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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국민 마음을 못 얻는 보수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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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편집국장 대리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 있던 지난해 5월 1일. TV 채널을 돌리다가 믿기지 않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됐다. TV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진도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을 만나는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정 총리가 단상에 올라가 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설명했다. 이때 한 실종자 가족이 정 총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족) “현장에 다녀왔나.”

 (정 총리) “다녀오지 못했다.”

 (가족) “오늘 총리께서 수습된 아이들의 시신이 어떤 모습인지 꼭 봐야 한다.”

 (정 총리) “일정 때문에 오늘 오후 (서울에) 올라가야 해서….”

 (가족) “아이들 시신이 심하게 부패했다.”

 (정 총리) “최대한 노력하겠다. 그런데 일정이 있어서…. (가족들이 분노하자 그제야) 그렇게 하겠다.”

 귀를 의심했다. 일정이 있어서 올라가야 한다니…. 진도체육관은 순식간에 실종자 가족의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TV를 보면서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중요한 일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정 총리의 발언은 적절치 않았다. 당연히 이런 말을 했어야 했다. “당장 현장에 가자. 시신을 모두 수습할 때까지 함께 지키겠다.” 그러고는 체육관 바닥으로 내려가 실종자 가족을 부둥켜안고 한바탕 울어야 했다. 바쁜 일을 마무리하러 며칠 후 슬그머니 서울에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장면은 정부의 의식과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는 데 급급한 부끄러운 민낯을. 이런 실망스러운 장면이 켜켜이 쌓이면서 실종자 가족과 정부 사이에 마음의 벽이 생겼다. 그 뒤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유족을 위로했다. 정 총리도 진도에 다시 내려가 실종자 가족을 끌어안았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상처 받은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었다. 정부가 초기에 현장에서 몸을 던지지 않아 생긴 일이다. 평시에 재래시장을 백날 찾아가 장사 걱정하고, 함께 사진을 찍어봐야 국민은 감동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역대 보수정권은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했다. 차갑고 권위적이라는 느낌을 줬다. 군사정권은 물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나를 따르라’ 식의 통치가 통했다.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국민을 가르치려 해서도 안 된다. 시대가 바뀐 걸 모르고, 안이하게 대응하다 혼쭐난 게 2008년 봄 광우병 사태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 촛불시위가 벌어졌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설득하지 않았다. 갈수록 사태가 심각해지자 놀라서 숨었다. 계란 몇 개 맞거나 멱살 잡힐 각오로 군중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 정부 안에 없었다.

 그해 7월 국회에서 야당 의원이 한승수 총리에게 “촛불시위 현장에 왜 안 나갔나. 봉변이 두려웠나”고 물었다. 한 총리는 “꼭 시위 현장에 나가지 않더라도 시민들의 소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 정확히 듣고 있다”고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사태로 집권 반년 만에 허망하게 추진 동력을 잃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국민이 알아주지 않았다. 정부가 국민 편에 서서 아픔을 같이한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1년여 만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이번에도 초동 대응 실패로 정부가 뭇매를 맞았다. 정부는 처음에 환자가 발생한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장단점을 검토해 결정했겠지만, 국민은 ‘정부가 병원 봐주려고 그러는구나’라고 의심했다. 이내 세월호를 떠올리며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따졌다. 불신이 깔려 있다. 불신은 과도한 공포를 낳는다. 광우병·세월호 등 큰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보수정권의 업보다.

 박근혜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대역전 하려면 곰곰이 생각해볼 게 있다. 냉철한 이성보다 따뜻한 감성이 환영받는 세상이 됐다. 만반의 준비를 한 화려한 이벤트보다 돌발 상황에서 손 한번 잡아주는 게 감동적인 세상이 됐다. 단상에서 지시하는 수직적 리더십보다 광장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수평적 리더십이 존중받는 세상이 됐다.

고현곤 편집국장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