세계에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리허쥔 회장의 이런 드라마틱한 성공에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달 20일 한넝박막발전 주가가 반토막 나며 24분 만에 시가총액 약 190억 달러(21조1000억원)이 증발했다. 리 회장 지분도 약 16조 가량이 사라졌다.

게다가 이틀 전 리 회장이 이 회사 주식 약 8억 주를 공매도 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매도란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파는 걸 말한다. 리 회장은 최근 에이즈 퇴치와 사막화 방지를 위해 10억위안(약 1784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크호스의 명성을 다시 찾고 세계의 에너지맨으로 성공할지, 비윤리적인 기업인으로 전락할지, 리 회장은 그 기로에 서 있다.

정지원 자유기고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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