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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대책, 부양보다 신뢰 회복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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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 특파원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7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금리 인상을 결정할 때 시장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불러올 국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Fed의 인식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세계 각국 금융시장은 몸살을 앓게 돼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정은 미국 중앙은행의 고려 대상 우선순위가 아니란 사실이 한층 분명해졌다. 각국은 알아서 안전벨트를 더 단단히 매야 할 상황이 됐다.

 Fed는 올 성장 전망치를 1.8~2.0%로 내렸다. 지난해 12월 전망(2.6~3.0%)과 비교하면 최대 1%포인트를 낮춘 것이다. 혹한과 달러 강세 등 몇 가지 돌발 변수가 생기긴 했다. 그걸 감안해도 경기 회복세는 예상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도 Fed는 연내 금리 인상이라는 경제 항로를 바꾸지 않을 태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까지 금리 인상을 내년으로 늦추라고 압박했지만, 그런 ‘내정 간섭’을 배격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Fed는 요지부동이다.

 그 사이 한국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치로 내렸다. 추가경정예산도 편성할 기세다. 메르스 사태로 무너진 경제 심리를 일으켜 세우고 경기 활력을 보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경제 운용 방식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양국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렇지만 짚을 건 짚어야 한다. 경제 심리를 집어삼킨 것은 메르스 사태 속에 생겨난 집단적 두려움이다. 무능하고 부적절한 조치들로 초동 대응이 실패했다. 그러자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이는 사태 확산으로 이어졌다. 흔히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돈의 효능엔 한계가 있다. 두려움과 불신으로 무너진 경제 심리를 부양책만으로 되살릴 수 있을까. 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는 대책은 보다 획기적으로 내놓지 못할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부양책도 약발이 제대로 먹히는 법이다.

 금리 정책과 재정 정책은 공짜가 아니다. 편익이 있는 반면 치러야 할 비용도 있다. 금리 인하의 비용은 가계 빚 증가, 추경의 대가는 재정적자 확대가 될 것이다. 모두 국민의 부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2008년 미국이 진원지였다. 그로부터 7년, 미국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했다. 가계는 집을 팔고 허리띠를 졸라매 빚을 줄였다. 기업과 정부는 군살을 제거했다. 그 기간 한국 경제는 개인도, 나라도, 빚이 늘어났다.

 메르스는 병원과 학교, 공공기관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비시켰다. 그럴 때 서민들의 삶은 더 피폐해진다. 동네 가게엔 손님이 끊기고, 청춘들의 아르바이트 자리가 사라졌다. 금리 인상기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민들 중에선 늘어난 이자 청구에 나가떨어지는 이들이 속출할 것이다.

 메르스는 결국 지나갈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매뉴얼은 부족했고, 그나마 마련돼 있던 매뉴얼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금리 정책도, 재정 정책도 그럴까 봐 걱정이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