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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61> 서래마을 ‘잇탤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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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Pasta)는 쉽고도 어려운 요리다. 국수 같은 것을 삶아서 소스와 다른 음식을 얹어 버무려 먹는 간단한 요리인데 종류는 왜 그렇게 많고 이름은 그렇게 복잡한지. 이탈리아 음식이라면 뭐든 다 아는 것 같이 자신있는 태도로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주문을 했었지만, 사실은 아는 것 한두 가지를 간신히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몰래) 그것을 고른 적도 많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대충 찍었다가 입맛에 안 맞는 것이 나오는 바람에 말도 못하고 억지로 먹어야 했던 비극도 있었다.

▶잇탤리(EATaly) : 먹다(Eat)와 이태리(Italy)를 합성해서 만든 이름이다.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110-1. 전화 02-595-8181. 일요일도 영업한다. 예약을 미리 하는 편이 좋다. 만조 딸리아뗄레 2만7000원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인 댄 주래프스키(Dan Jurafsky)가 쓴 『음식의 언어(The Language of Food)』라는 책에 보면 미국에서도 100여 년 전부터 고급 레스토랑에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 단어가 섞인 음식 메뉴가 유행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자신들의 음식이 품위 있고 비싸다는 암시를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요즘엔 스페인어, 아랍어, 그리스어, 일본어 등까지 동원되면서 난이도가 더 높아졌다고 한다. 근래에 한식이 인기 있다고 하니 아마 한국어도 조만간 한자리 할 지도 모르겠다.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만 골탕 먹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좀 위안이 되기는 한다.

파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반죽’이라는 뜻이다. 밀가루 반죽을 이용해 만든 모든 요리를 얘기한다. 국수, 수제비, 만두 같은 형태에 어떤 소스를 사용하는지, 어떤 음식을 함께 넣어 먹는지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니, 그야말로 종류가 무궁무진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탈리아 음식이 널리 뿌리를 내리면서 역시 다양한 파스타 요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식으로 발전시킨 파스타를 여기저기서 만나는 재미가 매번 쏠쏠하다.

최근에 인상적인 파스타를 만난 곳은 서래마을에 있는 ‘잇탤리(EATaly)’라는 곳이다. 그 마을에 살면서 동네 맛집을 모두 섭렵한 미식가에게 소개를 받았다. 두말없이 엄지를 척 치켜드는 바람에 바로 가봤다가 팬이 됐다. 뒷골목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으면서 작지만 잘 가꿔진 예쁜 정원이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이 마치 이탈리아 어느 마을의 파스타집 같은 느낌이 든다. 15년 동안 직접 요리를 하면서 이탈리아 식당을 해온 이만규(45)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정식 요리사 출신은 아니다. 레스토랑 운영을 먼저 시작하고 나서 요리를 하나씩 배웠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지금은 본인의 스타일 대로 직접 메뉴를 짜고 음식을 지휘해가며 만드는 수준이 됐다.

이곳에서는 음식 메뉴가 많지 않다. 정식 요리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메뉴를 늘리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음식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가짓수는 적지만 만들어내는 음식 하나 하나에서 깊이가 느껴지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파스타는 ‘만조 딸리아뗄레(Manzo Tagliatelle)’다. ‘그릴에 구운 안심과 매콤한 볼로네즈 소스로 맛을 낸 파스타’라고 한글로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이곳에서 개발한 것이다. ‘딸리아뗄레’는 넓적한 칼국수 같은 파스타고, ‘볼로네즈(Bolognese) 소스’는 쇠고기로 만든 미트(Meat) 소스를 말한다. 보통은 여러 잡고기를 섞어 다진 것을 구입해 사용하는 곳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한우 스테이크를 굽고 남은 자투리 고기를 이용해 직접 만들어 쓴다. 토마토 소스도 캔에 들어 있는 공산품을 그냥 사용하지 않고 생 토마토를 함께 넣어서 바로 끓여 만든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재료로 만든 파스타는 맛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미트 소스는 자칫 느끼할 수도 있는데 신선한 토마토 소스와 매콤한 이탈리아 고추가 그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균형 잡힌 훌륭한 맛으로 완성시켰다. 함께 출연한 일등급 한우 스테이크는 신선하고 매콤한 소스와 잘 어울리면서 파스타와 함께 푸짐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혹시 뭐가 뭔지 몰라서 파스타를 먹을 때면 만만한 토마토 스파게티만 주구장창 시켰다면(내가 그랬다) 우선 파스타 면 종류를 몇 가지 외워 보자. 우리가 주로 먹는 것은 10여 가지 정도 밖에 안 된다. 10분만 투자하면 굴욕 탈출이다. 소스 같은 건 몰라도 된다. 워낙 파스타 종류가 많기 때문에 물어보면 그만이다. 그리고 자신 있게 파스타의 넓은 세계를 탐험해 보자. 링귀니, 딸리아뗄레, 라자냐, 뇨끼, 라비올리, 페투치네, 펜네 등이 천의 얼굴로 치장하고 기다리고 있다.

●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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