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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옆 지키는 情, 환자에겐 毒 … 보조침대 빼야 모두 안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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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호 04면

강릉의료원 의료진이 12일 밤 강원도에서 네 번째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50대 남성의 상태가 악화되자 서울 보라매병원 음압병동으로 이송하기 위해 구급차로 환자를 옮기고 있다. 이 남성은 배우자의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달 27, 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었다. [뉴시스]

지난 1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박모(46)씨는 휠체어에 탄 70대 아버지를 밀며 병원 인근을 산책 중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무릎을 다쳐 수술을 받은 후 일주일째 입원 중이다. 낮에는 박씨의 부인이 간병하고 퇴근 후에는 박씨가 병원으로 와서 임무를 교대한다. 병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잔다. 박씨는 “거동이 불편하셔서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며 “부모가 편찮으시니 자식 된 도리로 간병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메르스 쇼크] 병을 부르는 한국 병실 문화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이모(62·여)씨는 하루 24시간을 환자와 함께 생활한다. 환자 목욕부터 옷 갈아입히기, 식사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하루 일당으로 그가 받는 돈은 6만~7만원. 한 달을 꼬박 일해야 150만원 남짓 손에 쥔다. 이씨는 “보호자들이 직접 있고 싶어도 직장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으면 우리 같은 간병인을 찾는다”며 “최근 메르스에 걸린 간병인이 나오면서 무서워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병실 문화는 ‘정(情)’으로 대변된다. 가족이 입원하면 대부분 환자의 가족이 병실에서 함께 숙식하며 간병한다. 직접 간병을 할 수 없으면 간병인을 고용해 대신한다. 가족이 아닌 친구나 직장 동료가 입원해도 한번쯤은 얼굴을 비치는 게 도리라 여긴다. 이러다 보니 병실에는 보호자와 간병인이 상주하고 수시로 방문객이 드나든다. 이런 문화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독(毒)’이 된다. 환자와 의료진 외에 병실에 사람이 많아질수록 감염 관리는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에도 병실 문화가 영향을 끼쳤다. 확진환자 138명 대부분이 병원에 방문했거나 잠시라도 체류했던 경우인데 이 중 20%가 환자나 의료진이 아니었다. 환자의 보호자·문병객(22명)이거나 간병인(7명)이었다. 14일 한국-세계보건기구(WHO) 메르스 합동평가단도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후쿠다 게이지 WHO 사무차장은 13일 “치료를 받으려고 여러 의료시설을 돌아다니는 의료쇼핑 관행과 여러 친구나 가족들이 환자와 병원에 동행하거나 문병하는 문화 탓에 2차 감염이 더 확산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호자 80%가 병실서 환자와 숙식
한국의 독특한 병실 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환자 침대 옆에 놓인 보조침대다. 이곳은 보호자나 간병인들이 식사를 하고 잠을 잔다. 고려대 의대 안형식·김현정 교수팀의 ‘포괄간호서비스의 시범사업 기술 지원 및 모니터링’ 보고서(발간 예정)에 따르면 보호자의 85.9%, 간병인의 92.8%가 보조 침상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병실 내에서 환자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답변도 각각 75.6%, 93.4%(병원 밥이나 도시락)였다. 보호자나 간병인 10명 중 7~9명이 환자와 숙식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수시로 드나드는 문병객과 자주 바뀌는 간병인도 감염 관리를 어렵게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11일 브리핑)은 “‘수퍼 전파자’인 14번 환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있을 기간에 방문한 사람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단을 갖고 있지 않다”며 “콜센터에서 질문을 통해 파악 중이며 자발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간병인은 환자 개인이 고용하는 것이라 병원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며 “어떤 사람들이 간병인으로 드나드는지 면밀히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이 감염 관리에 취약하다는 점도 연구에서 확인됐다. 안형식 교수 연구팀은 2013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보호자가 상주하는 병동(28만1928명)과 상주를 금하고 있는 병동(7만1011명)을 비교했다. 그 결과 보호자가 상주하는 병동이 그렇지 않은 병동에 비해 요로감염, 병원 내 감염, 폐렴 발생이 2.87~6.75배 높았다. 환자를 위해 간병을 하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오히려 환자의 감염 위험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간병인과 보호자가 감염 위험에도 노출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보호자 없는 병동’ 아직 33곳뿐
결국 감염 관리를 하기 위한 최우선 순위는 환자와 의료진 외에 병실 상주 인력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정 고려대 의대(보건학) 교수는 “병실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오히려 드나드는 사람을 줄이는 것이 병원 내 감염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시범사업 중인 포괄간호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괄간호서비스는 ‘보호자 없는 병동’이라고 불린다. 보호자나 간병인 대신 간호사와 조무사가 팀을 이뤄 24시간 환자를 간병한다. 간호사 한 명이 보통 환자 8~10명을 돌본다. 일반 병실(1대 16~20)의 절반 수준이다. 2013년 7월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해 현재는 전국 33개 병원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건강보험을 적용 중이다. 2018년부터 전국으로 원하는 병원에 한해 확대할 계획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번 기회에 병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포괄간호서비스 확대에 속도를 내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추가 인력 12만 명 확보가 숙제
사업을 실시 중인 현장의 반응도 괜찮다. 사업 초기부터 참여 중인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은 현재 간호인력 255명(간호사 215명, 간호조무사 40명)을 투입해 746병상 중 342병상을 포괄간호서비스 병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보호자의 출입은 오전·오후 각각 2시간씩으로 제한된다. 병원에서는 내년 정신과 병동을 제외한 전 병동을 포괄간호서비스 병동으로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인자 간호부장은 “처음에는 환자나 보호자가 어색하고 불안해해 참여를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간호사가 24시간 관리를 하니까 청결도가 높아지고 사고도 줄어들어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포괄간호서비스 확대에는 정부와 전문가 모두 공감하지만 걸림돌이 적지 않다. 우선 간호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 현재 인력보다 두 배 이상을 충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지방의료원 관계자는 “포괄간호서비스가 시작되면 지방 간호사들이 수도권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며 “지방은 사업을 하고 싶어도 간호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협회는 전국 병원으로 사업을 확대할 경우 간호사 6만5000명, 간호조무사 5만5000명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형식 고려대(예방의학) 교수는 유휴인력 활용을 해법으로 꼽는다. 그는 “쉬고 있는 간호사를 채용하는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병원 내 보육시설 마련과 임금 현실화 등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일자리를 잃은 간병인들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매년 간호사가 2만 명이 배출되지만 70%만 취업한다. 이 중 30%가 1년 이내에 그만두는 상황이다.

외국처럼 엄격하게 문병을 제한하기보다는 정 문화와 같은 특수성을 감안한 한국형 포괄간호서비스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강보험공단 고영 급여관리실 부장은 “우선 큰 전제는 보조침대를 치우고 환자 외 보호자는 숙식을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오전과 오후 2시간씩 면회시간을 지키는 게 원칙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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