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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화려한 외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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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김상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가 경기도 교육감으로 일할 때 여러 번 만나 밥도 먹고 인터뷰도 했지만 기자의 한계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흥분하거나 시원스레 답하는 법이 없었다. 본인은 말을 아끼면서도 상대방 말은 많이 들었다. 야당 혁신위원장이 된 그의 행보를 가늠해 보려 경기도 교육청 전·현직 간부들에게 물어봤다.

 -평소 업무 스타일이 어땠나.

 “남이 두드리고 지나간 돌다리도 다시 두드려 보는 스타일이다. 굉장히 신중하다.”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의견을 많이 듣는다는데.

 “듣긴 다 듣는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뜻대로 다 하더라.”

 -일 처리는 어땠나.

 “결정하면 무섭게 몰입한다. 앞뒤 안 가린다. 그게 더 무섭다.”

 김 위원장을 전국적 인물로 만든 무상급식·혁신학교·학생인권조례도 그런 과정을 통해 시행됐다는 얘기였다. 그는 세 정책에 힘입어 친(親)전교조 교육감의 아이콘이 됐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중 13곳을 장악한 친전교조 교육감들은 김상곤 베끼기에 열중이다. 얼치기든, 진짜든 구별이 없다. 공과를 떠나 교육계에 그의 영향력이 큰 것만은 분명하다.

 김 위원장은 애초부터 정치 지향적이었다. ‘운동권 학생’이었고 ‘운동권 교수’였다. 교육감 때 수월성 교육을 비판했지만 정작 자신은 당시 명문이던 광주제일고를 나와 재수를 해 1969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상과대 학생회장을 맡아 교련 반대 운동 등을 주도하다 강제 징집됐다. 한신대 교수 시절엔 6월 항쟁 교수 선언(86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창립(87년), 전교조 창립 교수위원회 결성(89년)을 이끌었다. 민교협 공동의장과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을 맡는 등 색깔이 뚜렷했다. 그런 그가 엄정한 정치적 중립(헌법 31조 4항)을 요하는 교육감에 두 번이나 당선된 것은 아이러니다. 얼빠진 보수 교육계와 교육감 직선제의 맹점이 진보 학자의 ‘화려한 외출’을 도운 셈이다.

 그의 정치적 갈망은 지난해 6·4 지방선거 때 표출됐다. 교육감 출마 때처럼 역시 자의(自意)가 아니라며 속내를 숨겼다. 그러곤 경기도 내 2300개 초·중·고를 책임진 교육감직을 버렸다. 새정치연합 경기도지사 경선에 나섰지만 ‘무상버스’ 공약으로 역풍을 맞았다. 절치부심, 같은 해 7월 여의도 입성을 노렸으나 재선거 공천에서 또 탈락했다. ‘혁신 교육’ 아이콘의 몰락이었다. 그런데 연어의 회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올 4·29 재·보선에서 참패한 문재인 대표가 혁신 러브콜을 한 것이다.

 제1야당 운명의 칼자루를 쥔 그는 첫 행보부터 정치적이었다. 지난달 혁신위원장 취임 때는 “사약(賜藥)을 앞에 두고 상소문을 쓰는 심정이다. 새정치연합이 절벽 위에 매달려 있다”며 오랜 당원처럼 말했다. 내년 총선 출마 욕심을 부린다는 의혹이 일자 “나부터 내려놓겠다. 안 나간다”며 진화했다. 10일 혁신위원 10명의 명단 발표 모습은 완전 정치인이었다. “혁신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실천이다. 당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며 결기를 다지고 힘을 과시했다.

  지금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사다. 그는 당권재민(黨權在民)을 내걸고 새정치연합의 조직·공천·인사 수술에 돌입했다. 그간 호남 물갈이니, 계파·패권 청산이니 하는 온갖 설이 무성했다. 그가 어떤 메스를 들지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메르스 대응을 비롯한 작금의 부실한 국정 운영은 청와대·정부·여당의 무능 탓도 있지만 똑같이 무능하고 맹탕인 야당 책임도 크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파격적인 쇄신안을 내놓으면 야당이 건강해지고, 국민의 시각도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 지형에 큰 변수가 되지 않겠는가.

 과연 김 위원장이 그럴 만한 능력·배짱·비전을 갖고 있을까. 정치교육감으로 5년간 화려한 외출을 한 게 대박이 돼 야당의 혁신 검투사로 영입된 그가 ‘물검객’이 될까, ‘명검객’이 될까. 결과는 혁신위 활동기간 100일 안에 드러날 것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교육감들은 절대 김상곤식 변신을 흉내 내지 마시라. 그는 정치인이다.

양영유 논설위원