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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1000호 민족기록화 그리자” 화단에 제안 … 일본서 3t 트럭 분량 미술재료 들여와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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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72년 10월 김종필 국무총리(왼쪽)가 윤주영 문화공보부 장관과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22회 국전(國展) 전시장을 찾았다. [중앙포토]

김종필(JP) 전 총리는 한국 음악뿐 아니라 미술계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1967년 4월 민주공화당 의장이던 JP는 생소한 장르인 민족기록화를 그려보자고 화단에 제안했다. 그때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1000호(5.3×2.9m), 500호(3.3×2.5m) 크기의 초대형 캔버스에 한민족 주요 역사의 장면을 그려 넣자는 기획이었다. 작품의 스케일과 참여 작가의 규모가 당대 최초·최대였다. 박광진 서울교대 교수 등 중진·원로작가 55명이 제작에 참여했다.

 그때 한국의 화단은 그런 대형 작품을 제작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유화물감도 캔버스를 마련하는 것도 어려웠다.

국내에 유화물감을 생산하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예술작품용으로 쓰기엔 품질이 떨어졌다. 화가들은 대부분 일본이나 유럽의 유화물감을 조금씩 구해 쓰던 시절이었다. 박광진(80·예술원 회원) 교수는 “JP가 일본에 사람을 보내 3t 트럭 분량의 미술재료를 사서 배로 싣고 와 화단에 무료로 풀어놨다. 당시 우리 화가들로는 평생 처음 보는 엄청난 것들이었다”고 회상했다.

 67년 7월 경복궁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엔 단군 이후 민족의 얼을 부각시킨 역사적 장면을 담은 55점의 그림이 걸렸다. 미술관 벽에 빈틈없이 그림을 걸어도 200m 안팎의 전시공간이 필요했다. 박 교수는 “그때 그 작품들이 모두 국가적인 기록물들인데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덕수궁 내 세종대왕 동상과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도 JP가 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총재를 맡아 주도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중앙현관 입구 좌우에 높이 2.4m 세종대왕과 충무공의 대리석 입상(立像)이 전시돼 있다. 이 조형물도 1973년 JP가 그리스산(産) 대리석을 구해와 김경승(1915~92) 이화여대 교수에게 조각해 달라고 한 것이다. 이 조각들은 원래 광화문 중앙청의 중앙홀에 있었는데, 김영삼 정부 때인 96년 중앙청이 철거되면서 국회의사당으로 옮겨졌다.

JP는 화가들의 민생고를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 국전에 당선된 그림조차 팔리지 않던 시절이었다. JP는 총리 때인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명의로 모든 국영기업체에 문서를 보내 국전 작품을 하나씩 구입할 것을 지시했다. 주로 시중은행들이 단골이 됐다. 이때부터 미술작품들이 일반에 팔리기 시작했다.

 JP는 72년 문화예술진흥법을 제정토록 했다.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발족했고, 문화예술진흥원이 설립됐다.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10억원대의 문화예술기금도 마련됐다. 한국미술협회는 99년 JP를 ‘제1회 자랑스러운 미술인’으로 선정했다.

정리=전영기·최준호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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