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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크고 더 사나워진 하이브리드 공룡의 습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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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호 30면

공룡들이 돌아왔다. 1993년 개장도 못 해 보고 문을 닫아야 했던 ‘쥬라기 공원’은 22년 만에 ‘쥬라기 월드’로 재개장했다. 공원(park)에서 세계(world)로 확장된 외연만큼 더 크고, 더 무섭고, 더 사나운 종들이 대거 등장한다. 덕분에 하루 입장객만 2만 명이 넘는 지상 최대 테마파크로 자리 잡았지만 경영진은 더 ‘쎈’ 공룡을 원한다. “20년 전엔 공룡을 신기해했지만 이제는 시시해 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한시라도 빨리 ‘신상’ 공룡을 내놓아야 했다.

영화 ‘쥬라기 월드’

이 과업을 이어받은 것은 1편에서 공룡을 부활시킨 존 해몬드 박사의 손녀인 클레어(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와 억만장자 사이먼(이르판 칸)이다. 이들은 ‘삼성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유전자를 조작해 하이브리드 공룡을 만든다(다들 삼성 휴대전화를 들고다닌다). 이곳에서 태어난 공룡들은 정교하면서도 현란한 움직임을 자랑한다.

22년 동안 쥬라기 공원을 지킨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동물 사냥 쇼를 선보이고, 몸 크기만 20m에 달하는 수중 공룡 모사사우루스는 공중에 매달린 백상아리를 한 입에 먹어치운다. 타조처럼 광야를 질주하는 갈리미무스나 하늘을 뒤덮는 익룡 프테라노돈 등 그야말로 육해공이 공룡 천지다. 투명한 원형으로 만들어진 놀이기구 자이로스피어를 타고 평원을 누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과 공룡의 공존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인다.

하지만 아직 실험 단계인 인도미누스 렉스가 우리를 탈출하면서 만들어진 평화는 순식간에 산산조각난다. 지능이 뛰어난 이 공룡은 온 벽에 발톱 자국을 내 이미 탈출한 것처럼 사람을 유인하는가 하면 카멜레온 마냥 주변 환경에 동화되는 위장술을 쓰기도 한다. 생각하는 공룡을 넘어 스스로 진화하는 공룡인 셈이다. 얼굴 근육을 움직여 표정 연기까지 가능해진 공룡은 때론 순진하게, 때론 포악하게 변신하며 사람들의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

초유의 사태를 맞은 주인공들은 도망가는 대신 맞서 싸우는 길을 택한다. 전직 군인 출신의 공룡 조련사 오웬(크리스 프랫)은 그간 쌓아온 랩터와의 교감을 통해 승부수를 던진다. 적에서 동지로 변신한 랩터는 신뢰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분 단위로 컴퓨터와 전광판을 들여다보며 수치에 의존하던 클레어는 이성 대신 감성을 따라 행동하며 난관을 돌파한다. 반면 조카 자크(닉 로빈슨)와 그레이(타이 심킨스)의 무기는 콜린 트레보로우 감독이 영화 곳곳에 심어둔 1편에 대한 오마주다. 할아버지로부터 습득한 지식은 고비 때마다 그들을 돕는다. 공룡의 아버지 헨리(B.D.웡) 박사의 재등장이나 빈티지가 된 쥬라기 공원 티셔츠 등은 1편을 추억하는 이들을 위한 보너스이자 기존 관객과 신규 관객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영화는 과학의 진보와 오남용에 대한 메시지를 무겁게 던지는 대신 화려한 액션과 달달한 러브 라인 사이에 넌지시 끼워넣는 방법을 택한다. 거기에 군대와 민간의 권력 다툼이나 이혼을 앞둔 불안정한 가족사까지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스토리는 중간중간 구심점을 잃고 흩어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괴물의 정의는 무엇인가. 유전자 조작은 과거와 똑같은 일의 발전된 형태일 뿐인가. 조종과 관계 맺음 중 어느 것이 옳은가 등등.

어쩌면 우리에게도 공룡처럼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것을 기억하는 각인 효과가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그 어떤 속편이 나와도 본편만큼 후한 평가를 쉬이 내어주진 않으니 말이다. 제작 총괄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쥬라기 월드는 쥬라기 공원의 꿈을 이룬 공간”이라고 했다. 2012년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으로 선댄스영화제에서 데뷔한 신예 감독에게 메가폰을 맡긴 오리지널 감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단언컨대 3D로 출몰하는 공룡들을 만나는 순간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있을 것이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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