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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 정책, 국격도 생각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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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독일 본에서 1~11일 190여 개국 4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유엔 기후변화 회의. [강찬수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지난 1~11일 독일 본 국제회의장에서는 190여 개국 대표단 약 4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엔 기후변화협약 부속기구 회의가 열렸다.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릴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2020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방안 논의가 한창이었다. 파리 총회를 앞두고 각국은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INDC)을 속속 제출하고 있고, 한국 정부가 11일 발표한 방안도 회의 마지막 날인 당일 회의장에 전해졌다.

 한국은 2009년 총회에서 2020년 배출 전망치(BAU)에서 30%를 줄이겠다는 야심 찬 감축 목표를 내놓아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내놓은 네 가지 시나리오는 모두 2020년 기준으로 당초 목표보다 덜 줄이는 안이었다.

 깜짝 놀란 유럽연합(EU) 측은 현지시간으로 11일 아침부터 한국대표단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거냐, 국민투표로 결정할 것이냐”고 물어왔다. 호주대표단은 회의장 로비에서 한국의 최재철 기후변화대사를 붙들고 질문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회의기간 내내 한국을 칭찬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한국의 감축안에 대한 선진국의 관심은 예전부터 컸다. 한국은 녹색성장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협상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다리 역할을 자임했다. 그런 한국이 솔선수범해야 다른 개도국도 온실가스를 줄이고, 그래야 선진국·개도국 모두 참여하는 ‘신기후체제’가 완성된다는 게 선진국의 복안이었다. 경제 규모 14위에 온실가스 배출 7위인 한국의 감축 노력이 후퇴하면 전체 구도가 흔들릴 수도 있다. 이달 초 감축안이 후퇴할 것이란 국내 언론의 예측 보도에 영국 등이 우려를 나타내며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대표단 일각에서도 “산업 분야의 경쟁력만 국익인가, 국가의 품격까지 포함하는 전체 국익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반응을 보였다. 가난한 개도국과 다를 바 없이 앞으로도 배출량을 늘리겠다는 시나리오를 ‘감축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 게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내비친 것이었다.

 외신에는 신기후체제가 깨진다면 감축에 적극적인 선진국들끼리 ‘기후클럽’을 만들고 감축에 소극적인 나라의 상품에 대해 국경세(border tax)를 물릴 것이란 보도가 등장했다. 선진국의 높아진 환경기준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은 등한시하면서 녹색기후기금 같은 혜택만 추구하는 비양심적 국가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자칫 국익도 잃고 국격(國格)마저 깎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강찬수 기자<독일 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