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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호 복원, 학도군 기념탑 설치 … ‘장사상륙작전 기념공원’ 조성 착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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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장사상륙작전에 투입됐던 2000t급 문산호가 복원돼 경북 영덕군 해안에 정박해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1950년 당시 문산호 모습.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12일 7번 국도에서 동해 연안에 정박한 거대한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해수욕장이 시작되는 곳이다.

 진입로로 들어서니 감리단 등 공사용 가건물이 서 있다. 영덕군이 국비 등 294억원을 들여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현장이다. 공정률은 현재 81%. 오는 10월 준공 예정이다. 주변을 압도하는 2000t급 배는 이 사업의 상징인 6·25전쟁 때 투입된 이른바 ‘LST문산호’의 실물 모형이다.

 조남월 영덕부군수가 현장을 안내했다. 해수욕장 뒤쪽에 자리잡은 전승기념공원은 해송이 숲을 이뤘다. 그 가운데 당시 참전 학도병 등 772명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탑이 세워졌다. 6·25전쟁 당시 장사상륙작전의 아픈 역사는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동해에서 펼쳐진 장사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4일 오전 4시30분 개시됐다. 서해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이끈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 하루 전이다. 북한군에 밀리던 유엔군은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북한 주력부대의 시선을 동해안으로 돌리기 위해 학도병 등 급조한 유격대로 상륙작전에 돌입했다. 육본 작전 명령 제174호다.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에 학도병 등 772명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참전 학도병은 대부분 대구·밀양에서 모집된 중고생이었다. 두세 차례 총을 쏴본 게 훈련의 전부였다. 문산호는 장사 해안으로 들어서면서 태풍을 만나 좌초된다. 이때부터 목숨을 건 싸움이 시작됐다. 북한군은 문산호를 향해 기관포를 쐈다. 상륙에 성공한 건 이날 오후 2시50분. 이들은 북한군 주력인 제5사단과 제2군단의 후방로를 차단하고 이들을 동해안으로 끌어내 6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일 LST조치원호로 철수 명령이 하달된다. 장사상륙작전은 미처 승선하지 못한 39명 등 전사자만 139명을 남겼다. 인천상륙작전을 앞둔 양동(陽動) 작전이었다.

 당시 대구 대건중 5학년으로 참전한 장사상륙유격동지회 류병추(82) 회장은 “적의 포탄이 날아드는 가운데 명령이 떨어져 1중대 대원 상당수가 바다로 뛰어내리다 수장됐고 이후 밧줄을 타고 겨우 상륙했다”며 “공원 조성은 당시 현장에서 스러진 전우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고 감격해 했다. 생존 대원은 현재 34명이다.

 기념공원에는 맥아더 사령관이 이들을 기린 친필 조형물이 서 있다. 또 위령탑이 있고 뒤에는 전사자의 유골을 묻은 합동묘소도 마련돼 있다.

 이날 짙은 해무가 밀려와 배를 가렸다. 내부 공사가 한창인 문산호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철골 공사 중이다. 내부는 5층이다. 1∼2층은 전시관·영상관이 들어서고 축구장 크기만한 3층은 함상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바다를 내려다 보니 아찔하다. 당시 상륙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바다는 핏빛 대신 이제 에메랄드 빛이다.

 4∼5층은 함정과 군대리아PX, 군함 만들기 등 체험 공간이다. 영덕군은 주변에 수중전망대도 만들고 영화 제작도 검토하고 있다. 문산호는 65년 만에 복원돼 지난달 진수식을 했다. 조 부군수는 “이들의 희생이 더는 잊혀지지 않길 기대한다”며 “동해안의 새로운 안보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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