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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난 부자 아니다” … 씨티은행 “재산 2000만 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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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977년 6월 22일 미국 워싱턴 의회의 하원(下院) 레이번 빌딩. 경호원 2명의 호위를 받은 회색 양복 차림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청문회장에 입장했다. 프레이저위원회 증언대에 그가 처음 서는 날이었다. 3시간 전부터 줄 서서 입장한 250여 명의 방청객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그는 준비한 성명서를 통역(안홍균)을 통해 읽은 뒤 청문위원들의 질문을 받았다. 박동선 사건과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질의응답이 주로 오갔다. 망명 뒤 미 중앙정보국(CIA)과 접촉했던 사실도 밝혔다. 그는 “처음엔 여러 CIA 친구들을 만났지만 75년이 마지막 접촉이었다”고 증언했다. 구들링 위원은 그에게 “어떻게 재산을 미국으로 반입해왔는가”라고 물었다. 김형욱은 “나는 부자가 아니어서 갖고 올 것이 많지 않았다. 암시장의 한계로 15만 달러를 한국에서 반출하는 데 2년이 걸렸다”고 답했다. 위원회 측은 그의 첫 증언이 유용하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조사가 이어지면서 그의 재산 출처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위원회가 78년 10월 말 활동을 마치며 발간한 ‘한미관계조사보고서’(일명 프레이저보고서)에 따르면 처음에 김형욱은 260만 달러를 미국으로 가져왔고 그 절반을 도박으로 날렸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씨티은행은 미국과 해외계좌에 있는 그의 재산 총액이 1500만~2000만 달러로 추정된다는 자료를 위원회에 제출한다. 보고서는 “그의 재산에 대해 밝혀진 내용으로 인해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어느 정도 털어놓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고 썼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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